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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21. 2024

진짜로 팔아버리고 싶은 버릇을 팝니다

불안도 뜯겨 나가길 바라면서

초등학교 1학년 겨울이었던가? 외할머니댁에서 본 TV 속 여주인공이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입에 물면서 거실을 돌아다녔다. 엄마한테 왜 아기처럼 손을 무냐고 물어보니 불안한 사람들 중 일부는 불안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는다고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때가 이 지독한 버릇의 시작이다.


멋있어 보였다. 어린아이 눈에 보인 어른의 행동이었어서 일까? 실제로 tv 속 주인공은 손톱을 물어뜯는 것까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겼다. 8-9살이 시작이니 인생의 2/3을 나와 함께했다. 손톱만 뜯으면 다행인데, 문제는 손톱보다도 손톱 옆의 살을 뜯어 피까지 본다. 피까지 봐야 정신이 든다. '아 내가 또 손톱을 물어뜯었네'


부모님한테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위생에도 안 좋고, 치아 건강에도 안 좋고, 미감상 보기에도 안 좋으니까 절대 하지 말라고, 다음에 검사해서 손톱이 짧아져 있으면 혼내겠다고 하셨다. 어렸을 땐 정말 무서운 말이었는데도 고치지 못했다. 때론 걱정스레 불안한 일 있냐면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원래도 속 이야기를 하지 않는 첫째 딸인 데다가 어떤 특별한 사건 때문에 불안해서 뜯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애매한, 누구나 이 정도의 불안을 안고 살 것 같은 그런 불안함. 


그렇게 버릇과 함께 자라났고, 내가 손톱을 가장 심하게 괴롭혔던 시기는 고3 때였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 거라는 허구의 편견에 사로잡혀 매일 불안 속에 살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나는 고3 때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 기억이 없다. 어둠 속에서 내 자리만 빛나는 그 닭장같이 좁은 공간에서 손끝에 피를 내며 불안에 떤 기억뿐이다.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내가 이걸 공부할 때가 아닌데, 수리를 하다 보면, 아 진짜 이럴 때가 아닌데 이러다가 집중이라도 시작해 보자며 인강을 틀고는 인강은 공부가 아닌데 하면서 결국 어떤 과목도 공부하지 못했고, 그럴수록 손톱만 더 괴롭혔다. 


대학 진학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져서인지 20살 때는 손톱을 괴롭히지 않았다. 매니큐어를 사서 형형색색 칠하고 다녔다.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괴롭히는 중이다. 고3 때처럼 막 불안하던 시기는 끝이 났는데도 이상하게 긴 손톱을 보지 못했다. 이제는 치아랑 위생을 지키겠다고 손톱깎기로 아주 바짝 깎는다. 긴 손톱에 알레르기가 생긴 사람처럼 아주 바싹, 아주 짧게 깎는다. 손톱만 그렇게 짧게 깎으면 다행인데, 문제는 손톱 주변의 살도 괴롭힌다는 거다. 불안하거나 답답한 날엔 피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린다. '뜯지 않기로 나랑 약속했잖아' 속으로 소리쳐보지만 사실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한 허례허식일 뿐이다. 


왜 손 끝을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걸까. 손 끝도 내 일부인데. 불안할 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려고 피젯큐브와 말랑한 인형도 구매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손을 움직인다고 해소되는 감정이 아니라 뜯어 내야 비로소 해소되는 감정인 모양이다. 손톱 뜯기 방지용 매니큐어 제품도 사용해 봤다. 이제 나는 입으로 뜯는 것이 아니라 소용이 없었다. 젤네일도 받아봤는데 그 두꺼운 네일이 답답해지고, 점점 자라면서 모양이 이상해지자 그 젤네일을 뜯어냈다. 


도대체 왜 뜯는 걸까? 어디선가 이런 행위가 일종의 자해행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손톱은 모르겠지만 손 옆의 살을 뜯는 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다. 상처가 나고 따끔거리기 시작해야 체했을 때 손 따고 피를 볼 때처럼 속이 그제야 뚫린 기분이 난다. 마음이 체했던 거니까. 어서 빨리 소화제를 찾고 이 버릇을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다. 어딘가에 팔아버리고 얼른 고치고 싶은 마음에 아직도 연장선에 있는 이 추억을 팔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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