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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만해서

합니다

by ACCIGRAPHY




글씨 쓰는 일은 내게 할 만한 일이다.

힘들지 않고 재미도 있다.


그렇다고 '이거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아니고,

그냥 할 만해서 자꾸 한다.


요리도 여행도 공부도, 내겐 비슷하게 할 만한 일.


시댁 사람들에게 있어 요리란 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요리란 기계적인 성실함과 수학적 정밀함으로 끊임없이 레시피와 식재료를 맞춰 나가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다행히 그들에겐 내가 할 수 없는 다른 할 만한 일들이 있다.


할 만한 것들은 사랑스럽다.

사랑은 몰입이고 그 상태에선 모르던 게 알아지거나, 안 되던 일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나는 한 작은 히스패닉 교회의 목사님을 돕느라 연차를 내고 60인분의 요리를 집에서 해 간 적이 있다. 돈 주고 사면 그만이지만, 성대하게 요리할 수 있는 기회를 돈에 양도하고 싶지 않았다.


수지타산이 삶의 중요한 가치인 남편은 장을 함께 봐주면서도 나에게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냐고 물었다. 그의 못마땅한 얼굴에 심통이 나서,


'Because I can!'


오만한 응수를 날리려던 찰나, 내 안의 부처님이 내 입술을 찰싹 때렸다. 할 수 없이 나는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구구절절 설명해 주었다.


재료를 다듬고 익혀 완성된 요리를 어울리는 용기에 담은 후, 봉사자들이 알아볼 수 있게 라벨을 만드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뭘 먼저 하고 나중에 해야 할지가 자연스레 계산되었다. 다른 일을 했더라면 뚝딱거리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지만, 요리는 내게 언제 어디서나 할 만한 무언가였고, 서로 사랑하기에 웬만하면 먹을만한 맛이 나왔다.


내게 할 만한 일을 할 때

나는 내가 된다.


각자 할 만한 일이 다른 우리는

서로를 우러러볼 필요도

내려다볼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할 만한 일이 있다는 사실에

매일 감동할 뿐.


나를 태우는 열정이 아닌

은은한 기쁨의 원천에 기댈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


오늘은 무지개 나비체로 일기를 썼다. 왜냐고? 와이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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