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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Oct 08. 2022

지금(只今), 여행을 일상으로, 일상을 여행으로

슬기로운 선생님 생활

지금(只今):  
*말하는 바로 지금 이때

2021년 5월 4일, 제 인생의 역사적인 날입니다. 크게 다치거나 병원 신세를 져본 적 없던 제가 집에서 폼롤러(스트레칭 운동기구)에서 뒤로 넘어져서 밤 9시에 병원 응급실에 간 날이거든요.


뼈에 이상은 없다는 응급실 당직 의사의 말을 ‘이상 없다.’라고 해석한 저는 다음 날 정형외과에 가지 않은 채 다친 어깨를 방치했습니다. 결국, 한 달 뒤 뼛속까지 파고드는 염증으로 인한 통증으로 병원에 다시  갔습니다. 어깨 회전근이 끊어졌고 방치해서 염증이 팔꿈치까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고 수술도 못 한 채 염증 치료 약을 먹으며 재활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더 고통스러운 것은 2~3시간만 자면 어깨가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깨면 거실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2시간 동안 팔을 흔들고 주물러 주어야 겨우 통증이 가라앉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어깨 회전근 파열된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야간통’이었습니다.


 거실에서 2시간을 서성대다 보니 답답증이 생겨서 동이 트면 하천길과 근처 야산과 동네 구석구석을 10월이 될 때까지 매일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이 동네 이사 와서 7년 동안 가보지 않은 곳이 참 많았습니다.     


사라토리 하루히코는 『니체와 함께 산책을』에서 “내 마음 깊은 곳의 나와 마주할 때 삶은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딸 입시와 취업, 내 집 마련, 시부모님 간병, 해외근무 등 정신없고 홀린 듯이 살던 저는 야간통이 끌어당긴 산책 덕분에 마음 깊은 곳의 저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라토리 하루히코는 말했습니다.

“니체처럼 자연 속을 산책하면서, 괴테처럼 밤하늘을 보면서 릴케처럼 꽃을 보면서 ‘명상’에 빠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때, 깨달음이 자연스레 찾아온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고 중요한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산책’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첫째, 평일에는 살고 있는 집에서 1시간 이내에 걸을 수 있는 곳이면 그냥 걷습니다.

사는 곳을 가운데 한 점으로 생각하고 동서남북 여기저기를 걸어보면 재미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쁜 집과 가게가 있으면 사진도 찍어 봅니다. 꽃을 많이 심은 집, 삭막한 콘크리트 집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내 집을 지을 때 디자인과 벽돌색을 고르기도 합니다. 옥상에 나무를 심고 싶진 않습니다. 땅도 없는데 별 상상을 다 하게 되네요.      


둘째, 주말에는 차를 타고 사는 시의 문화재가 있고, 산이 있는 곳, 전망 좋고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아 짧은 나들이를 합니다.

절과 성당이 있는 곳도 갑니다. 왠지 보이지 않는 신들이 그곳을 찾은 저를 위해 복을 주실 것 같은 느낌입니다. 특히 기독교인이 제가 절을 찾는 이유는 옛날에 세워져서 터가 대부분 좋아서 산책하기 좋으며 꽃도 많고 때론 좋은 시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 전국에 있는 100대 명절과 성당을 다 다닐지도 모릅니다.   

   


셋째, 한 달에 2번은 집에서 30km 이내의 국내 여행을 떠납니다.

저는 남편과 토요일 아침 10시 정도에 출발해서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장소로 떠납니다. 무계획 당일치기 여행이지요. 의왕시, 용인시, 남양주, 이천시, 안양시, 과천시 등 너무 갈 곳이 많습니다. 단거리 여행은  또란 tv 등 국내여행 전문 유튜버들의 방송을 듣고 제가 가자는 곳을 갑니다. 가보면 아시겠지만 거의 90% 대만족입니다. 여행 유튜버들께 감사하며 정보를 최대한 이용하지요.  

    

넷째, 연휴에는 1박 2일, 2박 3일 미리 계획하고 떠납니다.

미국에 사는 언니가 갑상선에 암이 생겨서 수술을 앞두었을 때 우리 자매 부부는 태안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에 가서 1만 6000종 이상의 꽃과 나무를 조성한 고 민병갈 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오는 길에 거친 팔봉산(봉우리가 8개)을 오르며 암과 수술에 대한 공포를 잠시 잊었습니다.


저는 민병갈 님이 어머님을 사랑해서 심은 목련꽃 ‘굿모닝 맘’ 사진과 숨은 천리포수목원의 조성 이야기를 수업 자료로 쓰려고 사진을 찍고 사연도 검색해가며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듯 여행은 선생님인 제겐 다양한 수업 자료를 제공해 주고 언니에게는 수술 걱정을 잠시 잠시 잊게 해 주었답니다.    

 

다섯째, 방학에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을 떠나면 좋습니다.

학기 중에도 해외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참 부럽습니다. 비행기 표값도 성수기보다 많이 싸다고 하니 일거양득이네요. 현장체험학습 20일을 이용하면 많은 곳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기 중에 떠나면 수업에 빠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요 행사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으니 미리 학사일정 달력을 참고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육대회 날 빠지는 불상사는 없어야겠지요.


제 대학 친구는 방학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서 80여 개국을 다녔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저도 아들, 딸 둘 다 대학을 졸업시킨 2019년부터 열심히 다니려 했는데 코로나로 오도 가도 못 한 채 3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 어릴 때 ‘경험’을 주는 ‘여행’을 자주 주지 않은 것이 후회됩니다.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여유 있는 마음만 있었으면 전국을 다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었는데 말입니다. 한심한 엄마입니다.


  <지금 여행 떠나는 행복한 선생님>

-지금 일어나 선생님 아이의 손을 잡고 여행 같은 산책하기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 반 아이들과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학교숲에서 여행하기

-아이의 눈높이 맞추어 신나게 아이와 함께 걷고 뛰기

-아이처럼 춤추듯이 오늘을 살기


미루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지금 곁에 있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입니다. “시간에는 ‘다음’이란 단어는 없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과 함께,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일상 속 여행을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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