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도미노
나의 파편들을 찾아낸 후에 문득 아빠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용돈을 받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나와 동생은 '서점 비'라는 제목의 용돈을 따로 받았다. 아버지의 계획이었다. 일주일에 1만 원씩 주셨고 그 돈은 오로지 서점에서만 쓸 수 있었다. 1주일에 한 권씩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었고 오랜만에 서점에 간 날이면 그날은 서점 털이범이 되었다. 토요일마다 현금 뭉치를 들고 서점으로 향했다. 아빠와의 여정은 나에게 소풍이었고 쇼핑이었다.
남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서점 비가 떨어져 내 돈으로 책을 살 때면 진짜 '어른'이 됐음을 느낀다. 예전에는 서점 비가 없으면 그냥 땡이었는데, 이젠 서점 비로 책을 몰아 사고 나서도 읽고 싶은 책이 등장하면 내가 멋지게 결제해버린다.
아빠께 왜 서점 비를 따로 주었냐고 여쭤보고 싶어서 입을 뗐다.
"아빠 근데 서점 비..”라고 하자마자 아빠는
"이젠 가불 안돼!"
"그게 아니라.. 아빠는 왜 서점 비를 따로 줬어? 왜 그런 시스템을 도입한 거야?"
"음•·• 너네가 점점 자라면서 무언가를 사고 싶어 하고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거란 말이지. 구매하고 소유하는 것을 배우게 하려고 그랬어. 우리가 모든 걸 다 사줄 수 없고 너희가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랄까."
"나는 책을 좀 읽으라고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네?"
"물론 그 점도 없진 않았지. 다른 것에 대해서 욕심부릴 바엔 책이 갖고 싶게끔, 책이 사고 싶게끔 만들었어."
서점에서 나는 책을 위주로 사면서 가끔 남은 돈으로 책갈피나 연필을 샀다. 동생은 책보다는 서점에서 파는 어려운 퍼즐들을 샀다. (전문 용어가 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아빠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날짜가 적힌 옛날 책들을 찾아봤다. 사기만 하고 읽지 않은 것들이 태반이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아빠의 계획은 엄청난 성공이다. 책을 거의 쓸어 모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 무엇보다 책에 대한 소유욕이 가장 강하다. 세상에는 갖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 그리고 갖고 싶은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아빠와 손잡고 서점을 가던 토요일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