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서재필,#044 정부의 견제, 미국 망명,개혁좌

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2

by 연결고리

청년 시절 읽기


#044 정부의 견제, 미국 망명과 개혁의 좌절


서재필은 독립신문 창간호 논설에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밝히겠다.”고 밝히고, 그 뜻대로 부패한 관리들을 비판하고, 열강의 이권 침탈의 부당한 요구와 음모를 서슴지 않고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자신의 신변을 지키고자 러시아 교관을 초청하고자 했으나 서재필은 이에 반대했으며, 국왕의 전횡을 제한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주장합니다.


그렇게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귀국 후 2년 만에 정부는 서재필을 중추원 고문에서 해임하고 독립신문 폐간을 요청합니다.


이런 조치에 분노한 서재필은 “자신은 거의 2년 동안 열과 성을 기울여 나라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가 박대하는 까닭을 모르겠으며, 그동안 나라를 위하여 바른 말 한 것이 죄가 된다면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고 신문도 더 이상 발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당시 서재필은 단순히 배신감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마도 갑신정변 당시부터 생각했던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다시 곱씹어보며 ‘더 이상 조선은 가망이 없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냉정한 이성적 판단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섭섭하고 분노한 상태에서 표출된 결론이었을 것입니다.


서재필은 정부의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며 10년간 고문으로 초빙한다고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일방적인 해임은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그가 미국에서 경험한 합리주의적인 태도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서재필은 남은 기간의 급여를 지급한다는 조건이라면 고문직을 그만두겠다고 답합니다.



이 문제는 잠시 보류되다가 5개월 후 결정이 납니다. 당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사람들은 서재필이 돌아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류했지만, 서재필은 그들의 요구를 뿌리치고 독립신문 창간 당시의 정부 지원금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의 급여와 미국으로 돌아가는 여비를 받고 1898년 5월, 36세의 나이로 다시 조선을 떠나게 됩니다.


서재필이 미국으로 돌아가자 고종은 독립협회 해산을 명령합니다. 독립협회가 해산된 후 이들은 만민공동회로 세력을 유지했으나 이 역시 무력에 의해 강제 해산됩니다. 독립협회 해산 다음 해 고종은 ‘만세 불변의 전제정치’를 명시한 대한국국제를 반포합니다. 국제(國制)라는 말은 의회가 아닌 황제가 제정·반포한 것을 뜻하는데, 지금까지의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주에 의해, 군주를 위한 나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독립신문은 폐간됩니다. 대한국국제 반포 11년 후인 1910년, 대한제국은 최종적으로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하므로 당시 조선 정부의 개혁 실패는 뼈아픈 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 서재필에게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선의 무능함에서 오는 자괴감, 러시아 공사·일본 공사·조선 정부·개화 반대 세력 등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생명의 위협, 중추원 고문의 지위를 상실한 상황에서 개혁의 동력 약화 등 개인적으로 서재필이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들 중에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생각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 청년 서재필의 ‘완고한 태도’가 개혁 중단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완고함은 서재필의 개혁 추진력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국을 떠나게 만든 양날의 검이었던 것입니다.


글의 맨 처음에 언급했듯이 이 시기가 청년(靑年)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이고, 이 용어를 중심으로 청년 자신들은 스스로를 하나의 세력으로 인식하고 협력하면서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서재필은 의지하고 싶은 매우 중요한 선배 청년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떠났습니다. 그가 떠나자 개혁의 불길은 사그라졌고, 독립협회는 해산되었으며, 독립신문은 폐간됩니다.


이때 남겨진 청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단 2년 만에 이런 큰 변화를 이끌어 낸 서재필이 조금만 더 관용의 태도로, 인내의 태도로 자신이 받는 굴욕을 감수했다면, 그가 닦아놓은 개혁의 기초를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요? 미국에서 11년 만에 귀국하여 개혁을 이끌겠다는 각오보다 귀국해서 받은 자존심의 상처가 더 중요했던 것일까요?


청년은 이런 미숙함을 보이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합리적인 이성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며, 눈앞의 상황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철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은 이미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은 소설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 서재필의 행동에 공감이 되고, 누구라도 서재필의 상황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그 청년이 공동체를 생각해서 한 번 더 자존심을 굽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입니다.


만민공동회 사람들이 간절하게 서재필의 출국을 만류했을 때 서재필은 그들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해 그들을 격앙시켰습니다. 그들 청년들이 개인적으로 서운해서 서재필의 출국을 만류했을까요? 오히려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려 완고한 고집을 부렸던 것은 서재필이었습니다.


서재필은 청년들의 계속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서재필의 행동은 이후 외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만민공동회 위원들이 처음 귀국을 만류할 때는 서재필의 외국 국적 취득에 대해 ‘부득이한 것’으로 인식하지만, 그가 떠난 후에는 그를 ‘외국인’으로 간주하여 비판합니다.


서재필은 이렇게 불완전하게,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고국을 떠나며 청년의 시절을 마무리합니다.


오경석의 역사에서 살펴봤듯이 청년 시절은 업적이 완성되지 못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사회에 발전을 가져오려는 그런 서투른 도전이 후대에 영향을 주고, 역사의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청년은 떠났지만, 다행히 독립신문의 정신을 이어받은 신문들이 창간되어 국권을 빼앗길 때까지 발행됩니다. 독립협회는 없어졌지만, 그 세력은 한 교회에 모여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청년회로 이어졌고, 그 단체가 중심이 되어 국내 최대 항일 비밀결사이자 국권회복과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하는 신민회가 결성됩니다. 서재필 자신 역시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에서 사재를 털면서까지 다시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누구보다도 윤택한 환경에서 편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청년 서재필. 그는 나라를 위해 정변에 참여하여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타국에 홀로 남겨졌으나 치열한 노력 끝에 10년 만에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다시 고국에 돌아와 개혁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변하지 않는 고국의 상황에 또 다시 상처 받고 망명을 떠나야 했습니다.


청년 서재필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일까요? 비록 실수와 부족함이 있었지만 청년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고, 그 도전은 역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서재필이 도전에 나선 것은 시대를 바꾼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마음’, ‘양심의 소리를 받아들인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마주한 우리의 도전도 서재필처럼 미숙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이 공동체를 위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때 그 행동은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도전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러니 현재의 도전을 포기하지 맙시다. 단,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면 자신의 고집을 때로는 누그러뜨릴 수 있기를 당부합니다.



1)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43쪽
2) 정진석, 「재필과 독립신문에 관한 논쟁점들」, 『언론과 사회』, 언론과 사회, 1994, 12-13쪽
3) 정진석, 「재필과 독립신문에 관한 논쟁점들」, 『언론과 사회』, 언론과 사회, 1994, 14쪽
4) 박성진, 「서재필과 이승만의 만남과 갈등 ―개화기, 독립운동기, 해방정국기를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67,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9, 604쪽
5)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45·48·55쪽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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