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신돌석, #050 의로우나 의롭지 않게 된 의병

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Ⅲ

by 연결고리


시대 읽기



#050 의로우나 의롭지 않게 된 의병



백성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외세의 무력 침략이 진행될 때 국민은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세력이 의병(義兵)입니다. 의병은 의(義)를 좇는 사적 병사가 될 텐데 여기서 의는 유교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 즉 나라 또는 왕을 지키는 행위를 뜻할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입을 관군이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자 선조는 서울을 버리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의주까지 피난을 갑니다. 이때 전국에서 의병이 나타나 활약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의병은 국가의 큰 힘이 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의병 활동에 무조건 관대한 것은 아닙니다. 백성들의 무력 행사는 정부입장에서 위협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임진왜란 중에도 관군이 차츰 회복된 후에는 의병 활동에 제약을 주거나 의병을 해체했습니다.


의병은 주로 자기가 살았던 지역에서 모집되어 활동하였는데 의병장은 문반 출신이나 유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왕이 있는 서울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았던 것이 아니라 지방에 연고지를 두었기 때문에 신분제도가 존재하던 시대에 이들을 중심으로 의병이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1)


이런 상황에서 신돌석과 같은 평민 의병장이 활동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만약 지배층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국가 위기 상황 때 지방에서 다양한 신분층의 활약이 돋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위기의 상황에서 의병은 다시 한번 전국적으로 일어나는데, 을미사변·단발령 발표를 계기로 성립된 ‘을미의병’,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성립된 ‘을사의병’,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계기로 성립된 ‘정미의병’이 그것입니다.


의병은 아무리 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해도 사적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므로 대한제국의 사법권을 장악한 일본은 의병을 붙잡아 강도죄, 폭동죄, 내란죄의 혐의를 씌워 ‘불의한’ 범법자로 처벌하게 됩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의병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방해하는, 국가의 운영을 방해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이들을 ‘내란죄’로 처벌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실제로 정미의병은 자신들이 국제법상 교전단체로 승인을 받기 위해 외국 공사관의 지원을 받고자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들을 ‘내란죄’로 처벌하기보다는 ‘폭도’로 규정하여 탄압하려고 힘썼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일본의 입장에서는 의병을 국제법상 교전단체로 인정하여 내란죄로 처벌하면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먼저 의병이 국제법상 교전단체가 되면 국제법상 포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폭력적으로 탄압하려는 일본의 의지대로 의병을 진압할 수 없게 됩니다.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외국에 많은 차관을 빌린 상황이고 국제적 신용도가 중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전단체로 인정받은 의병을 자의적으로 탄압하여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은 일본의 신용도를 하락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의병 탄압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의병을 ‘내란죄’로 처벌하게 되면 일본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자인하는 꼴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정치 상황이 일본의 의도와는 다르게 국제법상 내란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선의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의병을 내란으로 처벌하기보다는 ‘폭동’이나 ‘강도’로 규정하여, 한국이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선전면서 동시에 의병에게 ‘폭도’의 이미지를 씌워 민중들이 이들과 연대하는 것을 막고 적대시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2)


다음은 이토 히로부미가 1908년 폭도 토벌에 종사하는 육군장교에게 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여기서 의병을 교전단체가 아니라 폭도로 규정하는 일본의 교활한 정치 선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현 상황은 비록 사방에서 폭도가 봉기하는 상황이더라도 완전한 평시로 전시도 아니고 내란도 아닌 오히려 지방의 소요라 칭해야 할 것이다. …… 폭도 토벌에 있어 첫째 주의할 것은 한국은 평시 정태에 있다는 것이다. 도적의 횡행은 전쟁과 완전 다르므로 전시 법규를 적용할 수 없다. 지금의 상황은 전쟁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내란이라고도 칭할 수 없다. 내란이란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과연 내란이 인정되면 다른 나라는 폭도를 교전단체로 보고 중립을 포고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영향이 미치는 바는 실로 중대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의 폭도는 결코 내란이 아니며 겨우 지방의 소요에 지나지 않는다. 3)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싸웠으나 의병의 신분적 처지는 일본에 의해 ‘폭도’로 폄하되었고, 강도죄·폭동죄·내란죄 등 어떤 죄목을 입혀 처벌하든 ‘의로운 병사’는 공인되지 않은 무력을 행사하는 그저 ‘불법적인 세력’으로 규정될 뿐이었습니다.


옳은 일에 가담한다는 것은 막연히 영화나 소설의 한 장면처럼 멋지고 낭만적인 장면처럼 상상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은 곧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모든 사람이 정상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자신의 옳은 뜻을 이해하고 인정해줄 거라고 믿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올바르게 변화시키려는 청년의 도전은, 의로운 행위가 그 시작부터 불의한 것으로 낙인찍히는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 「의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2) 김항기, 「1906~1910년간 일제의 의병 판결실태와 그 성격」, 『한국독립운동사연구』6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8, 31-35쪽
3) 김항기, 「1906~1910년간 일제의 의병 판결실태와 그 성격」, 『한국독립운동사연구』6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8, 31쪽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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