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Ⅳ
김마리아의 청년 시절은 국권이 피탈되고, 3.1운동이 일어나는 20세기 초의 상황입니다. 이 시기 한국의 여성 청년은 ‘여성 차별’과 ‘민족 차별’이라는 두 가지 시대적 한계 속에서 역경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 차별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화가 먼저 일어난 서양의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같은 계급의 남성보다 지위가 낮았던 여성의 상황은 근대화를 먼저 겪어 스스로 선진적이라고 자부했던 서양에서조차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능력 존중은 근대의 핵심 이념이었지만, 여기서 여성은 제외되었습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선거권 차별입니다.
전제적으로 권력을 행사했던 왕을 대신해 법을 제정하는 ‘의회’의 탄생은 신분제가 사라진 근대를 규정하는 가장 상징적이고 핵심적인 변화였습니다. 이제 시민은 피지배층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가 되어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등한 권력을 행사했는데, 그 권력이 바로 선거권입니다.
지금은 보통선거(선거인의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특정 연령에 이르면 모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익숙하지만, 선거권은 세상을 바꾸는 정치권력이었기 때문에 초기 선거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서양의 영국을 예로 들면, 선거권을 먼저 차지한 계층은 전근대 시대의 지배층이었던 지주였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진행되자 경제력이 확대된 자본가와 도시 중산계층에까지 선거권이 확대됩니다. 산업혁명 시기 생산의 주체였던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고 선거권 투쟁을 벌이는데,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선거권은 도시 노동자에게까지 확대되고, 다시 1884년 3차 선거법 개정을 통해 농민들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됩니다.
선거법 개정을 거쳐 선거권은 점차 확대되었지만 이때까지의 선거권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선거권 확대의 대상은 순전히 ‘남성’이었습니다.1)
선거권은 근대의 상징이었지만, 여기서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은 여성이 사회의 온전한 주체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여전히 전근대의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여성에게 선거권이 처음 부여된 때는 3차 선거법 개정 후 30여 년이 지난 20세기의 일입니다. 그 계기는 바로 제1차 세계 대전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총력전으로 불리는 전쟁으로 남성의 노동력만으로 전쟁 상황에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쟁 기간 여성은 생산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여성의 정치적 발언권은 자연스럽게 확대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권 개정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1918년 영국의 4차 선거법 개정은 여전히 남녀 차별이 존재하여 남성 21세, 여성 30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고, 남녀 모두 동일 연령을 기준으로 선거권을 부여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2)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른 발전 과정을 거쳤겠지만, 보통은 영국의 사례처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0세기에 겨우 선거권을 획득한 서양 여성의 사정을 고려할 때 식민지 한국에서의 여성은 이보다 더 열악한 지위였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거권을 획득한 여성은 점차 법적인 제도를 통해 사회적 차별을 개선해 나갔고,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지만, 완전한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여성이 자신들의 권리를 확대하고자 할 때 그 반대 세력은 누구였을까요? 막연히 남성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성들이 권력을 앞에 두고 지주-자본가-노동자-농민으로 분열한 것처럼 여성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 상식적으로는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대립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립 관계는 이분법적으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여성의 권리 획득을 주장하는 사람은 권리 획득을 희망하는 여성과 그들을 지지하거나 이해관계가 얽힌 남성입니다. 반대로 여성의 권리 획득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 권리 획득으로 기득권을 침해당할 남성과 그들 남성과 이해관계가 있는 여성입니다.
여성들이 하나가 되어 권리 획득을 위해 노력했다면 여성들의 처우는 좀 더 빠르게 개선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전근대시대에는 신분적으로, 근대에서는 경제적 지위로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비록 동일한 계급의 남성에 비해 열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정치적 요구 사항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중산계급 여성이 자신들보다 지위가 낮은 가난한 여성의 복지 문제나 식민지 여성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자신들보다 지위가 낮은 남성들이나 식민지 남성의 지위 향상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실제 1890년대 이전까지 참정권을 요구했던 영국의 여성운동가들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간계급 출신들로 작가와 교사들이 많았고 노동계급 출신은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성의 참정권 운동은 ‘귀부인들을 위한 투표권’이라고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중간계급 이상의 엘리트 여성과 노동계급 여성 모두 참정권에 관심을 두지만 두 세력은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합니다.3) 이런 상황에서 여성참정권에 반대하는 선언문이 발표되는데, 이들은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세력보다 계급이 높았던 당대 명망가의 여성들이었습니다.4)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는 깨어있는 일부의 신여성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에 처한 전통 여성들의 가치관을 바꾸고, 다양한 계급의 여성들을 단합시켜 기득권층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것이 당시 여성 운동가들의 고민이었고, 청년 김마리아가 처한 식민지 한국의 현실이었습니다.
1) 이상수, 「영국의 선거법 개정」, 『Basic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 신원문화사, 2006, 네이버 지식백과
이대진,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의 민주주의-19세기 영국 선거법 개혁」, 『정치정보연구』 19, 한국정치정보학회, 2016.2, 311쪽
2) 이상수, 「영국의 선거법 개정」, 『Basic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 신원문화사, 2006, 네이버 지식백과
3) 한해정, 「서양과 한국의 근대여성운동, 그리고 근화여학교」, 『인문과학연구』27,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109-111쪽
4) 이남희, 「민주주의와 성별정치학 : 영국 여성참정권의 확대과정을 중심으로」, 『역사와현실』87, 한국역사연구회, 2013.03, 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