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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Jan 09. 2023

저의 고객은 멍청이들입니다 -
뱅크시

뱅크시와 크립토 아트

행동주의자? 관종?

얼굴 없는 화가, 거리의 예술가, 미술계의 로빈후드... 

뱅크시를 일컫는 다양한 수식어들입니다. 미술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만한, 현대 미술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입니다. 뱅크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을 정도로 많은 화제를 뿌리는 유명한 대중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뱅크시로 추정되는 인물

뱅크시는 본래 거리나 공공장소에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말이 좋아 거리의 예술가이고 그래피티이지, 사실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래피티는 그저 공공시설에 낙서를 하고 더럽히는 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지금도 거리나 공공시설물허가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많은 나라들에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뱅크시는 어릴 때부터 반항적인 기질이 있었는지 그래피티를 하다가 경찰에게 잡히기도 하고 학교도 스스로 그만두었다고 하네요. 이런 기질은 성인이 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는 반전, 반자본주의, 반권위 등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한 그림을 그 메시지의 기원이 된 현장에 그리곤 합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그림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간에 직접 그리는 식이에요. 보통 사람들이 사는 길거리도 있지만 참혹한 전쟁의 현장까지 가서 그림을 그리다니. 마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스필만'이 전장의 폐허 속에서 쳤던 피아노 연주를 연상케 하죠. 바로 이처럼 일반인들에겐 접근조차 어려운 곳에 그는 마치 보란 듯이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뱅크시 예술의 특별한 지점입니다. 그의 예술이 던지는 메시지가 극적으로 부각되면서 묵직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죠. 

Monkey Parliament(원숭이 의회)/ 영국 정치인들을 침팬지에 빗댄 작품

뱅크시는 한편으로 허세에 물든 권위를 조롱하고 자본권력에 맞서는 그림을 그리며 일종의 사회 운동에 가까운 활동을 합니다. 작품 '원숭이 의회'를 보세요. 우리가 항상(?) 욕하는 바로 그곳. 국회입니다. 어느 나라나 위정자들은 욕도 많이 먹고 조롱당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정치가들을 원숭이로 그려놓은 유명 예술가가 있었던가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면 어땠을까요? 상상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아무튼 그는 권력자들을 향해 아주 강한 조롱을 하면서도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서인지 오히려 대스타가 됩니다. 이처럼 쉽고 통쾌하게 보여준 사례는 일찍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문화권력이자 큰돈을 버는 아티스트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마케팅 전략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관종'아티스트로 평가받기도 해요. 각자 판단하면 될 일이지만 설사 뱅크시가 돈을 벌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이런 방식을 취했다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그의 작품과 활동은 NFT아트(크립토 아트)의 성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단 한 번도 NFT작품을 만든 적이 없어요. 말부터 어려운 크립토 아트 혹은 NFT 아트와 대체 뱅크시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요? 그래서 이번 에는 뱅크시 아트가 NFT로 만들어진 과정과 크립토 아트의 관점에서 뱅크시를 살펴보며 NFT아트와 뱅크시에 대해 한꺼번에 알아볼게요. 가성비 괜찮죠? 바로 시작합니다. 



멍청이들이라고 조롱했더니 벌어진 일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뱅크시는 직접 작품을 NFT로 만든 적이 없어요. 그런데 뱅크시의 작품 중 NFT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있습니다. 작품은 'MORONS(멍청이들)', ' LOVE IS IN THE AIR(사랑은 공중에)'가 대표적이에요. 각각 2021년, 2022년에 NFT로 제작되었는데, 모두 실물 작품을 NFT로 전환해 만들었습니다. 뱅크시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NFT로 만든 것입니다. 누가 무슨 이유로 만들었을까요?


우선 MORONS를 보면 작품의 내러티브와 NFT로 전환되는 과정이 매우 파격적이었어요. MORONS는 우리말로 '멍청이들'이라는 뜻인데, 바로 자신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경매장에 나온 사람들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의회 의원들을 원숭이라고 조롱했던 뱅크시 답죠? 그래도 그렇지, 자기 작품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감사는 못할 망정 '멍청이'라니요.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경매 시장 크리스티에서 말입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자신의 고객이 될 사람들에게 멍청이라고 부를 수 있으신가요?

크리스티 경매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그림 

위의 그림은 1987년 당시 고흐의 작품이 약 3,630만 달러(한화 약 460억 원)라는 역대 최고 금액으로 낙찰된 것을 기념해 크리스티에서 올린 트위터 내용입니다. 1987년이면 양념치킨 한 마리가 6천 원도 안 됐는데 작품 하나가 460억 원에 팔렸으니 물가를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금액이죠.

MORONS(WHITE)

크시는 이 트위터의 그림을 패러디해 'MORONS'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림 원본의 고흐 작품 위치에, 뭔가 글자를 적어 넣습니다. 자세히 볼까요?

너희 멍청이들!

작품 사겠다고 온 경매 참여자들에게 작가는 최고의 모욕을 선사합니다.

조롱당한 경매 참여자들은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까요? 천만의 말씀.

그들은 높은 가격에 입찰해 작품들을 완판 시킵니다. 아래 표는 실제 판매 기록입니다. 가장 저렴한 에디션의 평균 가격이 15,080파운드인데 현재 환율로 2,500만 원이 넘습니다. 비싼 작품들은 2억을 훌쩍 넘어요. 욕은 욕대로 먹고 비싸게 사고. 이 정도면 진정한 호갱 컬렉터들 아닐까요?


크리스티 경매에서 MORONS가 판매된 가격

뱅크시는 본래 예술 작품을 단순한 돈벌이로 여기고 경매에 나선 사람들과 크리스티의 상업주의를 풍자하려고 했어요. 이런 조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비싼 가격에 팔렸죠. 물론 뱅크시도 예상했을 겁니다. 이렇게 해도 자신의 작품이 비싸게 팔릴 것이라는 것을. 뱅크시 특유의 '풍자와 냉소'를 머금은 내러티브 자체가 이미 미술 시장에서 인정받는 상품이 되었다는 것을 모를 리 없기 때문입니다. 


원본을 불태우는 사람들

'MORONS'의 원본 중 하나는 Injective Protocol이라는 블록체인 기업이 2021 3월, 95,000달러(약 1억 원)에 구매합니다. 그리고 이 원본을 NFT로 전환한다는 명목으로 불태우기로 결정하죠. 원본 작품을 불태운다고 하니 독자분들 중에는 데미안 허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불태우는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데미안 허스트가 작품을 불태운 것은 이보다 훨씬 뒤였지만 규모는 훨씬 컸습니다.(2022년 10월) 

MORONS 소각 장면

뱅크시 작품 원본을 불태우는 장면은 트위터로 중계되었는데, 영상에 나온 인물은 "실물을 제거하면 NFT가 대체 불가능한 진정한 작품이 되고, 물리적 그림의 가치는 NFT로 옮겨올 것이다."라고 의도를 밝힙니다.(이러한 예술 작품의 가치에 대한 정의는 이후 데미안 허스트의 The Currency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각된 작품은 2021년 3월 8일 NFT거래 플랫폼인 오픈씨(Opensea)에서 경매를 통해 판매됩니다. 물론 작품 원본을 아깝게 왜 태울까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소성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셋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하나가 희소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물 작품과 NFT작품 모두 각각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둘보다는 하나로 만들어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전'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NFT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행위였죠. NFT로 전환된 작품의 경매 낙찰가격은 실물 작품 구매 당시보다 4배 비싼 228.69 이더리움(약 4억 원). 가격만 고려한다면 결과적으로 작품을 불태운 의도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픈씨에서 판매된 MORONS


150억짜리 작품을 170만 원에 소유하는 방법

2021년 벤처기업 파티클은 뱅크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Love Is In The AIR(사랑은 공중에/이하 LIITA)'를 1,290만 달러(약 150억 원)에 구매합니다. 2022년에는 이 작품을 가로 X 세로 100개로 나누어 1만 개로 제작(민팅)하여 개당 1,500달러에 판매했습니다. 뱅크시의 작품을 일반인들이 소유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이죠. 또 구매자인 파티클 입장에서도 구매 가격보다 높은 가격(총금액)으로 완판하고 이후 거래가 될 때마다 수수료 수입이 생기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업 이름을 알리는 엄청난 홍보효과도 있었을 겁니다. 

이 NFT를 구매하게 되면 그림 조각의 소유권을 갖게 되고, 자신이 구매한 NFT가 뱅크시 작품 중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표시된 증명서를 받습니다. 150억 원이 넘는 뱅크시의 대표작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죠. 2023년 8월 현재 기준 1만 개 NFT 중 가장 저렴한 조각은 20만 원대입니다.(글 아래 링크 참조) 

                              

실물 원본 VS NFT. 무엇이 가치를 결정할까?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모두 뱅크시의 아트를 기반으로 한 NFT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MORONS는 실물 원본을 소각해 NFT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면, LIITA는 실물 작품을 그대로 둔 채, NFT를 추가 제작했다는 점입니다. 두 작품의 NFT 전환 방식에 차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원본 작품의 개수 차이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배경 색상별 MORONS 에디션

MORONS는 배경색에 따라 여러 버전이 있는데 소각된 것은 흰 배경의 MORONS입니다. 그마저도 총 650개 에디션 중 하나였기 때문에 하나를 없앤다고 해도 소각에 대한 부담이 덜 했을 것입니다. 부담이 1/650으로 줄어들었을 테니까요.

'LOVE IS IN THE AIR' 650개 에디션(왼쪽) / 1개 에디션(오른쪽)

한편 Love Is In The Air(LIITA)는 650개 에디션의 빨간색 배경 작품(왼쪽)과 1개 에디션으로 만들어진 흰색 배경(오른쪽)의 작품이 있습니다. NFT로 전환한 것은 오른쪽의 흰색 배경 작품으로, 단 1개의 원본만 존재하기 때문에 희소성이 매우 크죠. 뿐만 아니라 프린트로 판매된 왼쪽 작품에 비해 오른쪽 작품은 뱅크시가 오일과 스프레이로 직접 그렸기 때문에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뱅크시가 직접 그린 원본을 공개 소각하기에는 희소성, 가격, 저작권 등 여러 가지로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문화재에 가까운 예술작품 원본을 마음대로 소각한다는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예상했을 겁니다. 한 마디로 뒷감당(?)이 안 되는 것이죠. 이런 NFT전환의 방식만 보아도 결국 '희소성'이 주요한 가치 평가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크립토(NFT) 아트와 뱅크시

위의 NFT들은 뱅크시 아트를 소유한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NFT화'한 것입니다. 뱅크시가 직접 NFT를 만들거나 스스로를 NFT아티스트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또 크립토 아트는 블록체인에 기록된 아트로 디지털 아트를 의미하기에 뱅크시가 디지털 아트를 만들지 않는다면 크립토 아티스트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뱅크시의 행보와 크립토 아트 사이의 철학적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어요. 

여기서 크립토 아트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도 많을 텐데요. 크립토 아트는 NFT 아트와 비슷한 용어로 자주 서로 혼용되곤 합니다. 이는 크립토 아트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어요. 둘 모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예술 작품을 의미하는데 크립토 아트가 조금 더 탈중앙의 의미를 내포한 철학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라면 NFT 아트는 블록체인으로 기록한 작품을 의미하는 기술적 용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구분되는 용어는 아니기에  어떤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나 한국에서는 주로 NFT 아트로 불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편에서는 뱅크시 아트의 정신과 크립토 아트의 철학이 상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크립토 아트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출처 : justincone.com


권력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 탈중앙화

크립토는 본래 중앙화된 독점 권력의 '분산'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국가와 은행이 가진 자본 권력을 탈중앙 암호화폐(Crypto Currency)로 대체하고자 했으며, 구글, 애플과 같은 대기업들이 가진 정보 권력을 개인에게 이양하고자 했죠. 특정한 권한을 소수가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그 주체의 권력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시장을 장악하면서 모든 것을 통제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성격이 왜곡될 뿐 아니라 독점권력이 부당한 통제와 지시를 하더라도 막기가 쉽지 않겠죠. 주주의 국가에서 삼권분립을 채택한 이유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크립토는 권력의 분산을 위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활용하는 하나의 대안일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서로 누구인지 모르는 개인들 간의 합의'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또 기존 은행과 달리 모두의 거래 내역을 모두가 살펴볼 수 있는 투명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행이 하던 신용 평가와 거래에 대한 인증을 블록체인을 통해 익명의 개인들이 대신해 줍니다. 권한이 분산되고 투명해지며 민주적인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가 자연스레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예술분야에 적용한 것이 '크립토 아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예술 작품의 원본/소유에 대한 증명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권위 있는 미술계의 특정기관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써가며 원본 여부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어도 디지털 아트라면 말이죠. 블록체인은 한 번 기록되는 순간부터 수정도 삭제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술 작품의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어 소유자가 누구이고 언제 누가 얼마나 오래 소유하고 있었는지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자연스레, 특정한 기관이나 권위 있는 전문가가 인증해 줄 필요가 없으니 권위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권한은 분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소수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것, 즉 '탈중앙화'가 크립토의 본질입니다.


뱅크시는 정치적 폭력, 경제적 독점, 문화적 카르텔 등 기득권을 향해 '그 꼴은 더 이상 못 봐주겠어'라는 듯이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저항해 왔습니다. 이는 기존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크립토의 기원과 유사한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뱅크시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당한 우크라이나의 폐허 건물에 그림을 그려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자국민 보호의 명분으로 분리장벽(Palestine wall)을 세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이스라엘의 폭력을 고발합니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대기업에 대한 분노를 그림에 표출하기도 합니다. '눈을 먹는 아이'라는 그림을 볼까요? 한쪽 면만 보면 아이가 눈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옆에 이어져 있는 그림을 보면 눈이 아니라 쓰레기에서 태운 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죠. 마치 전쟁의 참상을 글과 사진으로 고발하는 종군기자처럼 뱅크시는 그림으로 파괴된 인류애의 현장 곳곳을 누비고 다닙니다. 

러시아 침공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건물에 그린 그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설치한 분리 장벽
영국 웨일스의 Port Talbot에 그려진 벽화(눈을 먹는 아이?)
쓰레기를 태운 재를 먹는 소년(위와 동일한 벽화)

예술계도 그의 비판을 비껴갈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미술계의 상업주의와 권위에 맞서는 뱅크시는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그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가 낙찰되는 순간 액자에 설치한 파쇄기를 작동시켜 그림을 파괴했습니다. 작품이 잘리는 도중 분쇄기가 오작동하면서 파쇄가 중단되었는데 이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로 해석되었죠. 당시 이 '파쇄기 작품'을 만들 때는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나름 철저한 파괴를 준비했는데 유튜브에서 분쇄기 준비와 연습 장면이 담긴 영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 왼쪽) / 파쇄된 풍선과 소녀(오른쪽)

뱅크시는 공개적인 가격 경쟁을 통해 작품의 가치와 권위를 인증하는 '바로 그 현장'에서 작품을 훼손함으로써 그들이 부여하는 가치의 허상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3년 후 다시 경매에 오른 이 작품이 1차 낙찰가의 18배인 2,540만 달러(약 300억 원)에 판매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1차 경매 시 파쇄 현장을 보는 경매 사회자(왼쪽) / 2차 경매 시 300억 원에 낙찰된 풍선과 소녀(오른쪽)

그는 단지 '저항, 반대'만 외치지는 않았습니다. 전쟁피해자, 여성, 난민, 노숙인, 아이들 등 사회적 약자와 개인들을 돕는 데 자신의 재능과 명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코로나 시기 영국의 병원에 그림을 기부해 260억 원을 모금했고, 베들레헴에 위치한 병원, 노숙인 자선단체, 난민 지원 단체, 환경 단체 등에도 그림을 기부하고 모금했습니다. 그가 이제까지 자신의 아트를 이용해 모금한 금액은 4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개선을 위한 실천까지. 권력의 탈중앙화를 모토로 하는 크립토의 정신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 코로나 시기의 영웅 묘사


당신이 누구인지는 관심 없어요

크립토 아트에서는 국적, 나이, 성별, 신분, 학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12세 아이도, 옆집 할머니도,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도 크립토 아트를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밝힐 필요도 없습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나이가 어리고 인맥이 없어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면 시장에서 언제든 평가받아 볼 수 있습니다. 


340만 달러 이상 판매기록 14세 Nyla Hayes 작가의 NFT 'Long Neckie Ladies' - 

뱅크시는 정체를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어 '얼굴 없는 화가'로 불립니다. 대중들은 그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아트를 공감하고 좋아합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쉽고 명쾌한 목소리를 내는 뱅크시의 대중성과 익명성은 예술로 취급받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비주류로 취급받던 '거리의 예술'을 주류 시장에서 인정받게 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뱅크시의 주류 미술 시장 진입 과정은 아티스트가 '누구인지'보다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가 더 중요한 크립토 아트 시장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거리에서 블록체인으로 

NFT아티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브랜딩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습니다. 대기업 혹은 인플루언서들과 협업을 통해 자신을 홍보하거나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일상을 공개하면서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기도 합니다. 

반면 뱅크시는 철저히 자신을 숨겨 왔습니다. 정체를 숨기는 것이 자유로운 활동에 유리하고,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얼굴 없는 예술가'로 이미 브랜딩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거리에서 시작된 그의 아트는 이제 새로운 작품이 등장할 때마다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NFT가 되어 팔리는 일상의 예술이 되었습니다. 그가 NFT를 하게 될지 여부와는 별개로, 지금까지 그가 보여온 행보와 그로 인해 일어난 현상들이야말로, 진정한 '탈중앙 크립토 아트'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XUDKyFM_Qb

• 뱅크시 작품 설명  https://banksyexplained.com

• 뱅크시 작품 진품 여부 인증 기관  https://www.pestcontroloffice.com

• MORONS 오픈씨 링크  https://opensea.io/collection/burntbanksy   

• MORONS 소더비 경매기록 

https://www.sothebys.com/en/buy/auction/2019/banksy-online/banksy-morons

• LOVE IS IN THE AIR 마켓 플레이스

https://marketplace.kalao.io/collection/0xf675a87397a6239eaf95ad948670a5b19d076c59/items

• LOVE IS IN THE AIR 상세정보 

https://www.particlecollection.com/collection/love-is-in-the-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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