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화는 아주 길었고, 격렬했고, 치열했다
귀신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한 그림이라며 봄이가 그려주었다ㅋㅋ 공포영화를 좋아하는데 귀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다니, 초등학생 봄이는 참 귀엽다.
2016년 8월 16일 화
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첫 방학이 되었다.
우리는 맞벌이 가정이라 봄이는 돌봄이 필요했다.
지윤이랑 나이터울이 좀 있다 보니,
지윤이 방학 때는 지윤이가 함께 있어주었는데
지윤이가 개학을 하면서
봄이는 돌봄 교실을 가야만 했다.
학교 돌봄 교실은 친한 친구들이 많지 않고
특히 여자아이들이 많지 않아
봄이는 돌봄 교실을 거부했다.
내가 일을 하니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데도
봄이는 계속해서 가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가급적 봄이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 주어서일까...
돌봄 교실에 가기 싫은 봄이는
아침부터 징징대며 울고 떼를 썼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보아도,
돌봄 교실은 절대 가지 않고
혼자 집에 있겠다고 하였다.
난 걱정이 태산인 데다 점심도 준비해두지 않았는데
절대 가지 않겠다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둘이서 실랑이를 하는 가운데
내 출근시간은 임박해졌고
어쩔 수 없이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하고 출근했다ㅠㅠ
출근하면서 봄이랑 통화를 하면서도
집에서 투닥투닥하던 연장전이 시작되었다.
“봄이, 너!
남은 방학 동안은 할머니집에 가야 할 것 같아!”
“싫어! 안 갈 거야!!”
“안돼! 너 혼자 집에 있는 거
너무 위험하고 엄마도 불안해.”
“안 갈 거야! 안 갈 거라고!!”
내 목소리도, 봄이의 목소리도 점점 격앙되었다.
“안돼! 너 할머니 집으로 가야 해!
혼자 집에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해.”
“그럼 엄마는 나를 안 키울거면서 왜 나를 입.양.했.어!!”
순간...
나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너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엄마가 나를 안키울거면서 왜 나를 입양했냐고!!”
아... 오랜만에 우리 둘 사이에 등장한 단어, 입양!
입양이라는 단어를 갑자기 이런 맥락에서 들으니
놀랍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나의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는데
봄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이번 일로...
입양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나에게 불편함이
조금은 남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내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봄이에게 정확학게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봄아! 내가 널 안 키우겠다는 거 아니야.
네가 방학 동안 돌봄 교실을 안 간다고 했으니까,
그 기간 동안 할머니에게 가 있으라는 거야!
내가 언제 널 안 키운다고 했니?
어느 엄마가 아이 키우기 싫다고
할머니한테 보내버리겠어?
너 할머니한테 키우라고 보내버리면,
엄마는 너 보고 싶어서 얼마나 힘들겠어!”
말하는 순간 봄이는 안심이 되었는지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런 줄 몰랐어, 엄마.
나는 엄마가 날 안 키우려고 하는 줄 알았어.”
“봄아~. 자식은 키우고 싶다고 키우고,
엄마 말 안 듣고 키우기 싫다고 보내버리고
그러는 게 아니야.
그리고 너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너 집에 두고 1박 2일 여행도 못 가는데,
널 어떻게 보내버리겠니?”
“엄마.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나와 봄이는 생각의 간극이 컸다.
사실, 우리의 대화는
아주 길었고,
격렬했고,
치열했다.
긴 시간 동안 있었던 대화를 모두 기억할 수 없어
짧게 글로 남기니 차분하고 정돈되어 보이긴 하지만
입양이라는 말이 나온 우리의 대화 중
가장 거칠었던 시간이었다.
나를 안 키울 거면 왜 입양했어!
라는 말이
가슴이 아플 줄 알았는데
솔직히 크게 가슴이 아프거나 신경 쓰이진 않았다.
순간 조금 놀라긴 했지만
아... 봄이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 정도였다.
내 마음이 크게 아프지도 않고,
내가 크게 놀라지도 않았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봄이를 더 편하게 위로해 줄 수 있었다.
봄이에게 지금 입양은 어떤 의미일까?
봄이와 나의 입양 마주이야기하기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이젠 그 길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고
그 캄캄한 터널로 들아가는 것이
살짝 기대가 되기도 한다.
나도 조금씩 단단해져가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