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봄이, 그녀가 궁금한 세 가지

낳아주신 분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또 한 가지

by 크레이지고구마

13살의 봄이는 입양에 대해 말을 하거나

질문을 하는 횟수가

예전에 비해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다.


어릴 땐, 갑작스러운 질문과 감정표현으로,

나를 많이 놀라게 했었는데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입양에 대한 말이 쏙 들어갔다.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봄이는 꽤 많이 자랐고,

친구에게 입양사실 이야기 후

힘든 일을 겪어내기도 했고,

입양에 대해 많은 이야기와

자신에 대해 찾아가는 시간이 있었으니

이제 어느 정도 할 만큼 하기도 했다고 본다.


그리고 입양이라는 이슈가 봄이에게

이제는 조금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도 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최근 3년 동안, 봄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입양이라는 단어가 평소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입양이라는 단어가 한 번씩 생각이 났는데

(긍정적 부정적 피드백이 모두 있었다)

요즘은 왜 입양이라는 말이 생각이 안 나는지 모르겠어.

나를 낳아주신 분이 있다는 것도,

입양되었다는 것도 딱히 생각나거나

따로 생각이 들지 않아.

낳아준 엄마와 직접 사는 내 친구들이 이렇겠지?

나는 엄마가 직접 낳지 않았는데도,

이제는 엄마가 직접 낳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지가 않는데, 그게 이상하고 신기해!!"


최근 3년 동안 봄이가 웃으면서 제일 많이 했던 말이다.

그만큼 수용했고, 봄이의 삶에서 입양이

조금 자연스레 스며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던 봄이가, 어젯밤에 잠들기 전

세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하고 자도 되냐고 물었다.

입양이야기일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는,

빨리 간단히 질문하고 자라고 했는데

예전에 했던 질문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엄마, 나를 낳아주신 분이 지금은 몇 살쯤 되었을까?"

"33살."

"어? 내 생각보다 젊은데?ㅎㅎㅎ"

"네가 기억을 잘 못하나 본데,

너를 낳아주신 분이 엄마보다 10살 어리다고

수십 번을 말했었다ㅎㅎ"


"그럼 나를 몇 살에 낳으신 거지?"

"21살."


"엄마가 몇 살 때 나를 입양했어?"

"31살.

내가 31살에 너를 입양해서,

너랑 내가 30살 차이 난다고도

수십 번 이야기했었는데. 기억 안 나냥!!"


"내 생각보다 낳아주신 분이 젊네.

나는 35살~38살 정도 될 거라고 생각했어."

"너를 낳아주신 분이 아주 어린 나이에 너를

낳은 건 아니야.

입양을 보낸 사람들이 더 어린 사람들도 많아."


여기까지는 봄이가 지금까지

수십 번도 더 물어봤던 질문들이다.

늘 하는 질문이라 새겨듣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질문들을 다시 빠르게 한다는 건,

분명 다른 질문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나를 낳아주신 분 이름을 뭘까?"


나는 사실, 봄이의 생모 이름을 알고 있다.

자칫 이번 질문 때 봄이에게 생모의 이름을

말할 뻔했는데, 다행히 정신줄을 놓지 않았다.


"글쎄... 네가 입양되기 전 이름이 전효빈이었으니까,

분명 아마도 성은 전 씨일 테고, 전효* 이거나

전*빈이 아닐까 싶어.

보통 아기를 낳으면 '하늘 ' '사랑' 이런 이름으로

짓기도 하지만, 생모가 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만 바꿔서 짓기도 하더라고.

그러니 전효* 이나 전*빈일 텐데, 내 생각엔

전효*일 것 같아."

(실제로 전효*이 맞다)


"나를 낳아주신 분은 잘 살고 있겠지?

행복하면 좋겠는데^^"

"아마도 너를 낳아주신 분도 잘 살고 있을 거야.

결혼을 해서 아기가 있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봄이의 생모는 결혼 후 아들만 두 명이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엄마~. 혹시 진짜 나를 낳아주신 분

사진 같은 거 없어? 화질이 안 좋아도 괜찮은데..."

"없어.(사실은 갖고 있다ㅠ.ㅠ)

너 낳아주신 분이 보고 싶구나? 왜 보고 싶어?

내가 옆에 있잖아."

우리 둘 다 엄청 크게 웃었다.


"아니~ 엄마는 진짜ㅋㅋㅋ 보고 싶다기보다는

궁금한 거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그래ㅎㅎ"

"알고 있어ㅋㅋㅋ 그런데 나 진짜 웃기지 않냐?

너를 낳아주신 분이 왜 궁금하냐니ㅋㅋㅋ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이 어딨 냐ㅋㅋㅋ

내가 말했지만 진짜 웃기는 것 같아ㅎㅎㅎ

낳아주신 분 얼굴이 궁금한 건 당연한 건데^^"

"나를 낳아주신 분 얼굴도 보고 싶고,

목소리도 들어보고 싶어."

"목소리는 왜? 그것도 얼굴이 궁금한 것과

똑같은 이유일까?"

"아니... 목소리가 궁금한 이유는, 목소리를 들으면...

얼굴의 생김새를 조금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목소리가 궁금해.

직접 만날 수도 없고, 사진도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목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생겼는지

더 쉽게 그려볼 수 있을 것 같거든."

"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엄마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목소리 듣기가 더 어려울 것 같은데?

지난번에 마리아의 집에 갔을 때 수녀님이 그러셨잖아.

네가 낳아주신 분과 많이 닮았다고.

그러니까 거울을 보면 너를 낳아주신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금은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힘들면 가발을 쓰거나 헤어스타일을 조금 다르게 해서 거울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봄이가 만족하지 않을 답이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얘기해 보았는데, 역시나 반응은 내 예상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글쎄... 나는 거울을 보고 싶지는 않아.

수녀님이 많이 닮았다고는 했지만,

거울을 보면 그냥 내 얼굴만 보여.

내 얼굴을 보면서 나를 낳아주신 분을 생각하는 게

나는 잘 안되더라고.

그래서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어.

내가 궁금한 건 나를 낳아주신 분의 얼굴 생김새와

목소리 이 두 가지, 그리고 한 개가 더 있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면 뭉클하면서 눈물이 나는 거.

이게 너무 궁금해."

"그러게. 아직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 거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를 때 눈물이 나는 거 말이야.

그때 네 기분이나 느낌이 어떤 거야? 슬픈 거?

감동적인 거? 기쁜 거?"

"그걸 모르겠어. 생일이라서 정말 기쁘고 즐겁거든.

그리고 그때 엄마가 내 생일날 낳아주신 분이

생각이 나는 거냐고 물어봤잖아.

그런데 나는 내 생일에는 한 번도 낳아주신 분이

생각이 안 났어.

그냥 내 생일이라서 좋고, 즐거웠는데,

3학년 생일 때부터인가?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면 뭉클한 느낌이 들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노래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갔어.

엄마나 아빠는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갔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그때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화장실로 간 거야.

그냥 엄마아빠 앞에서 우는 거 안보여주고 싶었거든.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서, 더 못 울겠더라고.

낳아주신 분이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니고,

슬픈 건 분명히 아닌데,

정말 기쁘고 즐겁고 좋은데 감동적인 건 아니고,

그냥 이상하게 몽글몽글? 뭉클한 느낌이 들면서

눈물이 나려고 해.

이게 정말 궁금해. 내 세 가지 궁금증은 이거야.

낳아주신 분의 얼굴과 목소리,

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면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그리고 왜 그 느낌이 뭔지 잘 모르겠는지... 이거 세 개야.

이제 얘기 다 했으니까 나 그만 잘게.

그리고 정말 이상한 건...

난 평소에는 하루 종일 입양이나

낳아주신 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전혀 안 나는데,

자려고 누우면 한 번씩 생각이 나더라ㅎㅎ

요즘에는 진짜 생각이 계속 안 났었는데

정인이 사건 때문에 다시 갑자기 생각이 났어."




우리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에는 늘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는 이미 봄이가 초1 때 다다랐다.

그 이후 봄이의 질문이나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정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추상적이고, 세심했으며, 아주 기민하고 어렵다.


내가 찾아주고 싶어도 찾아줄 수 없고

봄이가 찾으려고 해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퍼즐들.


퍼즐이라는 단어는 봄이가 내게 먼저 얘기했었다.

한 개를 찾아서 뭔가 해소될 때마다 퍼즐을 맞췄을 때

기분 좋은 느낌과 똑같다고.

입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찾는 게,

퍼즐을 맞추는 것 같다고.


엄마가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니까,

자신도 입양에 대한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니

우리 둘은 똑같다고 했다.


봄이는 아직 2차 성징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는데

나는 봄이가 아기 때부터 생모에게

그녀의 사춘기와 2차 성징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봄이의 생모는,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녀가 행복하기를,

봄이가 돌이 지나면서부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나중에 봄이가 성인이 되어, 생모를 찾아서 만났을 때

구김살 없는 밝은 얼굴로

봄이를 마주하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봄이에겐 본의 아니게 생모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중에 봄이가 생모를 만나고 나면,

그때 나는 알고 있었다고 솔직히 말하고 싶다.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지만,

너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싶다.


봄이와 장난치듯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봄이의 가슴속에 복잡하게 엉키고 뒤집어져

찾기도 힘든 퍼즐조각들이 있는지 감히 다 알 수는

없으나 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봄이가 더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마음을 내어주는 것,

그것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봄이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이것은 봄이가 오기 전부터 늘 하던 고민이었는데

뭔가 한 개를 해결하면

두 개가 생기는 것 같은 굉장한 고민이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고 재미있다.


봄이는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3개나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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