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는 이기적이다

여기서 ‘청소’라는 행위로 돌아와 보자. 인간에게 ‘청소’란, ‘분해’와는 확연히 다른 개념일 수밖에 없어. 우리가 자연이라는 시스템이 ‘청소’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축적했기 때문이야. 그 안엔 수십억 마리 가축의 생명이 있고, 지구를 한 다스 정도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도 있어.


우리에게 ‘청소’라는 시스템이란, 너무 방대한 탓에 무감각이 정신건강에 좋은 현상으로 남아있는 거야. 누구도 분해할 수 없는, 비재화의 해일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어. 이걸 정확하게 관측하는 건,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일 거야. 하지만 여전히, 이 해일을 어딘가에 흘려보내긴 해야 해. 적어도, 사람 눈에 가능한 안 띄는 곳에 옮겨 놓아야 해. 게다가 내일은 아마도, 오늘보다 거대해진 해일을, 또 어딘가 비교적 빈 공간에 쑤셔 넣어야 해.

의심의 여지없이, 우린 ‘청소’라는 개념을 긍정적인 쪽으로 배웠어. 내 주변을 알아서 잘 정리하고,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것도 잘 관리하는 시스템이었지. ‘청소’는 개인에게 꽤나 귀찮은 행동인 동시에, 사회 전반에 필수적인 관념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교육의 일환인 거야.


게다가 ‘청소’는 인간사회에 국한된 관념이 아니야. 많은 동식물이 보금자리를 정돈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어. 특히 크고 작은 사회를 이루는 무리에선, 다른 개체의 털이나 표피 등, 외관을 청소하는 행위를 많이 관찰할 수 있지. 이것은 위생이나 안전에 직결한 문제를 많이 회피할 수 있게 하는, 현명한 행동이야.


우리가 청소를 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자연스레 풍화되기 때문이야. 우리 집안에 쌓이는 먼지란, 정말 사소한 모든 것들이 풍화한 흔적이지. 때론 죽어버린 피부의 조직일 수도 있고, 때론 머나먼 도시에서 날아온, 플라스틱의 잔해일 수도 있어. 그것들은 이른바 가장 작은 단위의 쓰레기이고, 너무 쌓이면 때로 질병을 불러올 수 있는, 비재화의 일종이야.


당연히 우리는 그런 것을 청소해야 해. 아니,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꽤나 거대하고 쓸모없는 덩어리까지 눈앞에서 삭제할 필요가 있지. 그래서 청소된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거야. 청소란, 보금자리의 비재화를 실제로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행위가 아니니까.


자연 상태에선 ‘청소’라는 행위가 ‘분해’라는 자연스런 과정을 거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돼. 누군가의 죽어버린 피부조직이나 냄새나는 똥은 자연스레 토양의 일부가 되고, 죽어버린 동족의 사체는 누군가의 귀중한 먹이가 되는 식이야.


하지만 오해해선 안 돼. 이 순환마저 완전히 재활용되는 형태는 아니야. 세상의 모든 것은 풍화되고 있거든. 이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점점 불규칙한 형태로 해체되고 있어. 다만 이 순환이 그 해체의 속도를 가장 늦추는 시스템이란 거야.


또 근현대의 인류가 고안해 낸, ‘청소’시스템은 자연의 그것과 많이 다른 관념이야. 일단, 처리하는 쓰레기의 양과 종류가 다시없을 정도로 방대하지. 도저히 자연에 맡길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내가 내 방을 청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뭐가 되었든, 난 언젠가 처리해야 하는 비재화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나가지. 그것엔 매일 버리는 포장지나 음식물 쓰레기부터, 처치 곤란한 가전제품까지 무궁무진하게 포함할 수 있어.


뭐가 되었든, 내가 오늘의 청소 작업을 수행하는 건, 익숙하고 시원한 보람을 느끼며, 눈앞에 거슬렸던 비재화를 제거하는 과정이란 거지. 하지만 그건, 절대로 시원하게 사라진 게 아니야. 분명 어딘가에, 조금 달라진 비재화로써 세상을 떠다니고 있는 거지.


‘청소’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이젠 비재화가 된 무언가를 자신의 영역 밖으로 이동시킨 것에 불과해. 인간만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우주의 설계가 그러한 거야. 새가 둥지의 이물질을 물어다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떤 생물의 사체나 분비물이 분해되는 과정까지 그러해. 물론 후자는 에너지를 재활용하는 비율이 너무나도 높은 경우지만, 절대로 비재화가 된 무언가에 100%의 재생은 일어날 수 없거든. 이건 사체에서 결국엔 분해될 수 없던, 작지만 수많은 조각이 분명 어딘가에 날아가거나, 그 좁은 장소를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시켰단 거야. 겉으로 보기에, 아무 변화가 없어도 말이야.


고로, 세상은 잔혹하고 이기적이야. 어떤 에너지도 온전히 회수할 수 없어. 모든 에너지는 반드시 마모되는 재화야. 그런 우주에 생명이 있다면, 당연히 에너지 쟁탈전을 시작하는 거지. 아니, 애초에 에너지 자체도 주변 에너지에 어떻게든 영향을 주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걸!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중력, 양자역학, 블랙홀의 존재가 보여주는 세상이 그래.


우린 어떻게든 재화를 확보하고, 비재화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어. 그래서 시장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자본’을 근간으로 한 사회체계의 실험을 거의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었지.


여기서 ‘청소’라는 행위로 돌아와 보자. 인간에게 ‘청소’란, ‘분해’와는 확연히 다른 개념일 수밖에 없어. 우리가 자연이라는 시스템이 ‘청소’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축적했기 때문이야. 그 안엔 수십억 마리 가축의 생명이 있고, 지구를 한 다스 정도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도 있어.


우리에게 ‘청소’라는 시스템이란, 너무 방대한 탓에 무감각이 정신건강에 좋은 현상으로 남아있는 거야. 누구도 분해할 수 없는, 비재화의 해일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어. 이걸 정확하게 관측하는 건,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일 거야. 하지만 여전히, 이 해일을 어딘가에 흘려보내긴 해야 해. 적어도, 사람 눈에 가능한 안 띄는 곳에 옮겨 놓아야 해. 게다가 내일은 아마도, 오늘보다 거대해진 해일을, 또 어딘가 비교적 빈 공간에 쑤셔 넣어야 해.


‘청소’는 이기적이야. 아니, 파멸적이야. 아무리 내가 검소하게 살아가도, 그 자체로 이기적이고, 내가 사회에서 무엇을 ‘소비’하고 ‘생산’하든, 파멸적인 무언가지. 모순적으로 다행인 사실은, 우리의 대부분이 도시에 모여 사는 게, 오늘까지의 해일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야. 우리가 흩어져 살았다면, 도시의 인프라로 비재화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비용절감’을 누릴 수 없었을 테지……. (아마 이 경우에도, 소비의 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니, 이 계산이 맞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어쩔 수 있을까? ‘청소’를 어디까지 부정하는 게 가능한 거지? 생존의 의미에서 ‘청소’를 부정할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럼, 거대한 ‘청소’와 ‘배출’과 ‘소비’를 부정할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이 어떠한 해결책인지에 달려있지만, 최소한 이 세 가지는 거대해야만 하거든. 여기서, 우리의 인프라를 퇴보시킬 수는 없는 거니까.(오히려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야 하기에)


내가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의 어떤 사소한 관념이나 개념이 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는 거야. 우리가 평범하게 행하는 ‘청소’라는 행위는, 내 눈앞에 소소한 보람을 만끽할 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회를 굴리는 거대한 ‘청소’ 시스템의 일부로써, 어딘가의 골칫덩이가 되는 거야.


거대한 쓰레기장의 산을 어디까지 인지하는지도 참 좋은 주제지. 사회 속의 개인은 자신이 버린 쓰레기가 어디에 가는 건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부분은 쓰레기를 누군가가 수거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야. 그 안에서도, 그런 일은 저급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내심 생각하는 사람들이 섞여있지.


어딘가에 작은 쓰레기산이 있다는 걸 그저 인지하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본 경험이 있는 것도 꽤나 큰 차이야. 실제로 목격한 쓰레기산의 집합지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어떤 방식으로 그 덩어리를 처리하는 시설인지도 큰 영향을 주지. 크고 작든, 이런 일에 종사하는 것과 아닌 것에도 거대한 차이가 있을 거야.


‘나’라는 개인이 이 주제를 인지하는 방식은 거의, 미디어의 ‘다큐멘터리’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야. 내가 실제로 목격한 곳은, 시외 변두리 동네에 있는, 작은 쓰레기 처리 시설 정도가 한계지.


만약 내 경험이나 관심이 이 정도로 끝나버렸다면, 난 이 문제를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평생 자신이 분리수거를 양심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믿었을 거고, 평생 환경오염이란 다른 사람들의 만행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청소’가 이기적인 행동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부터, 참 거대하고 은밀한 만용이 내 삶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내가 무심코 사 먹는 포장 음식의 포장이, 참 쓸데없이 비대해 보이는 거야. 매일 내가 샤워하며, 생각 없이 배출하는 물의 양이란 어마어마하고, 고기를 먹는 한 끼가, 한 번에 샤워 일주일치 정도의 물을 내다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지.


이건, 날 둘러싼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어. 언젠가는 벌레를 살충제로 잔인하게 처형하는 환경주의자를 본 적이 있었지. 식당에서 일할 때는, 우리가 정말 많은 음식을 낭비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우리가 너무 많이 생산해 버려서, ‘재고’라는 비재화가 몇 억 톤의 단위로, 아무런 쓰임도 없이 처분되거나 쌓이기만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지.


하지만, 그뿐이야. 이런 의식이 있어도, 나나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살아갈 수 있는 거잖아. 설령 내가 무의식적으로 많은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가난한 나라에 수출되어, 더 기형적인 산을 만들 뿐이란 걸 알게 되더라도, 결국 우리의 ‘청소’와 ‘분해’가 약자부터 쓰레기의 협곡에 몰아넣는 행위란 걸 알게 되더라도, 우리의 삶이 바뀌는 일은 없어.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변하지 않더라도, 이 현실의 내막을 조금이라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엔, 큰 차이가 있는 법이야.


난 단지 문명의 ‘청소’는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을 설명하기 위해, 이만큼이나 질서 없이 긴 글을 써야 하는 못난이야. 내 현실 속에선, 이 이상으로 글을 잘 써낼 수가 없네. 한 편으로 다행이지만, 내 실력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그럼에도 부디, 인간이 비겁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거짓 없이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의 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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