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99번인, 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야.
여기까지 생각하니 난, 어릴 때의 잔인한 경험 하나가 떠올랐어. 혼자서 촌 동네를 탐험하고 있을 때, 좁아터진 우리에 수십 마리의 닭이 쑤셔 넣어진 광경을 봤지. 내가 경악했던 것은, 그 속에 닭들이 순서라도 정한 듯이, 한 마리의 닭의 등을 쪼고 있는 모습이었어. 다시 떠올리기 싫을 만큼 잔인하고 생생한 기억이지. 집요하게 쪼아지는 등은, 갈라진 살덩어리와 피 웅덩이가 규칙적으로 뒤섞이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식용으로 대량의 병아리와 닭을 사육하는 시설에서 녀석들의 부리 끝을 자른다는 걸 알았을 때, 그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지. 그때는 그런 조치를 의심 없이 납득했지만, 군대에서의 경험은 날,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어. 어쩌면 우리(병사)에게 취하는 조치란, 병아리의 부리를 자르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어쩌면 사회엔, 보이지 않게 부리를 자르는 조치라는 게 있어서, 개개인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있는 건 아닐까?
군대에서 경험한 생활에 빗대 보자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부분이 많았어. 전편에서 말한, 총기 사고와 관련한 조치들이 그러하지. 여기선 한 가지 더 언급하면서, 마무리해보려 해.
내가 군대에서 놀란 것 중 하나는, 식사 중에 숟가락만 사용한다는 점이었어. 이 문화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정말로 식사 중에 젓가락이나 포크 같이, 다른 도구를 쓰지 않는다는 의미야.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 내 사견으로 그런 조치는, 실용적인 부분도 상당하거든.
일반적인 사회생활의 식사에서 숟가락만 사용하는 것은 이상할 수 있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으니까. 전시의 여부와 무관하게, 군인의 식사에 쏟을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전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지. 언제 밥이 공급될지도 모르고, 언제 기습을 당할지 모르고, 언제 이동을 해야 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어.
그런 상황에선, ‘식사’라는 행위를 최대한 간략하게 할 필요가 있어. 식사와 부가적인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정확하게 분배하고, 상황에 따라 가장 간편하고 확실하게 영양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을 항상 고민해야 하지. 여기엔 식사에 필요한 기구의 단순화도 필수적인 요소가 될 거야.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 숟가락은 그런 필요성에 거의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는 도구야. 어떤 형태의 밥이 오든, 손과 숟가락만 있으면, 간편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지.
하지만 내가 이 조치에 대해 들었던 설명은, 전혀 다른 것이었어. 젓가락이나 커터칼처럼, 날카로운 물건으로 인한 병사의 자해나 부조리 행사를 방지하지 위해서라고 했지. 난 뭔가 많이 이상하다고 느꼈어. 병영생활에서의 병사들을 그 정도 수준으로 믿을 수 없다면, 전쟁이 났을 때 누구에게 총을 쥐어주겠다는 말이지? 이 나라는 우리가 지키는 게 아닌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어야, 이런 상황이 당연한 것이 될 수 있지?
뭐, 적어도 내가 경험한 군생활에서, 포카락이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었다는 얘기야. 당시의 포카락은 거의 인권이었지. 평시에도 무조건 숟가락으로만 식사를 해야 하니까, 포크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수행할 수 있는 도구는 정말 유용했어. 어딘가의 혈관에 꽂으려 해도, 전혀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었으니까.
병아리와 군대에서의 경험을 연결했을 때, 정말 기가 막힌 비유라고 생각했어. 둘 다 밥을 속 시원하게 먹을 수는 없고, 누군가(자신을 포함하는)를 해칠 위험을 없애버리는 거야. 전문용어를 빌리자면, ‘카니발리즘’(동족상잔)을 예방하는 이 조치를,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을 거 같아. 우리가 군인을 양계장 수준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의미도 가질 테니까.
양계장에서의 동족상잔은, 지나치게 한정된 공간의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것이야. 주로 보복의 위험이 가장 적은 나약한 개체에게, 폭력적으로 발산하는 거지. 난 이것이 병 내에 발생하는 부조리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원리라고 생각하고 있어. 자유가 억제된 상황에서,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이에게 여러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는 거야.
그런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부리를 자르고, 날카롭거나 위험한 물건의 소지를 제한하는 건, 일차원적으로 좋은 효과를 낼 수는 있어. 물리적으로 흉기가 될 수 있는 물건을 배제하는 거니까.
하지만 양계장의 병아리와 부대의 군인에게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어떠한지,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병아리에게 부리를 자르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일 가능성이 커. 동물인권 운동가들이나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싫어할 설명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축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시스템은 필수적이고, 우리가 병아리라는 다른 종을 지배하는 방식이니까.
병아리의 부리를 자르는 것은, 그것만큼 효과적으로 녀석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행위야. 우리는 녀석들과 완벽하게 의사소통할 수 없기에, 행동을 제한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까. 만약 부리 끝을 자르는 행위가 병아리의 먹이활동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문제를 만든다면, 우린 오히려 그 행위를 하지 않았을 거야. 먹이활동의 저하로 잃는 생산량보다 동족상잔으로 잃는 고기가 더 적었을 거니까.
과연 부대의 군인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군에 있는 동안은, 그렇게 생각하고 조치를 취해왔다고 봐. 군인은 병아리처럼 부리를 자를 필요가 있고, 손쉽게 카니발리즘에 빠지는 개인이며,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있었어.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모든 조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린 이 문제에서, 단순히 물리적으로 흉기를 배제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바라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중일지도 몰라. 이런 안일한 눈가림이야 말로, 잔인하게 다른 종을 대량으로 사육, 지배, 소유하는 것보다 멀리해야 하는 행위가 아닐까?
그럼 난 다른 해법을 가지고 있냐고? 물론이야. 군부대 내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은 전적으로, 군부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럼 문제는 훨씬 간단해져. 군부대라는 환경을 어떻게 갖추느냐라는, 조정할 수 있는 변수로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으니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가적인 설명을 하자면, 이 정도의 케이스는 다른 사회문제에 비해, 지극히 축복받은 수준이야.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은 요인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니까.
군부대라는 환경에서, 한 인간이 극단적인 행위를 하는 이유도 명백하지. 군부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말이야. 물론 군대의 특수성을 유지해야 하기에, 그런 스트레스를 없애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거지만, 대부분의 인간이 적어도 극단적으로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는 정도의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건, 귀납적으로도 연역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조치야.
여기서 ‘인간의 집단생활을 어떻게 조정하느냐?’는 철학을 등장시켜야 하지. 이에 대해서 인류는 10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 개인당 얼마만큼의 면적을 확보해야 하고, 어떤 메시지나 행동을 피해야 하며, 어떻게 위생을 관리하는지에 관한 거 말이야. 여기엔 집단생활 속의 흉악범죄에 대한 자료도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생각하는 핵심은, 개인이 군부대라는 특수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정감을 보장하는 것에 있어. 한 마디로, 개인이 군부대를 신뢰하게 만드는 거지. 실제 전투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에게 취하는 이상한 조치는, 이런 점에서 최악의 조치가 되겠지. 부대가 병사라는 개인을 불신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니까. 대신 군부대가 병사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하고, 그들이 조직을 믿고 따라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야 해.
군부대와 병사 개인이 신뢰를 주고받는 관계를 만든 후에야, 발생하는 인명피해를 온전히 천재지변, 안전 불감, 특수한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을 거야. 말 그대로 법의 테두리로 해결하는 문제 말이야.
물론, 신뢰를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막연하고 형체 없는 이상론은 아니야. 군 입대를 인정하기 전에, 희망자들이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 있는지 설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마찬가지로, 군부대가 입대자들에게 어떤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 확실하고 주기적으로 공표하는 것도 중요해. 이에는 의무 수행에 보상하는 충분한 금전이나 세액혜택이 있을 수 있어. 또는 평시에 어느 수준의 일상생활을 보장할 것인지 약조하는 것도 있겠지. 반드시 가야 해서 끌려가는 군대가 아니라, 국가와 개인 사이에 어떤 신뢰의 교환이 이뤄지고 있는지,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야.
군대에서 사용하는 무기, 훈련과 실제상황에 대한 정보교환도 중요 사항이야. 개인 총기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어떤 안전장치가 있으며, 과거에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어떤 실제상황을 훈련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지 교육하는 건, ‘안보’라는 신뢰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갖추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병사 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것도 좋은 사례가 될 거야. 주기적인 보급품의 실질적인 수준을 피드백하고, 어떤 물품은 시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고 안 좋은지 공유할 수 있어. 서로 신뢰를 교환하는 의사소통이 활발하면, 병사끼리도 어떤 물건은 병사에게 맞지 않는 사치품이라는 식으로, 스스로 건강한 문화를 조성할 수 있을 거야. 그들은 젊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으니까!
중요한 건 서로 어떤 형태로든, 디테일한 상황과 약속을 교환한다는 사실이야. 이런 실천과 신뢰를 하나씩 늘리면, 무기 개발 외적 부분의 막대한 국방비도 올바르게 순환시킬 수 있어. 신뢰를 교환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간부를 신속하게 잘라내고, 돌발행동으로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자를 행정적으로 배제할 수 있으니까. 너무 낙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부디 사람들이 대한민국 군대 체계의 수많은 모순을 더 알아차리길 바라. 방산비리와 집단생활에 대한 철학이 부족하기에 발생하는 문제 말이야. 군인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며, 평시에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 정확히 정의하는 것에 말이야. 앞으로 군대가 어떤 국민이든 받아들일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다는 비전이 필요할 거야. 부디 군대가 군대답길 바라. 아니라면, 없느니만 못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