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의 역설

최근에 무언가에 가격을 따져보는 것에 관심이 생겼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에 담겨있는 것처럼, 진정한 의미로 저렴한 것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가장 처음 생각한 건, 유튜브의 쇼츠(주로 15~60초 사이의 짧은 영상 콘텐츠) 기능같이, 짧은 형식의 동영상이었어. 이른바 ‘킬링타임’에 점점 진심이 되어가는 시대에, 짧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미디어는 환상적인 성장을 이뤄낸 거 같아.


이 분야는 설명할 의미가 없을 정도로, 나와 주변인의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었어. 단순히 웃기는 동영상을 넘어서, 훨씬 길이가 긴 미디어의 요약이나, 특정 지식의 핵심 정리, 간단한 요리법, 새로 생긴 기묘한 유행, 새로 개발 중인 기술의 소개, 특정 제품에 대한 광고 등. 여러 분야에 활용도가 높은 미디어지.


내가 처음 쇼츠를 경험했을 때, 그건 단순히 유튜브가 어느 가벼운 SNS의 영상 공유 기능을 따라해 보는 장에 불과했어. 하지만 그건 순식간에, 테스트라는 이름표를 떼어내야 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버렸지. 내 입장에선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볼 새도 없이, 모두의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한, 거부감이었어.


하지만 나도 곧, 그런 거부감을 잊어버렸지. 이건 그냥, 짧게 편집한 영상의 무한한 나열에 불과해. 오히려 영상의 썸네일을 보고, 흥미가 가기에 클릭하고, 새로운 창에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음미하는 전통(?)적인 방식에 거부감을 느낄 정도로 편리하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당신이 영상을 보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란, 유튜브 어플을 클릭하는 것뿐이라는 거야. 물론 설정을 바꿔서, 앱에 들어가자마자 쇼츠를 보여주는 것을 꺼버릴 순 있겠지만, 이젠 추천 영상의 스크롤을 내릴 필요도 없이,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무작정 틀어주고, 손짓 하나로 다음 영상으로 바로 날아갈 수 있다는 거지!


이런 변화를 처음 의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조금 소름이 돋았어. 조금이라도 무료한 시간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유튜브에 손이 가고 있었지. 아니 오히려, 유튜브 자체에 지배당한 건 꽤나 오래전 일이라, 무료할 때 찾는 어플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야 해. 하지만 더 무서운 중독이 날 통째로 집어삼켰는데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은 건, 내게 큰 충격이었거든.


내 가치관으로,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은 전혀 잘못된 현상이 아니야. 오히려 무언가에 중독되는 건, 필연적이지. 어떤 의미에서든 우린, 어딘가에 묶여있거나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미쳐버리기 때문이야. 누구든 어떠한 판단을 위해 기준을 가져야 하고, 그 기준이 철저히 파괴되었을 때, 스스로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 마련이야.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으면, 잔혹한 세상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지.


하지만 당신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 어떤 중독이든 맹목적으로 빠져있으면 안 돼. 언제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하고, 그 무너진 잔해를 착실히 재구성하면서 당신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진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야. 무언가를 진정으로 이루는 건, 필연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야.


그래서 목표가 있는 자는, 무언가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어. 지금의 경우엔, 너무나 쉽게 쇼츠의 간편함에 생활을 녹여버렸다는 문제지. 적어도 내가 영상으로 얻는 지혜를 잘 활용하기 위해선, 그것을 내 의지대로 소비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는 거야. 뒤집어서 생각하면, 콘텐츠를 활용해 장사를 하는 유튜브의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판단하는 기제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쇼츠같은 형식을 밀어붙이고 싶은 인력이 작용한다는 거지.


적어도 내가 쇼츠 이전에 유튜브를 사용했던 방식은 훨씬 전통(?)적인 것에 가까웠어. 내게 유튜브는 애니메이션과 비슷했거든! 물론 거대한 알고리즘의 통제 속에 노는 거였지만, 그 정도는 가볍고 유용한 도구의 대가라 생각하면서 즐길 수 있었어. 추천하는 영상을 살피면서,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찾아갈 수 있었고,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을 멀리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지. 매일 2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생각에 간접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고. 한 마디로 볼 영상을 선택할 때, 내 선택이 개입할 최소한의 여지가 있다고 느꼈어.


이 느낌이 전혀 진실에 가깝지 않다 해도, 크게 놀랍지 않아. 내가 알고리즘에 어느 정도 중독되는 건 용납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게 나의 착실한 감정을 자신들에게 알맞게 교묘히 수정하려는 걸 탓하고 싶지도 않았지. 적어도 그건, 내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에 있었으니까. 적어도 여전히, 새로운 지식을 찾으려는 노력에 ‘즉각 반응’ 해주니까.


하지만 쇼츠가 내게 원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 난 습관적으로 쇼츠를 들락거렸고, 그 속에 내 ‘선택’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기도 전에 일상 속에 들여 버렸어. 이젠 자기 전에 무조건 쇼츠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지.


이쯤에서 내 나름대로 쇼츠를 분석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다행히도 난, 아주 약간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미니멀리즘 등에 관심이 있었지. 적어도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출 수 있었어.


난 가장 먼저 ‘언제나 쇼츠를 보는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했어. ‘가장 저렴하고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재를 끝없이 소비하는 현상’을 ‘쇼츠의 역설’이라고 이름 지어 보았지. 그렇게 쇼츠를 생각하니,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격언을 자연스레 연결할 수 있었어. 쇼츠란 거의 모든 면에서 기존의 영상 소비 방식보다 ‘저렴’하기에 너무나 쉽게 소비하게 된다는 거지.


이것은 실제 소비량이 기대 소비량보다 많아지는 인력을 만들어. 저렴하게 무언가를 소비했다는 느낌은, 더 쉽게 다음 소비로 이어지는 거지. 이 현상의 무서운 점은, 기존의 ‘저렴한 소비재’ 전략보다 훨씬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점이야. 비슷하고 저렴하게 무언가를 소비했다는 의식이 더 쉽게 다음 소비로 이끌 수는 있지만, ‘저렴한 소비재’에겐 다음 목표(다른 상품)로 이어지는 데에 물리적인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지.


쉽게 생각해서, ‘다른 곳보다 저렴한 계란’을 찾아내는 여정은 힘들고, ‘다른 곳보다 저렴한 오이’도 찾는 건, 더욱 피곤한 일이라는 말이야. 이것이 할인마트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이기도 하고. 하지만 쇼츠의 전략은 한 술 더 완벽하게 ‘저렴함’을 빙자할 수 있지. 다음 소비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이 0에 수렴하기 때문이야. 그저 스크롤을 한 칸 내리는 것에 불과하지.


하지만 아무리 저렴하게 많이 판다고 해도, 그 수요만큼의 공급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단순히 무지막지하게 쇼츠를 양산하는 건, 장기적으로 비효율적인 전략일 거야. 한 채널의 입장에서, 쇼츠의 단가당 수익은 매우 낮은 수준이고(기존 유튜브의 전략으로, 자연스레 광고를 노출할 수 없기 때문에), 영상의 수가 무차별적으로 늘어나면, 영상의 질이 낮아지는 인력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야.


그래도 너무나 간단한 해결책이 눈앞에 있었어. 기존처럼 광고로 수익을 내는 구조를 완성하는 거야. 물론 광고사가 자체제작해서 유튜브에 의뢰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영상 제작자에게 직접 의뢰하여, 쇼츠 형식의 광고를 제작하는 거지!


사실 이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성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야. 이미 ‘광고’란, 쇼츠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 우리들에게 각인되어 있었으니까. 1분도 안 되는 제품 홍보 영상의 역사는 80년 가까이 이어져오고 있거든! 기존의 유튜브 생태에도, 광고사가 유튜버 채널에 직접 광고를 의뢰하는 방식이 있어서, 자체적으로 해당 영상에 ‘유료 광고’임을 표시하는 제도나 기능이 발전하고 있었지.


다시 내 이론으로 돌아와 쇼츠의 비용을 따져보면, 가장 저렴하게 즐기는 영상이 가장 비싸다는 수식을 완성할 수 있어. 쇼츠는 그 자체로 저렴한 소비를 연속적으로 유지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자연스레 광고의 형식으로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콘텐츠야. 이런 특성 때문에 기존의 영상 형식보다 더 많은 광고를 소비자에게 노출할 수 있어. 게다가 제작 채널과 광고사가 직접 맺는 계약으로 만드는 쇼츠의 경우엔, 사용자의 <유튜브 프리니엄>(유튜브 이용자가 직접 유튜브사에 돈을 지불해서, 영상 시청시간에 따른 의무적인 광고노출에서 벗어나는 방식) 결제여부에 전혀 상관이 없지. 기존처럼 영상 제목이나 썸네일을 통해 해당 영상이 광고인지의 여부를 판단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야!


‘저렴할수록 비싸다.’는 명제를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날 여기까지 끌어준 거 같아. ‘쇼츠의 역설’을 구성하는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 이것 말고도 저렴하다고 느낀 것이 생각보다 훨씬 비싼 경우를 많이 생각할 수 있을 거야.


난 쇼츠를 통해 자취생이 따라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법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솔직히 영상의 메시지에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있어. 주로 자취생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라면이나 스팸, 식빵, 계란처럼, 완성음식을 베이스로 만드는 것들이지. 라면에 여러 가지를 첨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저걸 구비하는 것도 비용인 건데, 왜 저런 재료가 언제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거지?’였어.


물론 그들이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요리하는 게 아니고, 요리를 한다면 갖추게 되는 것들이라는 사실도 알아. 하지만 그 저렴한 추가 재료를 신경 쓰는 게, 가장 애매할 수도 있거든. 라면에 파와 계란 정도 추가하는 건 그러려니 하지만, 그 이상은 ‘자취생을 위한 요리 꿀팁’에 부적절하지 않을까? 그들이 쇼츠를 통해 가성비 좋게 맛있는 라면을 도전하는 것은 자유지만, 영상에서 소개하는 조리법이 정말로 저렴한지는 따져볼 일이야. 라면은 그 자체로 간편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기에 라면인 거고, 애초에 그런 영상을 만드는 목적을 생각하면, 정말로 간단하거나 저렴한 것으로 많은 이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는 모순을 발견하게 될 거야.


라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라면이야말로 ‘저렴할수록 비싸다.’는 명제에 가장 강력한 반박이라고 생각해. 라면이야말로 저렴하고도 맛있는 식품의 대명사니까. 당장엔 ‘위대한 발명’을 해당 명제의 예외에 두거나, 그것을 발명하고 소비재로 갖추기 위한 노력의 비용을 들먹이고 싶지만,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긴 힘들 거 같아. 다만 내가 라면에 가지는 인상이란, ‘가장 빈곤한 약자의 입장이라도 사회를 견디게 할 수 있게 하는, 맛있는 진통제’라는 정도를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 어쩌면 라면은 세금을 통해 확보되는 복지와 유사하거나, 깊이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언젠가 이에 대해 써보는 것도 재밌을 거야.


게임이라는 장르가 언제나 인류에게 매혹적인 유흥이었다는 주제도 이것과 연결할 수 있을 거야. 저렴하게 다른 세상이라는 설정을 구입하고, 순수한 승리감을 얻는 구조 말이야. 잘 응용하면, 더욱 세상을 닮은 게임과 더불어, 그저 단순한 게임이 성공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아. 저렴하게 그런 성취를 얻어낼 수 있는 거 같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에 지불하는 추가적인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겠지. 그런 심리에 기대는 게임사의 수익구조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길게 돌아왔는데, 세상에 공짜란 없고, 저렴할수록 한 번 더 의심해 보도록 해. 분명 재밌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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