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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 이야기

by 여러 이상한 헛소리 Mar 18. 2025

  난 ‘금도끼 은도끼’를 싫어하는 편이야. 물론 정직함이 보상받고, 거짓이 벌을 받는 이야기는 통쾌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잖아?


  참고로 ‘금도끼 은도끼’의 원본은 <이솝우화>라고 해. 헤르메스 신이 20세기의 우리나라에서, 산신령으로 각색된 케이스지. <이솝우화>를 생각하면, 이 이야기의 수명이 참 길게 느껴져. 거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야.


  내 생각에, 이 동화가 현재까지 전승되는 이유는 구전이 잘 될 정도로 단순하고, 유익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야. 권선징악은 동화에 거의 필수 조건이고, 정직함은 바람직하고 거짓됨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정의는 참 단순하고 유익하지.


  즉,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메시지란 거야. 우린 그들이 정직하고 거짓되지 않은 미래를 살아가길 염원하지. 정말 오래된 전통이자 판타지네. 동화라는 건, 사회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비추기 마련이거든.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다음 세대가 해결해 주길 바라는 의식이라고 볼 수 있어. 교육의 순수한 목적이란 의외로 이런 법이야.


  주인공이 나무꾼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까? 동화는 누구나 만드는 거지만, 권장하는 버전을 고르는 건 지식인이고, 재밌게 구전하는 건 약자와 서민이야. 단순한 이야기에서 단순한 정직함이 요구되는 이야기라면, 열심히 일하는 서민이 주인공으로 적절하단 거지.


  근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노동자에게 합당한 금이나 은을 보장하는 역사가 얼마나 있었을까? 보장되지 않으니까, 신령님이 주신 거겠지. 언제나 인류는 더럽지만 필요한 일을 하층민에게 전가하고, 천대해 왔어.


  하지만 힘든 육체노동은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저축해야 지속할 수 있는 거야. 너무 당연한 거 아니니? 정말 심각한 모순이 보일 정도로 말이야. 그들에게 금이든 은이든 생기는 건 당연해야 하는데, 정말로 그렇다면 이상한 일인 세상.


  ‘금도끼 은도끼’는 정직함이 보상받는, 없는 세상을 그리고 있어. 애석하게도, 그게 동화의 순기능이지. 노동자의 삶에 위안을 심고, 분노하는 동시에 희망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창문이 되는 거야.


  세상은 정직함과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 같아. 거짓은 쉬운 이득을 줘. 쉬운 건 쉬운 거대로, 어려운 건 어려운 거대로 모아서, 원하는 곳에 몰아버리는 방법이지. 거짓과 모순이 만연한 곳에서, 정직함이란 가장 연약한 전략이자 양심일 거야.


  다른 나무꾼 이야긴 어때? 선녀 같은 여잘 바란다는 건? 사슴 같은 인간이 은혜를 갚는 방식이라는 건?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데, 모른 척하며 좋게 좋게 받아들이는 거 아닐까?


  나도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나무꾼은 그런 존재가 아니야. 그들에겐 남에게 자랑할 만한 영화(榮華)가 없거든. 아무도 진짜 나무꾼 따윈 기억하지 않아. 그들에겐 선녀 같은 아낙이 아니라, 풍진 세상을 함께 할 여인이 있지. 벌겋게 달궈 만든 쇠도끼만이 그들의 무기야.


  지금이라도 진짜 나무꾼의 이야길 동화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전에 말이야. 마침 내가 적당한 주제를 가지고 있어. 아버지가 들려준, 나무꾼의 지혜지.


  어린 시절, 아버지와 겨울에 땔 나무를 하고 돌아온 날이었어. 난 내일도 나무를 하러 가야 해서 좀 뽀루퉁한 상태였지. 아버지가 눈치를 챘는지,


  “아들, 나무를 가장 빨리 베는 방법이 뭔지 알겠냐?”


  뜬금없었지만, 생각나는 대로 답했어.

  “계속 나무를 베면 되잖아요.”


  아빠 미소 한 번.

  “아니. 오히려 쉬면서 베면 더 빠르지. 쉬는 틈에 톱날을 갈아주면, 더 빨리 나무를 할 수 있어.”


  그땐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나중엔 참 좋은 교훈이라 생각했어.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은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니라, 숨 돌릴 시간을 가지는 거지.


  최근에 이런 생각을 아버지에게 말할 기회가 있어서, 좀 더 진솔한 얘기를 할 수 있었어. 난 아버지에게 생각보다 많은 걸 배웠다고, 현실을 이야기하는 동화를 만들 수는 없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어.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숨겨둔 이야기를 꺼냈지.


  “사실,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 꽤 오래전부터 나무꾼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거든.”


  ?!

  “그래요?”


  “그럼. 아직 구체적으로 써 보진 못했지만, 어떤 흐름으로 잡아갈지는 생각해 뒀지. 늙은 나무꾼과 젊은 나무꾼이 있는데, 젊은 나무꾼은 항상 의문인 거야. 분명 자신이 힘도 세고 체력도 좋을 텐데, 늙은 나무꾼이 훨씬 나무를 많이 하는 거지.


  참다못한 젊은이는, 몰래 어르신이 나무하는 모습을 지켜봤어. 어르신은 나무를 하다가도, 도끼를 틈틈이 갈고 있었지! 젊은이는 옳다쿠나 싶어서, 바로 다음 날 어르신을 흉내 냈어.


  여기까지가 예전에도 들려준 얘기야. 나무를 잘하기 위해선, 도끼를 갈고닦아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연마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젊은 나무꾼의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어. 분명 나무하는 양은 늘었지만, 어르신에 비하면 아직 한참이나 부족했거든.


  젊은이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직접 어르신에게 물어보기로 했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나무를 잘할 수 있냐고. 사실 젊은이가 노인을 관찰하고 질문하는 건, 새로운 세대가 항상 가져야 할 겸손의 자세를 표현한 거야. 인간이 해내야 하는 교육의 모습을 담고 싶었지.


  아무튼 어르신은 깊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어. 난 도끼를 갈면서 숲을 본다네.”


  난 정말 깜짝 놀랐어. 정신이 번쩍 들더라. 삶을 관통하는 지혜란, 자신을 연마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거였어. 나무꾼이 숲을 보며, 어떤 순서로 어떻게 나무를 해나갈지 구상하는 것처럼 말이야. 아버지가 의도한 건지 심히 의심되지만 ㅋㅋ, 난 아버지가 말 한 이야기를 언젠간 완성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나무꾼이 세상을 살아간 ‘진짜 이야기’ 말이야.


  오늘의 흥분은 여기까지. 아직은 어른을 위한 동화 같아서 부끄럽거든. 내게 막연한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나무꾼과 동물처럼 여리고도 강한 존재를 보여주는 장이었으면 좋겠어. 적어도 죽어 가지 않는 정신이었으면 좋겠어. 물론 나만의 막연한 바람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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