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감탄하다 끝나겠네

by 여러 이상한 헛소리 Mar 18. 2025

  내 삶, 이러다 감탄만 하다 끝나겠어. 여태 해온 건, 감탄에 불과하더라고.


  무언가에 감탄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세상이 불편하고 놀라운 진실을 품은 만큼, 인간은 놀라운 존재니까. 세상 어디에나 모순이 넘쳐나는 것처럼, 어디에나 놀라운 게 펼쳐져 있어. 그런 걸 하나씩 수집하고 저장하는 건, 정말 흥분되는 일 아니겠니?


  하지만 항상 감탄하거나 모순을 수집하며 살고 싶진 않더라. 물론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나도 그런 감탄 거리를 만들어내고 싶으니까. 감탄에 취하기만 해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예전에 본 <공각기동대>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나. 그 세계에선 인간의 뇌를 ‘전뇌화’할 수 있거든. 이건 뇌를 기계의 형태로 구현해서, 뇌가 보낼 수 있는 모든 신호를 전자화하는 거야. 이를 통해 전뇌화한 인간은, 생각만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어.


  이 작품은 ‘전뇌화’가 가능하면, 인간이 육체를 벗어나, 영원히 살 수 있을 거라 가정하고 있어. 기계로 만든 의체나 단순한 구조의 로봇에 전뇌를 이식하는 방식이지. 즉, 인간의 정신(작중에선 이를 Ghost라고 불러)은 뇌 속에 있다고 확신하는 방식이야.


  오늘 얘기해 볼 건, 전뇌를 외부기억장치(전뇌가 연결되면, 기억을 증강현실로 다시 경험하게 할 수 있는 장치)에 넣어서, 결국엔 완성할 수 없었던 자신의 영화를 저장한 감독의 이야기야. 그는 스스로, 영원히 몇 개의 작품만 상영하는 조그만 영화관이 된 거지.


  문제는 그 상자(외부기억장치)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전뇌 접속한 사람들이 수면 상태에 빠져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야. 전뇌 해킹 시도도 없고 보안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기에, 들어간 사람이 원해서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었지.


  극단적이지만, 영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야. 작품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사람은, 그야말로 작품에 푹 들어가 버리거든. 내가 소설 <해리포터>를 다 봤을 때가 생각나. 그 억울한 상실감과 허무, 당시엔 감당할 수가 없었지. ㅎㅎ


  그 후에도 베르베르 선생의 <신>이나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 등의 작품을 읽을 때까지, 좋아하는 작품을 떠나보내기가 참 힘들었어. 내 모든 감정이 들어가 있던 하나의 세계가, 새로움을 잃는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 같아. 난 하도 현실에 비관적인 사람이라, 나도 저런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지.


  사실 이건, 두려움이야. 보통은 여운이라 부르는 이 감탄에 빠져선, 부정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거니까. 에피소드로 돌아와서, 외부기억장치에 전뇌로 접속한 주인공이 감독과 이런 대화를 해.


  “당신 말대로 나름 괜찮은 영화였어. 하지만 영화라는 건 잠시 즐기는 오락거리고, 그래야만 해. 시작도 끝도 없이, 그저 관객을 홀려 가둬 두는 영화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해가 될 뿐이야.”


  “혹평이군. 관객에게는 돌아가야 할 현실이 있다는 뜻인가?”


  “그래”

  노인은 쓸쓸하게 고개를 조금 숙인다.


  “여기 관객 중에는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 불행이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 당신에게 그 사람들의 꿈을 빼앗을 권리가 있나?”


  “없어. 하지만 꿈은 현실에서 쟁취해야 의미가 있는 거야. 타인의 꿈에 자신을 투영할 뿐이라면 죽은 것과 다름없지.”


  노인이 고개를 들어 보인다.

  “현실주의자군.”


  “현실 도피자들이 낭만주의자라면 말이지.”


  “강한 여자로구먼. 언젠간 당신이 믿는 현실이 만들어지면 불러주게. 그럼, 우리도 이 영화관을 떠날 테니까.”

  남자가 천천히 악수를 청한다.


  이런 에피소드야. 양심이 많이 찔리더라 ㅎㅎ. 객관적으로 난, 현실 도피하고 싶을 만큼 불행한 건 절대 아니니까. 지금, 이 작품을 회상하면서 글을 쓰는 것도 <공각기동대>에 감탄하는 연장선일지도 모를 일인 거고. ^^


  하지만 이제라도 이런 감탄 중독에 탈출해야겠더라. 감탄만 하면서 ‘나도 언젠간 저런 작품을 만들 거야.’라고 희망을 품는 걸 그만할 때가 왔거든. 그런 직감이 들었어. 꿈꾸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고. 적어도 내가 정말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말이야. 아무리 기승전결도 스토리도 없는, 허접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 모음집이라도 감탄만 하다 끝내는 것보단 나을 거야.

이전 11화 우리의 흔적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