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은 사람 에너지로 움직인다고 믿어.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상태에 있다고 말이야. 우린 서로에게 의존하는 존재니까. 물론 기 빠지는 사람을 상대하는 건 고역이지만. ^^
난 이걸 사람을 충전한다고 표현해. 나처럼 고요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혼자인 상태를 오래 유지할 때가 많아. 그러다 보면, 이런 특이점이 꼭 오더라고. 아, 답답하네. 밖에 나가 볼까? 그 친구는 요즘 잘 지내려나?
이런 사회적인 에너지는 거의 예외 없이 순환하고 있어. 카페에 가고, 인스타를 하고, 뉴스를 보고, 밥을 먹고, 안부를 묻지. 내겐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플러그를 꽂아서 충전하는 것처럼 보여. 나도 남에게 다양한 에너지를 얻고 있는 거지.
생각해 보면, 참 당연하고도 희한한 일이야. 우린 서로에게 에너지를 얻고 스스로 에너지를 더 개발하는 건데, 우리가 물리적인 에너지를 얻는 방식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기술은 일방적인데,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야.
물론, 이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야. 사람은 대부분 일방적인 관계에 시달리고 있고, 상호 보완적인 에너지 개발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상업적인 모델은 아니라고 평가될 뿐이지). 누군가는 정말 아무하고도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지.
다행히도 오늘은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우리가 서로를 충전할 수 있단 게 중요하니까. 이건 거의 정신의 무한 동력이야! 인간이 사회와 막연하거나 구체적으로 관계하면서 충전하는 에너지는, 계속 재활용하면서 발전시킬 수 있는 영감이야. 어떤 때에는 무료함이고 흥미이고 혐오이고 사랑이고 관심이고 비평이야.
때로 특정한 사람을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야. 사회 속에서 충전하기 힘든 정신의 조각을 채워주는 존재 말이야. 우리는 멀리 있어도 가까운 사람과 가까워도 먼 관계를 만들기 마련이니까. 물론 가깝고도 가까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은 분명 영원할 거야. 난 그리운 친구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표현하지.
‘지금 ○○스러움이 부족해. 충전할 필요가 있겠어. 녀석은 잘 지내려나? 카톡이나 넣어봐야겠다.’
그렇게 카페에서 수다나 떠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