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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지 않으면

by 여러 이상한 헛소리 Mar 18. 2025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거야. 호불호도 의견도 많이 갈리는 말이지. 난 이 말이 정말 절묘하다고 생각해. ‘범죄’도 ‘들키다’도 지극히 인간적인 개념이니까.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지구에 인간이 없다면 ‘들키는 것’도 ‘범죄’도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할 수 없을 거야. 어떤 형태의 ‘규범’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지키거나 어기는 건 온전히 본능의 영역이니까. 그것을 ‘범죄’나 ‘모범’이라고 부를 만한 이유가 전혀 없을 거란 거지.


  ‘들키는 것’은 훨씬 일반적인 개념일 거야. 하지만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에서의 ‘들키다’는 ‘범죄’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지. 그런 ‘들키다’는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거야. 본능의 세계에서의 불화는 ‘본능’으로 해결할 뿐이니까.


  ‘제도’의 세계에선 그 불화의 성격을 파악하려고 해. 우리가 법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이젠 이전엔 없었던 기준이 생기는 거야. ‘본능’ 이외의 것을 법으로 삼을 수 있고, ‘본능’ 이외의 것을 불화로 삼을 수 있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거야.


  ‘들키다’도 이제 ‘범죄’라는 개념과 연관될 수 있어. 어떤 세계라도 처벌은 ‘들키는 행위’로 이루어지는 거고, ‘범죄’ 개념이 존재하는 사회는 예외를 최소화하는 ‘제도’를 발전시키니까. 실제로 우린 계속해서 ‘들키는 행위’의 범위를 넓혀왔잖아? 이웃의 증언, 종교시설, 학교, 토지 소유권, 경찰, 군대, 주민 등록, 병원과 보험, 카드 결제, 과학 수사, 유선 TV, 톨게이트, 기차표, 여권, 인터넷, 검색 엔진, SNS, CCTV, 블랙박스, GPS, 휴대폰 등등.


  이쯤 되면, 들키지 않는 범죄가 대단하지 않니? ㅎㅎ 그만큼 우리의 사회는 예외를 줄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어. 어찌 보면 발전이나 신뢰의 형성, 혹은 법을 수호하는 거지만, 어찌 보면 개인을 통제하는 방식이기도 하지. 그렇게 우린 들키지 않았던 범죄마저 밝힐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른 거야.


  그렇다고 들키지 않는 범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범죄의 수법이 고도화되는 문제를 떠나서라도, ‘악행’은 일상에 항상 있는 법이니까. 어느 시대에나 ‘범죄’와 ‘불법’이라는 범주에 있더라도 통용되는 행위나, 범주를 벗어난 ‘악행’이어서 만성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이 있는 법이야.


  이 두 가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범주의 행위가 되기도 하지. 예전엔 ‘성추행’이라는 개념이 법에 없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축을 담당해 가고 있어. 몇 년 전만 해도 이 행위는 전자에 가까운 케이스이기도 했고, 아직 그런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현실이야.


  이처럼 역사의 흐름으로 밝혀지는 범죄적 행위가 ‘현실’ 그 자체인 경우도 있지. 얼마 전에 넷플릭스로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다큐의 <인종 간 부의 격차> 편을 본 기억이 나. 흑인이 백인들의 노예(재산)였던 근대의 역사를 보자면, 우린 명확하게 그것이 반인륜적인 악행이라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현재 미국 사회의 인종 간 빈부 격차에 대해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그것을 악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부분 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가깝지 않아? 이 다큐는 ‘과거의 불평등이 현재의 고통을 낳았다’고 주장해.


  1865년 미국 남북전쟁 직후, 흑인들에게 토지가 분배하는 법안이 링컨의 사망에 의해 좌절되었어. 다큐에선 이렇게 표현하지. ‘[평등한 권리]라고 하자마자, 백인들이 반발한 거예요. [그럼, 우리의 권리는?]. 존슨 대통령은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검둥이 편을 든다]라고 했죠.’


  계속해서 이렇게 설명해. ‘그러나 노예들은 그들의 주인을 위해 246년 동안 일했습니다. 백인들이 축적한 그 자산 말이죠. 그리고 부자들이 잘 아는 자산에 대한 사실 하나는, 자산은 불어난다는 것입니다. 세대를 거쳐서요. 안정적인 동네에 살면서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면, 가치는 자연히 증가합니다.’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을 펴면서 대공황을 이겨 내려는 시절에, 위험 판단 지역엔 담보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고 해. ‘[그 위험 판단 요소는 인종이었습니다.] 흑인 가정이 이사 오는 것은 집값에 위협이 되었죠.’ 이어서 당시의 인터뷰 화면이 나오지. ‘흑인 가정이 이사 오면 동네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세요?’ ‘몇 명이든 상관없이, 흑인이 이사 오면 집값이 뚝 떨어질 것 같아요.’ 바로 부가 설명이 이어져. ‘주택관리청은 대출을 해주지 않는 지역 지도를 만들었는데, 흑인 가정이 사는 동네를 빨간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생각해? 인종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는 정부와 인터뷰 참가자가 사실상 들키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재밌는 건, 만성적으로 어려운 경제 속에 근근이 살아가는 우리도 집값이 떨어지는 것엔 민감해지는 법이야. 어느새 노예 시대만큼 쉽게 가치 판단하기 껄끄러워진 거 같아. 이 다큐의 마무리 부분을 보면서 찬찬히 생각해 보자.


  ‘흑인은 246년간 재산 취급을 받았습니다. 백 년 이상 흑인의 재산 축적을 법으로 제한했었죠. 이러한 차별은 아직도 만연합니다. 빈부격차는 오랫동안 너무 벌어져서,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흑인들을 위한 보상이나 더 나은 대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놀라서 움찔합니다. 흑인은 평등을 보장받아야 해. 그러나 더 많은 걸 바라진 마. 겉으로 보기엔 타당해 보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난 어질 하더라고. 여태 들키지 않는 범죄에 대해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설령 남에게 들키지 않는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이미 자신에게 들킨 거라고. 그 가슴의 응어리가 영원한 비밀이란 걸 어렵게 만들 거라고 말이야.


  개인의 양심이나 성선설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어느 정도 타당한 생각이야. 실행자에게도 들키지 않는 범죄가 얼마나 있겠나 싶었지.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야. 우린 꽤나 빈번하게 우리도 모르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어.


  마음을 삭막하게 먹어야겠어. 근본적으로 이런 역사와 현대에 남에게 돈을 뽑아내는 방식이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인간에 대한 내 사랑과 믿음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무시무시한 주제를 건드려 버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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