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과의식증’이란 단어를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네. 이건 일반적으론 피해망상이나 피해의식과 비슷한 증상이야. 때론 딴생각이나 멍 때리는 것으로 생각되지. 난 그걸 과의식의 목소리라고 부르고 있어.
물론 순수하게 멍 때리는 거나, 다른 것들의 의미를 바꾸려는 건 아니야. 다만 내가 과의식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 사람들이 사용해 온, 편리하고 보편적이며 당연한 표현이란 거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방도란 없는 거니까.
난 내게 과의식증이라는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해. 스스로 진단한다는 건 웃긴 일이지만, 너무나 자주 타인과 발생하는 문제인데, 혼자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은 충분히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런 의미에서, 난 모두가 조금씩은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난 모든 것을 과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어. 특히 혼자만의 세계에서 관념적인 생각에 빠져버리지. 사람들은 자주 내가 영리하다고 하는데, 과의식증을 잘못 인식한 거야. 난 정말 아둔한 사람이거든. 겉멋만 든 헛똑똑이 말이야.
난 그냥 음침한 내 세계가 있을 뿐이야.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 나부랭이가 지적했듯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선, 자신은 대단하고 남들이 멍청한 거라 착각하는 정신승리를 지속할 뿐이지. 이런 부분을 보면, 가장 꼴 보기 싫은 인간이란 내게 가장 찔리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이제 과하게 의식하는 게 뭔지 설명해 볼게. 그건 고수 끝에 악수를 두는 것과 유사한 거야. 단번에 결정할 수 없는 문제를 너무 깊이 생각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 버리는 거지. 내 경우, 이게 모든 사소한 문제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모든 것에 진지충이 되어 버리는 거 말이야.
슬슬, 내가 사람들에게 받은 평가들이 이해될 거야. 조금만 뭐라 하면,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지고. 말싸움을 하면, 죄다 불편하다는 식의 꼬투리 잡기를 늘어놓지. 평소엔 뭔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안 갈 정도로 음침한 무표정이고. 별거 없는 대화엔 딴생각하는 표정이야. 기본적으로 멍하거나 맹~한 거라, 어떤 일을 시켜도 어정쩡한 사람이지. 또 웃긴 건, 참을성이 유별나게 좋은 사람에겐, 내가 특이하고 머리 좋은 사람으로 통하고 있단 거야.
처음엔 전혀 몰랐지만, 내가 보기에도 진저리가 나는 인간상이야. 내 과의식이 나름의 성찰이라도 하고 있어서 다행인 점이지. 물론, ‘나 자신은 자신이기 때문에 좋은 거지, 내가 남이었으면 가장 싫어할 만한 인물이다.’식의 성찰이 과의식증의 한 결과물인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야.
오, 생각보다 앞에 문단이 내 과의식증을 잘 설명해 주는 거 같아서 기뻐. 이런 식으로 난 너무 사소한 것부터 과하게 생각해 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 버렸다는 거야. 너무 어릴 때부터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걸 멈추지 않아서, 이젠 순수한 의미로 멍 때린다는 게 불가능해진 거지. 이거도 참 아이러니하네. 난 이런 잡생각과 소곤거림이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말이야……. 사실은 사람들이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순간들이 있었다니……. 지금도 믿고 싶지 않아.
그래서 그런 걸까? 딱히 살면서 할 일이 없었던 적은 없어. 동시에 흔히 얘기하는 심심한 상황을 가장 좋아해서, 무진장 한가한 삶을 살아왔지. 온전히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자신의 사색으로 마음의 평안을 느끼는 거야. 그래서 난 항상 만성적인 두통이 있어. 항상 세상에 집중하는 동시에 내 세계에도 집중하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니까. 결국 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내 의식에 집중해 버려서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을 자행하고 있더라.
물론 이것 자체로도 순기능이 있어. 언제나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는 건, 세상만사에 항상 의문과 호기심으로 넘쳐 있단 얘기니까. 난 세상이라는 놀라운 퍼즐을 파헤치는 재미로 살아온 거 같아. 객관적으론 아무 의미 없을지라도, 세상을 통해 내 생각을 만들어가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거든.
여기서 또 과의식을 발휘해서, 만들어낸 내 생각이 순전히 나의 생각인 건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어. 그럼, 세상에 완전 새로운 건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걸까? 새로운 것이란 정말로 끝없이 등장할 수 있게 설계된 걸까? 이런 식으로 내 생각에 꼬리를 무는 나날들의 연속이었어. 결정타 없이 끝말잇기를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그건 분명 질려버릴 거야. 난 과의식이 지겨운 적이 한 번도 없었는걸. 심지어 똑같은 과정으로 똑같은 절망과 우울함에 도달하더라도, 그때마다 그 감정들을 망각하곤, 신선하게 즐겨온 거 같아. 어우! 정신병다운 증상이네.
문제는 이런 의식적 노력이 실생활에선 하나도 쓸모가 없다는 거야. 심지어 성리학보다 말이야……. 그야, 그렇잖아.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만들어내고, 곱씹으려는 생각을 어디다 써먹을 수 있겠니? 게다가, 문제는 순전히 나에게 있는 거니까. 내 맘에만 드는 사고방식을 만들어내고, 그걸 최고의 지식이라고 믿으면서 사는 건 정말 비겁한 일이야.
간결하게, 자신만 중요하다는 고집을 고상한 언어로 포장하는 시도지. 문제는 그런 과의식의 상태를 나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는 거야. 그래도 그게 최악의 문제는 아니야. 이런 과의식을 남에게 폭력적으로 설파하려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그런 부분에선 스스로 칭찬하고 있어. 적어도 남에게 뻗대는 습관만은 의식적으로 자제할 수 있어 다행이야. 여전히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표정을 보며 살지만. 음, 그게 자제한 거라는 사실을 알면, 상대방은 분명 놀라겠지.
아무튼, 난 이런 과의식을 도저히 날려버릴 수 없어. 과하게 생각하지 않는 난, 나일 수 없다고 느끼거든. 이것만은 생각의 영역이 아니야. 생각하지 않으면, 난 분명 내가 아니야. 자신만을 위한 과의식 구슬을 빚어내지 않는다면, 난 죽은 거나 다름없어.
어쩌면 다들, 자신만의 양보할 수 없는 정체성 덕에 크고 작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닐까? 확실한 건, 난 이 과의식으로 한바탕 난리만 피울 수 있다면 어떤 후회도 없을 것 같아. 다른 소망이 있다면, 다들 그런 것 하나씩은 갖고 살아가길 바라. 분명 세상은 그 정도로 다양하게 재밌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