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이라고 부를 수도 없이 소설을 상상하는 건, 아무 대가 없이 행복할 수 있는 행위야. 그냥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보단, 진지하지만 각 잡으며 시작하는 구상보단, 훨씬 머리가 덜 아프지. 음, 난 정말 게으른 녀석이야.
ㅎㅎ, 이 소설은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라는 소설을 오마주한 거야. 제목이 멋져서 따라 하고 싶었지. 부드러운 세상에 살고 싶은 나의 욕망이 자극되더라고.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를 조금 설명할게. 주의할 점은 나도 소설을 읽은 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고,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라는 거야.
이 단편소설의 배경은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한 이후의 세계야. 그 속에 하나의 최첨단 집만이 살아남았어. 집은 세상의 일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본분으로 움직이고 있지. 아침에 주인을 깨우는 안내 방송을 울리고, 주인을 위해 사소한 동작을 도와주고, 간단한 아침을 차리고, 인공 바람과 햇빛과 냄새로 상쾌한 아침을 연출하고, 아무도 먹지 않은 아침을 치우고, 집을 청소하고, 음악과 시를 틀고, 정원에 물을 주고, 아이들을 위해 방에 자연의 풍경을 가득 채우고(영상을 비추는 방식으로), 방사선을 피해 온 강아지를 침입자 취급하고 제거하지.
결국은 외부의 예상치 못한 피해로 집의 자동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버리고, 집은 자멸하듯이 화재로 무너져 버려. 이것도 확실한 기억은 아닌데, 소설 어딘가에 방사선의 비가 폐허 위에 뿌리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아. 제목과 시에서 말 한 부드러운 비의 정체가 이 모든 음울한 정서를 마무리해 주는 거지. 물론, 이건 내가 보정해서 만들어 낸 기억일 수도 있어 ㅎㅎ.
내가 아이러니하게 느낀 건, 집이 처음으로 목적과 필요에 알맞게 행동했는데도(불을 끄려고 한 것), 다른 모든 행동처럼 아무런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는 거야. 우리의 최후도 그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자멸하듯이 모든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면서도, 대자연을 인위적으로 갈망하고, 이웃의 생명을 거리낌 없이 배제하는 잔혹한 폭력 말이야. 그래, 이젠 그 잔혹함이 우리 모두를 죽일 수 있는 사회도 꽤 오래 유지되었어.
<부드러운 세상에 살 거야>를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비슷한 거야. 부자의 최첨단 쉘터에 가난한 남자가 피신하지. 남자는 자기가 너무 이상할 정도로 부드러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게 돼. 자신을 깎아 먹는 세상은, 쉘터 껍데기만 뚫어 버리면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남자는 내가 꿈꾸는 삶을 한동안 살아가지. 내키는 대로 일어나면, 랜덤으로 재생한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목욕물이 알맞게 데워져 있고, 식사는 세계의 간단한 음식을 색다르게 즐겨보고, 일할 필요가 없고, 재미난 만화와 영화와 책을 보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내 작품을 쓰고, 탁구를 연습하고, 반려동물과 지내고, 집사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과 시시한 수다를 하고, 하루를 심심하게 기록하고, 아무 걱정 없이 잠드는 삶.
한 가지 남자를 불안하게 하는 건, 집에 CCTV가 있다는 거야. 아무도 그를 감시하지 않지만, 찝찝하기 마련이지.(어떤 상황이든, 우리가 어딘가에 예속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장치로 활용할 생각이야.) 하지만 남자는 굳이 그걸 부수거나 해제하지 않아. 쉘터 시스템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니까. 그냥 부자가 마지막 인류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설치한 거로 생각해 버리지.
그 남자는 의외로 검소한 삶을 살고 있어.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도, 자신의 비굴했던 삶을 잊어선 안 된다고 믿고 있지. 식사에 들어가는 재료를 최소화하고, 목욕물을 재활용하고, 청소 기능 없이 그 넓은 쉘터를 청소하고, 손빨래하고, 증강현실의 방이나 초콜릿 폭포처럼 집의 필요 없는 자잘한 기능은 최대한 꺼두면서 살아가지. 물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지만.
결국 남자는 자멸할 운명이야. 자신을 행복한 두더지라고 생각하는 삶은 오래가지 않거든. 아무리 함께할 반려견과 인공지능이 있다지만, 남자는 자신이 철저하게 외로운 상태라는 걸 알게 되지.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의 집처럼, 남자의 모든 행동과 기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태라는 거야.
자신이 꿈꾸던 부드러운 삶을 손에 넣더라도, 다른 중요한 과제를 찾지 못한다면 자멸해 버릴 거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은 단편이야.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 아무리 지금의 삶이 힘들게 느껴져도, 그런 고통이 끝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야. 중요한 건 고통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의미를 고통과 병행하는 거야.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사소한 스트레스를 계기로 미쳐버릴 거야. 온갖 사치스러운 기능을 무아지경으로 누리고, 큰 소리로 울다가도 화를 내버릴 거야. CCTV를 부수고, 강아지를 죽일지도 모르고, 온 집안을 망쳐 버리다가 밖으로 무모하게 탈출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모습을 담은 데이터는 미래의 누군가와 숨어있던 관찰자에게 스쳐가는 오락거리가 되어 버릴 거야. 그래도 부드러운 세상보단 가치 있는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