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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패왕 Oct 19. 2022

영화로 공부하기- 철학자들의 틀(3)

[5] 현대철학          


<1> 꽁트-실증주의

1)과학제국주의

 사회학의 시조이자 실증주의 철학자인 콩트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과학적 방법으로 파악하는 것처럼 "사회현상"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즉 사회도 자연과학적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콩트는 실험 관찰 검증이 불가능한 신학과 기존의 형이상학을 배격하고 새로운 학문을 지향하고자 했다이처럼 실증적(positive)이란 말은 다분히 신학적형이상학을 반대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그는 수학물리학과 생물학 등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사회문제도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사회 유기체 진보론

그는 사회 구조(질서)와 사회 변동(진보)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자신의 연구활동을 전개하였다이를 두고 각각 사회 정학(social statics)과 사회 동학(social dynamics)이라 일컫기도 한다사회 정학은사회의 전체와 부분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 부분들 사이의 관계적 질서를 연구한다사회동학은사회는 여러 부분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면서 역사의 움직임에 따라서 하나의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로 이행하기 때문에 이런 균형 상태의 계열적 변화를 지배하는 법칙을 연구한다.

콩트에 의하면 인간의 지적 발전은 3단계를 거쳐왔다.

신학적 단계형이상학적 단계 -실증적 단계     


<2>논리 실증주의

 1)분석명제와 종합명제

 "모든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분석 명제이다왜냐하면 "총각"이라는 단어에 "결혼하지 않은 남자"라는 뜻이 이미 들어있기 때문이다모든 총각을 경험적으로 조사하지 않더라도 문장이 참인 것을 알 수 있다반면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문장은 종합 명제다백조가 모두 하얀 색인지는 직접 관찰해서 경험적인 지식을 쌓아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검증 가능성의 원리

 실험 관찰(경험)등으로 검증 불가능한 명제는 의미가 없음을 뜻한다이 원리에 따른다면 분석 명제가 아닌 경우 오직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다검증 가능성의 원리 때문에 논리 실증주의는 형이상학신학을 비판하고 자연 과학을 옹호하는 사고방식이 되었다

 이는 흔히 검증 원리라고 불린다검증 원리의 구체적 형태로는 다양한 안이 제기되었으나그 가운데 가장 단순한 형태는 거칠게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다:     

(i) 명제 P는 분석 명제다.(수학 및 논리학의 진술)

(ii) 명제 P는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하다.(경험과학의 진술).

즉 (i)나 (ii)에 부합하는 명제만이 참 혹은 거짓 여부를 유의미하게 가려낼 수 있는 명제다수학의 명제는 선험적으로경험과학의 명제는 관찰 및 실험 등을 통해 경험적으로 참 거짓을 검증할 수 있다반면 (i)와 (ii) 중 어느 것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명제는 무의미하다.  참도 거짓도 아니다

소설 시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 명제야말로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여긴 무의미하다고 여긴 대표적인 예시였다이런 명제는 심오해 보일지언정 수학처럼 엄밀하게 풀리는 것도경험적으로 관찰하여 참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3> 비트겐슈타인 전기사상     

1) 언어적 전회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위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이를 바탕으로 비트겐은 언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였다이에 비해 전통철학은 이성이나 경험의 구조를 고찰하여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의 구조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이성론경험론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이며 인식의 한계이다언어로 표현되는 세계만이 철학의 대상이다언어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보편적인 매개물인데 그에게 있어서 언어를 넘어서는 세계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     


2). 세계는 사물이 아닌 사실의 총체이다.

  비트겐은 세계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이 연관을 맺고 있는 사실들의 총체라고 주장한다사물이 아닌 사실(명제)을 검증함으로써 진리를 판별 할 수 있다 주장한다     


3) 언어와 세계의 동형성(그림이론)

언어가 갖는 논리적 형식이 세계가 갖는 논리적 형식을 반영한다세계와 언어는 논리적으로 동일한 형식을 갖기 때문에 우리는 명제의 논리적 형식을 통해 대상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따라서 실제세계를 보지 않고도 세계를 이해 할 수 있다.     


4) 언어의 수학화진리 함수표

세계는 사실들이 서로 엉켜 복잡한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것들은 단순한 사실들로 환원될 수 있고이러한 단순한 사실들이 근원적 실재이다복합명제는 요소명제들이 성립하는 논리적 질서를 반영해야한다이러한 요소명제가 참이냐 거짓이냐에 따라 그 복합명제가 세계에 대한 올바른 그림이냐그릇된 그림이냐가 정해진다.     


5) 말 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형이상학적 논제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상을 갖지 못하기에 객관적으로 무의미한 말들이다즉 형이상학이 주제로 삼는 대상과 언어 사이에는 어떠한 대응관계(그림)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런 주장들은 참인지를 검증해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주장이다예컨대 신은 존재한다는 주장은 신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참인지 거짓인지 우리는 확인해 볼 수 도리가 없다형이상학적 명제들은 실재를 반영하는 요소명제로 환원하여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며이러한 요소명제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한다.     


<4> 훗설현상학

1)과학제국주의 반대

훗설은 인간영역까지 자연과학 방법론을 적용하는 실증주의에 대해 반대한다이러한 문제의식에 의해 그는 현상학을 제창한다여기서 현상(Phanomen)이란 빛나게하다’‘나타나게 하다’‘드러나게 하다와 그 아래있다는 뜻인바  현상학은 사태를 밝음의 장에서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다.(칸트가 말하는 현상헤겔의 정신현상학의 현상과는 구별해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는 사태를 그것이 있는 그대로 즉 밝은 빛 아래에서 보지 않고 항상 은폐된 상태에서 잘못 읽어 왔다는 것을 전제한다사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밝음의 장은 바로 의식이다의식을 초월해있는 사물은 항상 그늘지고 은폐된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의식의 밝음의 장 안에서 있는 그대로 만나는 사물은 이제 더 이상 의식 바깥의 사물이 아니라 의식 내재적 사물이다.       

2)의식의 지향성 

의식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흐름의 구조이다컴퓨터를 지각하다가 문득 옛 애인을 기억하고 그녀와 실지로 만난 상상을 하다간 다시 컴퓨터에 대한 지각으로 돌아오는 짧은 의식의 여행속에서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그것이 지각이든 기억이든 상상이든 항상 <무엇에 관한 의식>이라는 사실이다지각한다는 것은 대상을 단순히 물끄러미 바라보는 관찰이 아니라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해석하는 사유작용이다     


3) 의미지향에 의한 해석 없이는 어떤 사실도 존재치 않는다

후설은 세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근대 철학의 전제를 유보한다.(객관성 중립성 부인

그에게 진리란 객관물의 지시나 반영이(대응설 반영설아니라 의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돌멩이 자체를 절대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러나 돌멩이에 맞고 나서 아프다는 경험은 절대적으로 타당하게 언표하는 것은 가능하다. 즉 의미는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바꾸어 말하면 존재 그 자체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없지만 의미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나는 세계를 어떻게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에게 세계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기술하는 것이다이처럼 후설에 의하면 주관과 객관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5> 실존주의     

1. 니체-쇠망치를 든 철학자     


1) The God is dead.

 절대주의 파산선고(객관주의 부인)를 내리고 이원론적 세계관을 부인한다이데아 /현상물자체/현상천국/지옥존재/생성 현상/본질의 이분법을 폐기하고 생성(대지현실)만이 유일한 실재이며 모든 것은 끝없는 생성의 무한 반복일뿐이다.(영겁회귀사상)     


2)윤리

플라톤과 전통철학은 허무주의 퇴폐의 주범이다기독교는 삶 대신 죽음을 예찬하고 삶의 행복이나 기쁨 대신 불행이나 슬픔을 찬양한다노예들에 의해 강자의 도덕은 악으로 규정됨과 동시에 노예도덕(겸손,복종,정의 공정)은 선이라 간주된다(가치의 전도)     


3) 관점주의-계보학적 물음

모든 진리는 특정시각의 관점일 뿐이다모든 물음 어떤 질문에는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제압하려는 힘과 힘의 싸움 힘에의 의지가 들어있다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물음은 없다어떠한 질문도 의도와 욕망을 숨기고 있다존재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뿐이다.     


4). Will to Power (권력의지)

세계의 원동력은 권력의지(다윈의 영향)의 끝없는 영겁회귀일 뿐이다즉 세계는 적자생존자연도태약육강식의 세상일 뿐이다.

인간사회 역시 권력의지의 충돌의 장이다도덕(진리역시 권력의지의 산물일 뿐이다권력의지는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욕망 본능의 산물이다따라서 권력의지의 추구는 악이 아니다. ( 욕망본능의 복권이는 낭만주의 사상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5).실존주의의 선구자초인사상(Supermanism)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서 밧줄위에 놓인 존재이다삶은 본질적으로 강자의 횡포 공격 지배이며 약자에게는 억압과 고통이다허무주의(nihilism)는 허무주의로 극복해야 한다절대 진리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릴 수 있으나 반대로 최고의 긍정으로도 이끌 수 있다우리의 현실을 긍정하고 현실만이 최고의 가치이므로 그대로의 삶을 긍정 하는 능동적 허무주의로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디오니소스적 긍정(본능 쾌락의 긍정미추 고통과 기쁨 사랑과 증오를 모두 조건 없이 긍정한다자유로이 자신의 가치관을 설정하고 주어진 현실을 극복하고 자유롭고 강하게 아름답게 살자.(초인사상)               


2. 사르트르     

1) 현상학적 방법

사르트르의 존재론은 의식에서 출발함으로 현상학의 방법론을 계승한다모든 의식은 존재에 대한 의식이다.(지향성이 경우 의식은 존재와는 다른 것즉 비존재이어야 한다사르트르는 세계속에 던져진 존재(하이데거)를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던져져 있는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     


2) 즉자(卽者)와 대자(對者)

1)즉자(=존재)는 자연사물이 이에 해당한다즉자는 A=A라는 절대적 동일성 원리에 기반한다.  즉자는 아무 근거 없이 그냥 우연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2)대자(()=의식)

의식으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의식은 끊임없이 변한다즉 A는 A가 아니다즉 동일성이 없다따라서 그것은 무()무이므로 자유다 인간의 의식의 특징은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즉 의식은 A는 A라는 동일성을 향해 끊임없이 부정을 제기한다사르트르는 끊임없이 현재를 극복하려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의식=자유의 근본원리라고 보았다.     


3)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책상의 본질은 공부나 독서를 하기 위한 것이다책상의 경우 실존 보다 본질이 우선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본질이 존재에 우선할 수 없다인간의 본질을 이성이니 감성이니 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개체성과 주체성을 제거한 후에나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인간은 결국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실존적 단독자이다그러므로 인간의 삶을 외부에서 규정하는 보편적 원리란 존재하지 않는다인간의 본질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단지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이 아니라 어떤 것이 되어감이다인간 존재는 무이고 그러기에 자유로운 존재이다인간은 스스로 자기가 결단하여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자유로운 존재이다이 자유는 신으로부터 주어진 축복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허무성에서 기인하는 저주받은 자유이다.     


4)상황윤리-실존주의 윤리관

실존주의는 보편적인 도덕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상대주의에 속한다이들은 보편적인 법칙 따위의 탐구에 반대하여 그들은 구체적인 개인의 도덕생활을 강조한다개인의 도덕생활은 개인자신에 의해서 결정되며 결코 어떤 도덕법칙에 의해서 결정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스스로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실존주의 제1원리가 나오게 된다.

자유와 상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상황을 떠난 자유는 있을 수 없으며 자유를 떠난 상황도 있을 수 없다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강압적인 상황속에서 조차 우리에게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선택할 자유가 남아있다이처럼 실존주의는 자유로운 결단을 강조한다실존적 자유는 자기존재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며결단과 자기존재는 동일한 것이라고 본다



<4> 정신분석학     

1.프로이트

1.의식과 무의식 

1)인간의 마음은 빙산의 일각이다의식은 수면위에 드러나 있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그 수면아래에 거대한 무의식의 영역이 숨어있다그리고 필요할 때는 의식으로 떠오르는 부분은 의식과 구별하여 전의식즉 잠재의식이라 부른다.     


2) 무의식의 특성

 이 무의식의 영역에는 다양한 욕동(본능적 충동)과 감정을 동반한 정보가 억압되어 있고 그것들은 주전자 안에서 끓고 있는 물처럼 밖(의식)으로 넘치려고 한다감옥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에너지가 특히 성욕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한다이것을 극단으로 제시하는 것이 오이디 푸스 콤플렉스이다오이디푸스왕은 신탁에 의해 의식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이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이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다.     


a) 이드와 리비도 

-무의식은 이드(id 의 영역이라 불리며신체영역으로 부터의 본능적 에너지(리비도)가 여기로 흘러든다리비도란 성적 에너지를 말하는 바이 리비도가 왜곡되면 노이로제등의 정신 질환이 생긴다이드는 충동과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인다.

b) 초자아(슈퍼에고-superego)

-슈퍼에고는  부모가 가르친도덕적 금기사항(도둑질 하지마라등)을 받아 들임으로써 형성된다즉 슈퍼에고는 사회적 도덕적 질서가 내면화(무의식화된 것이다이드와 슈퍼에고는 서로 다투고 대립 긴장관계에 있어서 언젠가 분출될 수 있다.

 c)자아(ego)

-자아란 이드(에스)와 초자아 사이에 끼어 이 둘사이와 외계를 중개하며둘을 완화하고 조절하는 영역을 가르킨다이는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에 속한다.     


6)프로이트 사상의 의의

a). 전통철학의 붕괴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근대철학의 출발점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나도 모르는 나나도 모르게 행동하는 나의 행동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아의 확실성 동일성을 전제로 하는 근대철학과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b).구조주의 방법론 

1)프로이트 자신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미 그는 구조주의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드와 슈퍼에고의 차이와 관계에 의해 자아(ego)에 의한 행동이 수행된다는 것이다이는 인간이 무의식의 성충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무의식적 구조에 의해 인간이 결정된다는 것과 동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 라깡-언어구조주의

-라캉은 인간과 관련된 영역을 셋으로 나눈다현실계/상상계/상징계가 그것이다이는 개인의 발달과정에 따른 순서이기도 하다.     

1) 현실계

이는 칸트의 물자체와 비슷한 개념으로 출생성감대의 형성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세계를 의미한다현실계는 상상계와 상징계에 비해 시간적으로 선행하는 것이며 항상 그것들 배후에 자리하고 있지만 인간이 직접적으로 인식하거나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상상계-자아가 형성되는 영역

생후 6-8개월 사이에 주로 형성되며 제 3자가 없는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이다이는 거울 단계로 특징지어 진다여기서 거울은 어머니를 상징한다아이가 거울에 비치는 것이 실물이 아니라 반사된 이미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것이 자신의 반사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로부터 나에 대한 최초의 의식을 가지게 된다즉 타자로부터 비로소 자아는 구성된다선험적 선천적인 자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3)상징계-이름과 자리 얻어 주체형성

  제 3의 타자인 아버지가 들어서는 관계가 상징계이다아버지라는 절대적 타자의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얻고 이름을 통해 가족과 사회의 관계그물 속에 일정한 자리를 얻게 된다절대적 타자로부터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리워짐으로써 비로소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언어구조주의이 상징적 질서는 언어를 통해 짜여진 질서이다.     


4). 욕망의 형성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아이가 언어 체계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현실계와의 철저한 분리를 마무리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표는 현실적인 것과의 모든 연관을 끊고 자기 폐쇄적인 영역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리는 자신의 본능에서 소외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욕망이 형성된다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아버지)를 욕망한다하지만 거세 공포를 느끼고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것을 포기한다욕망은 미끌어지고 또 미끌어져 영원히 채울 수가 없다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에..     


5) 라캉에 대한 평가

아이는 언어의 질서를 통해  자신의 동일성을 확립한다그러므로 아이는 이미 타인의 언술의 그물속에 놓여있다이 그물 즉 언어로 표현되는 금지욕망명령기대의무와 가치판단등의 체계속에서 자신의 자아동일성을 확립해 간다마치 빨강색이 푸름이라는 다른 색깔에 의해 비로소 빨강색으로 규정되듯이 자아 역시 그 자신이 아닌 타자의 자리에서 비로소 확인된다그러므로 이제 나는 타자이다나는 생각하는 중심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 바깥의 구조속에서 나는 생각되어 진다이처럼 라캉은 데카르트 이래 당연시 되어온 자아의 확실성에 대해 정신분석학 적 메스를 가함으로써 이성 중심적인 근대의 이데올로기를 허물어 뜨린다인간은 능동적으로 말하고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말하고 사유되는 것이다.               


<5>구조주의     

1.레비스트로스

(1)슬픈열대친족체계의 기본구조

구조주의의 시조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체계가 근친혼 금지를 보편적인 규칙체계 코드로 삼아 여성을 교환하고 집단이 상호관계를 맺는 상징체계로 본다개인들의 친족체계가 구성하는 기호체계호칭체계에 의해 자신의 자리와 이름을 부여 받고 그 역할과 의미가 규정된다이때 개인들은 구조를 창출하는 주체나 구조의 원인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구조의 효과일 뿐이다이 의미체계는 개인들의 행위를 규정하는 무의식의 체계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처럼 요소와 사건을 배후에 존재하는 보편적 질서를 의미작용의 관계망으로 재구성한다그는 다양한 상징체계 토템신화등을 기호와 상징의 우주로 체계화 한다.     


(2).야생적 사유 속의 불변의 구조

1)레비스트로스는 신화와 토템이즘과 같은 야생적 사유속에서 불변적 구조를 확인하였다문화와 대립되어 원시적인 것으로 규정된 바로 그 신화속에서 질서를 읽은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언어학자 야콥슨의 이야기를 듣고 인류학에 구조 언어학 이론을 도입시킨다그러자 뜻밖에 미개한 부족의 친족혼인신화등이 언어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것이다.     


2)친족의 질서-교환과 증여의 체계

평행사촌과 교차사촌의 풍습은 서양적인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미개한 지역의 인습인 것처럼 보인다그런데 그 차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해 보니 그 교차사촌 혼인은 여성의 교환에 의해 어떤 한 부족만이 변영하거나 쇠퇴하는 것을 조정하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구조(부족과 부족의 관계와 차이에서 나오는)임을 알게 되었다근친혼의 유형이란 미개한 민족으로 여겨지던 그들이 무의식중에 구축해 놓은 긴밀한 구조 였던 것이다.

-여성을 선물로 생각하면 혼인은 여성의 교환으로 이해 할 수 있다같은 친족끼리 결혼한 경우는 다른 그룹에 여성을 증여할 수 없기에 교환물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이것이 근친혼 금지가 발생한 기원이라  레비는 생각한다.

결국 미개한 사회의 친족 친척 혼인등의 사회적 관계는 서양의 관계와는 겉모습은 달라도 구조라는 관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똑같은 것이다.


3) 레비스트로스는 근대적 사고만이 이성적이다 라는 선입관을 비판하고 자 민족 중심주의에 편중해 있던 서양의 세계관 문명관에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했다          


2. 소쉬르     

(1)전통 언어관의 해체

전통철학에 의하면 인간의 존엄이나 윤리가 그 어디에 (이데아세계형상)등에 그 대응물이 있거나 그러한 인간이 먼저 있다고 가정했다(언어지시설 대응설). 하지만 소쉬르는 언어지시설을 거부하고 언어자의성설을 주장한다언어는 지시물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의 체계즉 다른 말과의 차이와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언어는 지시물과 관계없는 그 자체의 관계의 그물망이다.     


 (2). 언어의 자의성

언어는 기표와 기의로 구성되어 있다기표(시니피앙-signification)란 지시물에 대한 시각(문자내지 청각(음성)의 이미지를 말하고 기의란(signifie) 음성이 지시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개라는 음성은 시니피앙이며 들판에서 실재 뛰어 노는 개는 시니피에라고 한다시니피에는 의미(진리사실)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눈앞에 실재하는 물리적 대상에 대해 이를 인식한 이후에즉 실재 개가 있고 인간이 이를 인식한 이후에 개라는 언어의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소박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언어기호와 지시대상은 서로 무관하다우리가 개를 개라고 이름 지을 아무런 이유도 없다개를 악어라고 부를 수도 있었다즉 영어는 dog, 독어는 hunt 중국어는 犬 이라 부른다이처럼 언어라는 표현수단이 그것이 나타내는 사고 내용과는 아무런 필연관계가 없다같은 내용의 사고를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사고 내용과 언어가 아무런 필연적인 연결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3)언어는 인식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나방과 나비를 구분하지만 파랑스는 나방과 나비를 모두 빠삐용으로 표현한다이는 즉 우리의 나방과는 다른 나비라는 감각이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없다프랑스 사람들은 나방과 나비를 구별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결과이다에스키모는 눈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놀랄 만큼 많은 종류로 나눈다우리가 기묘한 꿈을 꾸었음에도 그 꿈의 내용을 나타낼 단어가 없으면 우리는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즉 언어가 없으면 사물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따라서 언어는 인식의 도구가 아니라 언어가 없으면 인식을 할 수가 없기에 인식이 언어의 도구인 셈이다     


(4)소쉬르의 결론

1). 본질이란 없다.(=세계를 완벽히 알 수 없다.)

 즉 인간은 세계의 대상들에 자의적으로 언어라는 라벨을 붙이고 있고어떤 것은 라벨조차도 붙이지도 못하고 있어 인식하지도 못하므로,  세계의 진리 전체를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된다설령 사물에 본질이 있더라도 그 본질을 나타내는 언어가 없으면 이를 알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알 수 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참 진리를 올바로 알 수도 없다.     

2) 실체는 없고 차이와 관계만 있을 뿐이다. -구조주의의 선구

-전통철학은 확실성의 철학이며 동일성실체의 철학이었으나 소쉬르에 의하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언어가 확실하지 않으므로동일성보다는 차이가 실체보다는 관계가 중요해 진다언어기호의 가치(의미)는 각각의 언어기호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 의해 정해진다각각의 언어기호들은 그 속에 고정된 의미를 튼튼히 끌어앉고 있는 실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간에 차이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 뿐이다.

언어는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와 무관한 기표들로 이루어진 그물일 따름이다.     

2) 주체의 해체-구조주의

빠롤은 개인의 발화작용이고 랑그는 즉 사회적 약속된 규칙체계(문법)이다우리의 대화는 문법에 따라야만 한다. ,즉 개인이 빠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랑그에 따라야 한다개인의 모든 정신작용은 모두 언어작용이며 빠롤인데이러한 작용은 모두 랑그의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따라서 랑그와의 관계에서 인간은 수동적이다사람은 언어의 의미체계(구조)속에 있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인간이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주인이다모든 판단이나 사고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구조속에 내재해 있다집주인은 언어고 우리는 세입자일 뿐이다인간은 주체가 아니라 구조의 역할 담지자 일 뿐이다.          



3.푸코권력,지식 연계론     

(1) 감시와 처벌-나는 감시당한다고로 존재한다.

파놉티콘(panopticon) 원형감옥은 중앙통제탑에서 죄수들을 한 눈에 감시 할 수 있지만 죄수들은 그 통제탑에 있는 감시원들을 알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이런 강압적 배치에 의해 개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 특성이 드러나고 개인은 개별적 방식으로 언제나 감시된다개인들은 분리되고그들의 행위는 규제되고 그들의 신체는 훈련되고 그들의 움직임은 책략적으로 조직된다감옥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규율은 학교 병원 공장 군대로 확산되며 각 개인들은 처벌 될 수 있고 언제나 처벌된다주체는 감시에 종속당한다여기서 우리의 정체성이 만들어 진다주체는 종속이고 근대 휴머니즘의 인간은 이렇게 태어난다주체는 규율에 순종하는 신체이다이 규율화된 주체는 우리가 이제까지 믿어온 진정한 실존이 허위임을 암시한다.  주체가 지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담론이 주체를 만든다이런 점에서 규율과 지식이 인간을 만든다.     


(2) 응시속의 주체나는 응시당한다고로 존재한다>

사회화란 내가혹은 나라는 주체가 남들의 응시(gaze)속에응시앞에 놓이는 것드러나는 것폭로되는 것한마디로 감시당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나는 응시속의 주체이다그러므로 나는 주체가 아니라 응시에 종속되는 주체이고 그러므로 주체가 아니다그러므로 나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다그들에게 버림받지 않으려면 그들의 요구에 맞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또한 여성은 남성의 응시의 대상이고남성 욕망의 대상이지만 한편 여성은 남성의 응시를 유혹해야 한다우리는 감시응시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여성이 응시의 대상이며 동시에 응시를 유혹하는 주체라면 남성 역시 응시의 주체이며 동시에 여성의 응시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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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길들여진 몸

모든 사회에서  사람의 몸은 통제하고 금지하며 조절하는 권력앞에 노출된다감옥 뿐만 아니라 군대 학교 병원 공장 회사등의 모든 장소에서 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일련의 기법을 총동원하는 현상을 보면 이 사실이 명확하게 이해된다.

개인이 항상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사람의 복속을 유지케하는 확실한 관건이다보편화는 사회 구성체의 모든 곳을 관류하면서 개체를 끊임없이 비교 분리 계층화 동질화 시키는데 목표를 둔다개인과 집단의 분석을 돕는 자료축척과 등록체계를 수반한다검사의 방법이 효과적으로 구사됨으로써 개인은 기술되고 분석될 수 있는 대상으로 정착된다끊임없는 판단과 검사를 통해 인간 행동의 객관화 자료화가 달성되며 인간 자체에 관한 어떠한 이미지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여러 인간 과학의 탄생에 기여했다.     


4)권력의 속성과 인간 주체

인간 자체는 결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의미의 창출의 당사자가 아니며 오히려 권력 지식연계에 의해 유통되는 담론적 실체의 산물이라는 것이다권력이 단순히 억압적 기능만을 갖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근대 이후 출현한 권력의 특징은 적극적이고 생산적이라는 점이다이러한 성격 때문에 그것에 저항해 싸우는 작업이 어려워 진다고 푸코는 역설한다권력은 지배계급이나 국가 군주의 소유물이 아니라 복잡한 전략적 상황을 포괄하는 관계의 그물망으로 묘사된다국가나 법 억압기제등은 권력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최종형태일 뿐이다.

 우리는 권력을 사회의 운용방식안에 내재하는 복합적 역학관계로 우선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국가 기구보다 훨씬 더 미세하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운영되는 권력기제가 변화하지 않는한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4.들뢰즈

(1) 들뢰즈와 사건

들뢰즈에게 물질을 연구하는 것은 자연철학이고 형이상학은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다그는 사건을 의미의 전면에 내세운다

홈런은 야구장 마다 계속 반복된다대학합격은 매년마다 반복된다대통령 선서는 5년마다 반복된다홈런과 합격 대통령선서는 어디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가?

물질은 실존하지만 사건은 존속/내속한다사건들은 현실화되지 않을 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깔려있다홈런을 치다라는 사건은 현실화 되지 않고 있을 때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디엔가 존재한다

이런 생각을 밀고 나가면 실재실체는 다름아닌 사건(순수사건)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사건이야 말로 본질의 차원이고 이 사건이 현실화 되는 것이 우리가 보는 세상이다.     


(2)사건의 특성-잠재성과 부정법

사건의 차원은 문법적으로 부정법의 차원이다이대호가 홈런을 쳤다치고 있다내일 칠 것이다이런 사건들은 홈런을 치다라는 순수사건이 현실화 된 것이다.  그럼 홈런을 치다라는 사건 자체는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그것은 홈런을 치다라는 부정법으로 밖에는 표현 할 수가 없다그래서 사건의 차원은 부정법의 차원이다     


(3)들뢰즈의 기존 의미(진리)론 비판

a) 지시이론 비판

들뢰즈는 사건은 지시될 수 없다며 실증주의 진리관을 부인한다왜냐하면 지시작용은 생성 움직임 변화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a가 b로 되는 순간 b는 포착 되지만 순간 그 자체는 지시 할 수가 없다다시 말하면사건은 동일성을 지니지 않은 것 시간에 따라서 계속 변화하는 것이고 개별화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b) 현시이론(현상학비판

-들뢰즈는 훗설의 진리(의미)관도 거부한다사건이란 주체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본질도 아니다그것은 말 그대로 사건은 주체와 상관 없이 생성/나타남 그자체이다주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지는 없다주체에 의해서 구성되거나 본질로서 의미가 포착되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다.     


c) 구조주의 의미론 비판

-구조주의 의미론은 순환론에 빠진다. a가 무엇이냐 하면  b와의 차이다. b가 무엇이냐 하면 c와의 차이와 관계이다.라고 대답한다이렇게 빙빙돈다즉 기호와 기호가 맞물리면서 순환하게 된다의미가 언어적 차원에서만 성립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의미란 세계 주체 기호 삼자의 역동관계에서 나오는 것이지 기호 자체가 의미의 유일한 근원이 될 수는 없다.          


(4)들뢰즈의 의미론사건의 구조론


<1>의미는 문화의 선험적 조건이다.

1) 들뢰즈에게 있어서 의미란 사건과 결부시켜 이해해야 할 무엇이다의미는 문화의 가장 아래 층위아니 더 정확히 말해 문화로부터 문화 이전의 차원으로 벗어나는 바로 그 경계선에 존재하는 것 이어야 한다그렇다면 의미는 바로 자연으로부터 문화로 넘어가는 바로 그 경계선에서 발생한다의미란 바로 자연과 문화가 접하는 바로 그 접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따라서 사건과 동일하다.     


2) 의미란 명제속에 존속하는 순수사건이다.

들뢰즈에게 의미란 표면효과로서의 사건이다즉 의미란 물체들이 운동할 때 그 표면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효과이다나폴레옹 대관식에서 왕관금속머리카락은 물체적 운동이자 공간적 운동이다그런데 이 운동의 표면에서 의미가 발생한다왕관이 머리에 얹히는 순간 사건으로서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라고 말한다즉 사건이 발생할 때 의미가 발생한다.

그래서 의미라고 하는 것은 기호들의 놀이도 아니고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도 아니고 지시대상 자체도 아니다이세계가 운동할 때 사건과 더불어 발생하며 바로 그 발생을 통해 문화의 가능성을 탄생시키는 그런 두 얼굴을 가진 존재가 의미이다.     


3)사건은 무의미이자 의미이다.

사건은 그 단독으로는 무의미이지만 형이상학적 표면즉 이미 일정하게 조직된 사건들의 장에 편입된 맥락에서는 의미이다반정부인사가 테러를 당한 사건 자체는 무의미이지만 다른 사건과 시간 공간에 계열화 하면  사건들의 장에 편입되는 맥락에서 의미이다.

또한 의미는 두얼굴을 가진다나폴레옹의 왕관이 머리에 얹힐 때 의미가 발생하지만 또한 <나폴레옹이 왕이 되었다>라는 언표안에도 존재한다.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이 언표되었을 때 의미는 이 사건임과 동시에 그 사건을 언표하는 언표안에도 존재한다.

의미라고 하는 것은 사건으로 발생하지만 동시에 언어로 포착되어 기호화 함으로써 언표안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이렇게 언표화한 의미가 바로 지시작용 현시작용 기호작용의 토대를 이루게 된다.

예컨대죽다 라는 사건은 무수히 반복한다이 사건은 잠재성으로 존속한다죽다라는 의미는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그 죽다라는 사건을 한번씩 구현하게 된다그렇게 구현 되었을대 ‘....누구누구가 죽었다라는 언표가 그 사건의 의미를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5)구조를 변혁시키는 힘

후기 구조주의는 힘의 개념을 도입하여 정적이고 고정적이던 전기구조주의를 역동적으로 변모시킨다이 힘이 푸코의 경우 <권력>이고 들뢰즈와 가타리의 경우 <욕망>이다.

후기구조주의는 긍정의 사유이다어떤 방향을 정해 놓고 다른 방향을 부정하는 사회가 아니라 여러가능한 방향들을 긍정하는 사유이다.     


(6).노마드적 주체

(1)가로지르기와 무위(無位)

모든 사유는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귀착된바 들뢰즈적인 주체는 노마드적 주체라 할 수 있다누가 행복한 사람인가어떤 행위가 옳은가독사(doxa)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에 대한 모범답안이 존재한다예를들면기독교 사회에서는 누가 신에 더 가까운가유교사회에서는 성인들의 전통에 가까이 있는 존재가 행복한 사람이자 도덕적 선을 실현한 사람이다.  이처럼 일정한 기준에 따라 다양한 주체들이 형성된다이런 사회에서는 한 사물의 의미와 가치는 그 사물에 붙은 이름과  자리에 의해 결정된다이 사회에서는 이름/자리만이 중요하고 사회의 독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이런 체제를 거부하는 사람은 그 체제에 의해서 압살 당한다.(조직의 쓴맛)     


(2)노마드적 주체-패러독사(역설)의 세계의 주체

-독사의 세계에서는 이름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그러나 패러독사(paradoxa)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주체는 바로 그런 자리와 이름의 체계를 벗어나는 추체그런 체계의 격자를 가로지르는 주체이다이것이 노마드적 주체이다가로지르기의 두 계기는 하나는 소요의 계기이고 또 하나는 투쟁의 계기이다소요가 투쟁이고 투쟁이 소요이다웃으면서 싸우고 사랑하면서 싸운다

선불교의 경지는 자리 이름을 거부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노마드적 주체를 수동적 종합을 통해서 이해 한다격자를 가로 지르지만 그때마다 우발적으로 수동적으로 결정 되는 주체이다노마드적인 주체 가로지르는 주체는 영원히 젊은이로써 살아가는 그러한 주체이다.     



#맺으며#     

 문과 이과공무원 대기업중소기업,, 예술광고건축등 어느 업무분야를 불문하고 진정 창의력있는 사람이 되려면 최소한 이정도의 틀은 갖추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이것은 영화를 보는 틀이자 창조적 삶성공적 삶을 살아내기 위한 틀이 될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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