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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thm 지오그라피 Sep 14. 2022

나는 갑자기 경영인이 되었다 (2)

초심자의 행운 (Beginner's Luck) - 2015년 10월

갑자기 오더를 취소한 U사 때문에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우리 회사에는 사장님과 나 딱 둘 뿐이었고, 사장님은 영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셨다. 구매를 해오면 직원들이 영업을 하는 시스템이어서 그랬다. 사수도 없이, 다른 사회 경험이라곤 클럽에서 DJ를 해본 것과 대학생활이 다였던 나는 그렇게 영업에 투입됐다.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 시장에서는 공급자 마켓에서 수요자 마켓으로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었다. 건설업자, 도매상이 팔기 좋은 적당한 물건이 아니라, 조금 비싸더라도 소비자들이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제품들이 조금씩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사장님은 그로부터 5~6년이 지나서야 "싸다고만 팔리는 게 아니구나"를 했으니, 나는 5~6년 동안 거의 몽상가 취급을 받으며 30년 경력을 가진, 그래서 경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 사장님을 설득해야했다.


어쨌든 2015년 10월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달이고, 중학생 시절 읽었던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에서 본 이후로 항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장난처럼 되뇌었던 말, 초심자의 행운 (Beginner's Luck,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초심자에게는 기묘한 행운이 따른다는 '심리적' 현상.) 생각해보면 DJ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재수생 시절 대학교에 가지 않고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친구는 취미거리가 생기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다. 재수 시절부터는 용돈이 끊겨 수능 이후 모아놨던 돈으로 연명하던 나에게 그 친구는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패션에 관심이 생겨 옷을 여러 벌 사고, 자전거에 관심이 생겨 당시 유행하던 픽시 자전거를 사고, DJ에 관심이 생겨 입문용 디제이 장비가 그 친구 집에 있어 나는 재수생 시절에도 그 친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내가 재수를 마치고 대학생활을 시작할 무렵 그 친구는 군 입대를 알아보고 있었고, 나에게 장비를 잠시 맡아줄 수 있냐고 하여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고, 침대 하나로 꽉 차는 조그만 내 방에 그것을 들고와서 스피커 놓을 자리도 없어서 헤드폰을 끼고 혼자서 연습하는데도 그렇게 재밌었다. 요즘에야 클럽도 많고 라운지도 많고 이벤트도 많아서 디제이들이 설 무대가 엄청 많지만 당시에는 무대에 한 번 서는 것이 엄청 어려웠는데, 그때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는데 가로수길에 우리 고등학교 때부터 있던 라운지 클럽이 눈에 들어왔고, 홀리듯 들어가서 음악을 틀어보고 싶다고 했다.


운 좋게 내가 얘기를 나눴던 사람은 그 가게의 사장님이었고, 평일 오픈 시간 전에 잠깐 오면 직접 들어보겠노라고 하셨고, 나는 첫 DJ 생활을 비교적 빠르게 시작하여 평일 저녁시간을 담당하게 됐다. 또한 운 좋게 그 라운지에서 같이 활동했던 DJ들은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DJ들로 (본인들의 동의를 얻게 되면 공개하겠습니다) 특히 나와 동갑이었던 친구 G와는 현재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DJ의 실력 성장의 핵심 요소는 연습과 플레이의 반복인데, 클럽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곳이 생겼고, 얼마 안가 이태원이 새롭게 각광을 받으면서 큰 규모의 복합공간이 새롭게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놀러가봤던 나는 또 다시 용기를 얻어 그 공간의 디렉터 분께 메일로 내 믹스테잎을 발송하였고, 또 다시 운 좋게 관심을 가진 디렉터 분이 평일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그 클럽에서 플레이 해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초심자의 행운을 믿으며 살아간 적은 없으나, 나는 영업도 똑같은 것 아니겠냐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대신 나는 '전국 최저가'에 나를 맡겨볼 생각이 전혀 없었던 중, 10월 30일 사무실로 우리와 계속 협의 중이던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이번 새로운 시리즈는 기존 파트너들이 아닌 우리와 일을 해보고 싶다며 샘플북을 하나 보내왔고, 나는 주저없이 우리와 거래를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던 V사로 향했다.


V사는 원래 대리석을 판매하던 업체로, 타일 시장에 새롭게 진출한지 몇 년 되지 않아 뚜렷한 주력상품이 없었던 업체다. 우연히 V사의 영업사원을 다른 업체에서 만나게 되어 관심을 보인 영업사원이 한 번 약속을 잡고 본사로 와줄 것을 요청하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뭐하는 업체인지도 몰랐고, 어떤 업체인지 알아봐줄 선임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서 호기롭게 말레이시아 신제품을 들고 나는 방문을 한 것이다.


V사의 의사결정권을 지닌 사람들이 나왔고, 나는 누가봐도 너무 어렸고 경력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져온 제품은 그들이 찾고 있던 주력제품으로 할만한 제품에 부합했으며, 너무나도 운 좋게 다른 큰 회사들이었다면 나를 빼고 (전문성이 없어보이는 내가 담당자인 우리 회사를 제외하고) 직접 공장에 연락을 해 물건을 달라고 시도했을 수 있겠지만, 업계에서 보기 드문 의를 중시하는 업체였다.


10월 말에 처음 선보인 이 제품을 11월 첫째주에 바로 9컨테이너 주문을 받았고, 당시 저가 제품 기준으로는 20컨테이너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며, 말레이시아 공장에서는 1~2컨테이너의 수량을 기대했으나 우리는 무려 9컨테이너라는 수량을 주문한 새로운 주요 협력업체가 되었고, 심지어 이 제품은 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잘 팔리고 있는 효자 상품이다. 


그렇게 나의 초심자의 행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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