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nthm 지오그라피 Sep 10. 2022

나는 갑자기 경영인이 되었다 (1)

클럽 DJ에서 갑자기 중소기업을 경영하게 된 이야기의 시작

https://geography-seoul.tistory.com/category/일상/일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 그리고 혼자서 되돌아 보면서 그 당시에는 어떤 분기점이었음을 모르고 지나쳤던 일들, 또는 그 당시에는 굉장히 크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나니 아무런 일이 아니었던 것들을 다시 회상하면서 정리해나가고자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일기 형식으로 정리하는 글이 될 수도 있고, 소수의 인원과 조그만 회사를 어렵게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이나 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는 그런 글이 되고자 합니다. 


  브런치에서 쓰게될 시점은 2015년 10월부터로, 제가 현재 일을 시작하게 된 6월~9월까지의 이야기들은 저의 티스토리 블로그에 정리가 되어 있으며, 이 시리즈들은 브런치에 연재를 해보고 싶어 제가 본격적으로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던 시기인 10월부터는 브런치에서 써보고자 합니다. 그 이전 까지의 줄거리들을 요약한 글을 오늘 첫번째 글에서는 써보려고 합니다.



현재의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4월 말, 남들 보다 조금 늦은 군대, 조금 길었던 군대(공군 24개월)를 마치고 

9월 복학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사장님은 내 또래 아버지들보다 적게는 5~6살, 많게는 11~12살이 많았다. 

내가 막내인 이유도 있었지만 첫째인 누나도 또래에서는 늦은 편이긴 했다. 

내 나이때 사장님은 군대를 가지 않았다. 당시 독자라는 이유로 군 면제 대상이었고,

뒤늦게 면제 대상자임을 알고 ROTC 도 그만두셨으니.


그러고 운 좋게 당시 (1977년) 에는 1등 기업이었던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하게 된다.

전공은 신문방송학과여서 인턴을 광고회사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탓에 군인으로 안정적으로 살고자 열망했던 삶이 뜻하지 않게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간 것이었다. 

군대는 편하게 가는게 최고라며 ROTC를 계속 권하는 탓에 시험까지는 보고 결국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니다 하고 취소 했던, 전공은 지리학과여서 뚜렷한 진로가 없었지만, 치열하게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던 탓에 음악을 하면서 살고자 열망했던 삶이 뜻하지 않게 어딘가로 흘러들어간 나처럼.  


1986년 사장님은 결혼을 하셨는데, 당시 대기업 과장이었던 사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1) 사내정치에서 잡고 있던 라인이 위태로운 상황을 지켜보면서, 2) 경제가 무한히 (?) 성장하던 시기에 독립하여 잘되는 전 동료들을 지켜보면서, 3) 당시 주로 담당했던 플랜트/중장비 수출입 사업이 유망한 것을 느끼면서, 4) 결혼 이후에 더욱 큰 돈이 필요할 것을 체감하면서 등의 이유로 87~88년, 사업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올림픽 등을 지나가던 시점에 건축자재 (욕실자재 등) 파동이 일어났고, 당시에는 중국이 현재처럼 생산 설비를 갖추지도 못했고, 심지어 한국과 수교를 맺기도 이전. 게다가 무역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엄청 귀해, 수입 길도 거의 막혀 있는 상태인데 건물은 엄청 지어야 하는 상황이니, 거짓말 조금 보태면, 부서진 변기만 팔아도 떼돈을 버는 시기, 공중화장실에 있는 변기랑 세면기도 떼다가 훔쳐가는 시기였다고 한다.


현재의 inus이누스 (과거 동서산업)는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IS동서 라는 이름으로 (현재 에일린의 뜰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는 그룹사) IS건설과 국내 최대 요업사 동서산업이 합병하면서 대기업 반열에 오르기도 했으나, 최근 사모펀드 등에 매각이 되면서 다시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되었는데, 원래는 과거 현대 그룹의 계열사였다.


현대 종합상사는 1970~80년대 무역/수출을 중시하던 당대 정책/풍조에 따라 삼성물산, 대우인터내셔널 등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회사였는데 (특히 1990년대를 지나며 삼성이 현대를 넘어서기 시작했으니), 사장님이 독립 이후 원래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동서산업 사람들이 계속 사무실에 찾아와 현재 건설업계에 요업제품이 파동이 났으니 도와달라고 하여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태국 출장 편에 시간이 남아 현지 공장들을 한 두군데 가보고 나서 샘플만 받아왔는데, 어떻게 알고 당시 충남 지역 등에서 크게 유통을 하던 도매상들이 찾아와 5천~1억 가량 (당시 돈으로는 서울 시내 아파트를 몇 채 구입할 수 있는)을 계약금으로 주면서 물건을 수입해달라며 사정사정 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 업계에 미끄러져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이때의 나쁜 버릇(?)으로 수입자가 갑이라는 생각과, 중국, 인도, 베트남 등의 급부상으로 물건 파동보다는 물건 폭탄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사업을 영위하면서 겪은 (겪고 있는) 어려움 등을 많이 쓰게될 것이다.


아무튼 이처럼 1990년대 후반까지는 사업이 승승장구 하다가, 2000년대 이후로는 직원 5명을 넘어본 적이 없는 작은 규모로 계속 회사를 운영하면서 심지어 중간 10년간은 업계를 떠나있기도 했던 (3~4년여 간은 아예 다른 아이템을, 5~6년 간은 내수 시장은 하지 않고 수출만 하였던) 이후 다시 내수 시장을 시작했던 것이 2012~13년 경이며, 블로그에 적혀있듯 2014~15년 배임/횡령 사건 이후로 거의 제로베이스 부터 시작한 경험담을 쓸 예정이며, 학교에 복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아예 단념한 10월부터의 일들을 다음 편 부터 적어내려갈 예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