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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 Mar 30. 2024

안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지금의 근무지가 조만간 폐관된다.

다른 직장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몇 군데 찾아보던 중 도전하고 싶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만 39세까지만 모집하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2월 말에 공고문이 수정되면서 만 49세 이하로 지원 연령이 확대돼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담당자에게 문의를 하니 모집이 너무 안 돼 처음으로 늘린 거라며 지원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지원하게 되면 첫번째이기 때문에 합격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도전이다. 지원자도 없고 만 49세라는 꽉 찬 나이도 아니덴다가 첫번째로 지원하면 합격이라니. 지원히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침 하필 딱 지금이라니. 이럴수가. 설레는 기분으로 서류를 접수했다. 이력서,자기소개서, 기획서, 포트폴리오 등. 그런 분량의 서류전형은 되게 오랜만이었다.


며칠 후 유선상으로 면접 대상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사이 지원자가 6명으로 늘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내 접수를 시작으로 갑자기 지원자들이 늘어나 담당자도 놀랐다고 했다. 두 명 모집하는데 6명. 거기다 원래 모집해 오던 연령층이라니. 합격할 것이라던 담당자의 호언장담도 “어필을 잘 하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엄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여러 생각이 들긴 한데. 일단 가 보려구. 되든 안 되는 가 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 될 일이라면 가야 되는 거지, 안 가면 안 가서 안 되게 되는 거니까.“


그냥 가지 말까. 헛걸음이지 않을까.

출발 직전까지 고민하다가 어제 오전, 면접 안내 마지막 문자를 받고 면접 장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그새 1명이 더 늘어 7명이 돼 있었다. 아 이런… 참 좋을 나이. 어딜 가도 걸림돌이 되지 않을 나이. 어디서든 환영받을 나이들로 우리 쁨이처럼 하나 같이 예뻐 보였다. 이 중에 둘만 붙고 나머지는 떨어질 텐데... 나도 나지만 잠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딜 가든 모두가 잘 되길 바랐다.


이윽고 면접 순서가 정해졌다.

내 순번은 세 번째였고 면접은 5분에서 10분 정도 진행될 거라고 했다. 아니었다. 시작하고 나니 25분씩 걸렸다. 대기실에 있는 동안 길어지는 시간만큼 긴장감은 곱절로 늘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쩌면 들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고된 나이 때문에 형식적인 면접 대상자가 된 것 같아서. 그래도! 안 왔으면 모를까 이왕 온 거 후회 없이 하고 가자며 '그냥 갈까 말까' 망설이던 마음을 재정비했다.


"ㅇㅇㅇ님."

내 이름이 불렸을 때 그 고민과 긴장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살아 보니 될 일은 어떻게든 되고, 안 될 일은 어떻게 해도 안 되더라. 면접관들은 지금까지 중 내 나이가 가장 많다고 했다. 이런 전형은 처음이라며 서류 담당자가 했던 말들을 똑같이 반복했다. 모르지 않았기에 타격감은 제로였다.


앞서 두 명은 25분 이상씩 진행됐던 면접이 나는 7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흠… 뭐지? 역시인가? 아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닌 거다. 결과는 월요일에 나온다고 했다. 사무실로 복귀해 업무를 이어나갔다.


'아무 생각하지 말자.'


퇴근길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들어와 있었다. 뭐지? 전화를 걸었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ㅇㅇㅇ ㅇㅇㅇ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희가 선생님과 함께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5월부터 오실 수 있으실까요?"

"네? ? ?"

"지난번 서류 전형 때 6월부터 가능하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5월도 괜찮으실까요?"
"제가 된 거예요?"

"네. 선생님과 함께하고 싶어서요."

"괜찮긴 한데, 그럼 다른 분들은..."

"선생님까지 세 분 합격하셨고 나머지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셋이요?"

"아, 한 분이 4월 말에 정리를 하기로 해서 한 자리가 더 생겨 세 자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함께 하실 수 있는 거죠? 선생님과 꼭 함께하고 싶어서요."

"아 네.... 그럼 합격한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가 됐다고? 심장이 뛰었다.

언제 어떻게 갑자기 왜. 한 자리가 더 생긴 거지? 근데 왜 꼭 나랑 함께하고 싶다는 거지? 월요일 발표랬는데? 급하게 전화한 듯한 여러 통의 전화에 좋으면서도 어리둥절했다.


"됐다고? ? ?"

그 통화를 들은 쁨이도 깜짝 놀라며 함께 기뻐했다. 원래 계획돼 있던 치킨이 기념 야식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땡땡 붓고 얼굴은 환한 보름달이 되었다. 밤새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건 아니고 신나게 먹고 잔 덕분에. 


이 기록을 남기는 지금,

해가 중천에 걸린 지금,

꿀잠에서 깬 쁨이가 파묘를 보러 가자며 방에서 나온다. 취향은 아니지만 해외에서도 흥행 중이라니 궁금해서 보고 싶어졌단다. 나 또한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지만,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역시 뭐든 되든 안 되든 해 봐야 후회가 없고.

될 일이라면 해야 되는 것이지, 안 하면 될 일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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