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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콤이 Sep 05. 2024

음모에 빠지는 순간, 레깅스를 안 입게 된다.


내 친구는 산에 갈 때마다 레깅스를 즐겨 입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츄리닝을 입기 시작했다. 나처럼 갑자기 살이 찐 것도 아니고, 날씬하고 예쁘기만 한데 말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인터넷 댓글에서 허벅지 굵기와 종아리 굵기가 똑같은 여자들에 대한 비난을 보고 상처를 받았던 거다. 그 댓글이 본인을 지칭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레깅스를 입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음모에 빠지는 순간, 상식을 벗어난다. 편협한 생각과 지적 우월감이 상식이 들어올 자리를 없애 버린다. 유명대학, 좋은 직업, 뛰어난 실적을 지닌 사람은 특별히 상식을 벗어나지 않도록 더더욱 자신을 살펴야 한다. 

돈의 속성 p.267



위 내용과 동일한 상황은 아니나, 친구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불특정 다수가 쓴 글을 자신과 동일시해 버린 것이다. 물론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성향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이 만든 음모에 빠져버린 거다. ('음모'라는 두 글자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그저 작가의 표현이려니...)


우리는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말에 의해 행동이 좌지우지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 특히 엄마들에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 '엄마는 무조건 집안에서 조신하게 살림해야 한다', '엄마가 책을 읽어야 아이도 책을 읽는다' '며느리가 그래서 내 아들이 그런 거다' 같은 말들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나, 그렇다고 정답인 것도 아니다.


이런 말들은 여성을 고립시키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 결국, 위축된 엄마의 태도가 아이에게 전이된다는 걸 모르는 게 문제다. 


   



나의 경우, 코로나 기간 동안 약 2년간 150여 권의 책을 읽었다. 책뿐만 아니라 신문과 보고서도 읽었으니, 읽은 글자 수는 어마어마하다. 식탁 위에 책들을 쌓아놓고 읽는 나를 보고 아이는 "엄마는 무슨 서울대 교수님 같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열정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거라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내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아이들이 나처럼 책을 쌓아놓고 읽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의 성화에 못 이겨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읽긴 했지만, 책과 함께 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어쩌면 아이는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부담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엄마처럼 나도 저렇게 많은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전하는 방법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도서관에 가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강요가 아닌, 자연스러운 독서 문화를 만들어갔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여자인 엄마 혼자의 노력만으로 되겠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회적 통념과 편견은 특히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오랜 시간 가정에만 머물다 다시 사회로 나가려 할 때,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집안일은 누가 하지?" 등의 걱정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솔직히 사회로 나가는 것이 귀찮고 두렵다.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으려, 평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취미 생활을 영위하고,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생기고, 사회 진출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감으로)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떤 음모나 편견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도 자신에게 그런 세상을 만들어서도 안된다. "엄마는 이래야 해", "여자는 저래야 해"와 같은 말에 휘둘리지 말고, 나의 가치와 능력을 믿어야 한다. 각자의 상황과 조건이 다르듯, 우리의 선택과 삶의 방식도 다르니까.                     


나는 이제 더 이상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니까!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고 싶다. 그러니 세상아, 여성에게 부여한 고정관념을 이제 그만 거두어 주려무나. 


나는 희망한다.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화해 나가기를. 이것이 누군가에겐 여전히 하찮고 터무니없을지 몰라도.



 나는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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