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 Ed Sheeran - Perfect
어떤 선택이든 그것이
개인의 삶에서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라면
타인이 쉽게 비판하거나 간섭해선 안된다
by. 유시민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때론 쉽게, 때론 한참을 망설이며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삶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선택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 그 사람의 삶에 있어 가장 적합한 결정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나는 비난을 받고 말았다. 옷장을 정리하다 마주한 아이들이 버린 옷들. 그 순간 스쳐간 우울한 감정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의문으로, 지인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하소연한 게 화근이었다.
누군가는 그게 당연하다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살지 말라 했다. 당연하다는 ‘이’는 절약을 강조하였고, 당연하지 않다는 ‘이’는 자아를 강조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결론은 둘의 입장에서 나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물론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었기에 가만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오직 나다.
그들은 내 신발을 신고 걸어본 적이 없다.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마주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내리는 결정들은 오직 나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싱글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아이를 우선으로 하는 선택들이 때론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도 있고, 때로는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선택들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나의 선택이고, 내가 걸어가는 길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흔들려도 괜찮다. 그것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이니까.
아이가 안 입겠다고 버린 옷을 입고 있는 내가, 왜 스스로 궁상맞다 생각 들었을까? 이 감정이 일시적인 가짜기분인 건지, 진짜 기분인 건지, 스스로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나는 배달앱을 통해 외식하는 걸 끊기로 결심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시작이었다. 분명 그랬다. 가급적 집에서 만들어 먹었고, 정말 먹고 싶으면 직접 걸어 나가거나, 포장을 해 왔다.
‘애가 치킨 먹고 싶다는데, 치킨 한 마리 못 사줄 형편도 아닌데, 내가 굳이 이래야 하나’ 처음엔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내가 결정한 거였으면서, 괜히 억울했다.
그러나 점점 상황이 달라졌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집에서, 길에서, 계좌에서 사소한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달 30만 원이라는 금액을 절약하게 되었고, 그 돈은 아이의 새로운 배움을 위한 소중한 씨앗이 되었다. 기분이 전혀 우울하지 않았고 뿌듯했다.
내가 선택한 이 걸음이 결국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절약하기로 한 결정, 그리고 그로 인해 피어난 아이의 새로운 가능성들. 또한 이걸 해내가면서 수학 능력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나 자신. 느리지만 확실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다.
당신의 선택은 당신만의 것이다. 아이한테 올인을 하든 말든, 자신한테 올인을 하든 말든, 그것이 빠르든 느리든, 남들과 다르든 같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과 그 그 과정에서 '가짜기분'과 '진짜기분'을 구분해야 한다. 단 그것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다. 당신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단, 유시민 님의 말씀처럼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내가 혼밥으로 초밥을 포기하고, 라면을 선택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