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ggy Azalea 이미지
늦은 밤, 휴대폰 화면에 딸아이의 이름이 반짝였다. 시차가 있는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엄마, 사장님이 시급을 1달러 올려주셨어!" 상기된 목소리로 전해오는 기쁜 소식에 내 마음도 덩달아 부풀어 올랐다.
성실함으로 인정받은 우리 딸. 그 목소리에 담긴 자부심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타국에서 하나둘 쌓아가는 작은 성취가, 어쩌면 우리 딸에게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인정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거대하다. 19달러라는 시급이 말해주듯, 그들의 경제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생활비도, 집세도 만만치 않다. 한국 경제에 매몰되 있는 나로써는 그렇게 느껴진다.
이야기 도중, 아이는 갑자기 먹고 있는 스타벅스 샌드위치를 사진으로 보내왔다.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돼지 왜 샌드위치를 먹나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것저거 사 먹지 말고, 돈을 아껴 쓰라고 했다. "여기선 엄마, 엄청 싸게 느껴져 "
내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말이 나간 것처럼, 아이 역시 '걱정하지마 엄마' 뒷 말이 생략된 답변을 주었다. 미국에서 스타벅스 커피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지는 것은 현지 물가와 임금 수준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한 잔은 세금을 포함해 4.28달러로, 한국의 커피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이의 시급이 19달러인 것을 고려하면, 현지인들이 스타벅스 가격을 그다지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괜히 잔소리를 했구나 싶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것도 알바 장소에서 먹는 건데...
때로는 마음이 아프다. 더 넉넉히 지원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부모로서 가슴 한편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그 무게만큼 딸아이는 단단해지고 있다. 주말이면 알바를 하며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모습에서, 나는 작은 희망을 본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우리가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학비와 얼마 되지 않는 생활비뿐. 한국에서라면 용돈 수준일 그 돈으로, 딸아이는 불평불만 한 마디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늦은 밤, "걸어가면 되는데...7달러 아깝단 말이야, 집도 가까운데 " 딸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밤중에 홀로 걷는 딸아이를 생각하자니, 괜히 걱정스러웠다.
" 집도 가까운데 산책 겸 걸어가 "
" 돈이 아까우면, 우버를 불러. 우버가 저렴하잖아"
새로 이사 간 곳은 다운타운보다 치안이 좋은 곳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손녀를 걱정하는 마음에 절대 밤에 못 걷게 한다. 우버도 있고, 현지 택시도 있지만, 그 마저도 꼭 한인 택시를 타게 한다.
같은 민족이라 믿음이 간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한인타운 내에서는 정액제 7달러 이동 가능하기 때문에 저렴하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젊음의 피가 끓어오르는 아이를 대신해, 나보다 생활의 지혜가 많은 분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할머니 말씀을 잘 들으라고 조언을 해 준 게 전부.
"택시비 7달러면 간단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인데..." 아이의 투정 섞인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알바 하면서 고작 한 끼 식사 값을 이렇게 꼼꼼히 계산하는 모습에, 돈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아이란게 느껴졌다.
그 동안의 내 걱정이 기우였다는 생각에, 이제는 정말 아이를 믿고 지켜보기로 마음 먹었다. 매번 글을 쓸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이건 아이의 독립이 아닌 오히려 엄마인 내가 독립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1달러와 7달러.
숫자로만 보면 그저 적은 금액일 뿐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얼마나 큰가. 1달러는 우리 딸의 성장이요, 7달러는 할머니의 사랑이다. 하나는 딸의 자립을 향한 발걸음이며, 다른 하나는 그 발걸음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다.
미국에서 더 큰 성장을 준비 중인 딸. 때로는 걱정되고, 때로는 안쓰럽지만, 그 모든 순간이 우리 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안다.
우리 딸은 위대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다.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가는 우리 딸이, 나는 참으로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