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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숲 Oct 19. 2022

괜찮아, 십 년이면 충분해

[서문] 도시를 떠나 개와 고양이와 함께 한 십 년 간의 방랑 일기.

십 년은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

십 년이라는 두 글자를 적어놓고 보니 두꺼운 책 같은 느낌보다는 잠시 낮잠을 잔 것처럼 짧게 느껴진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란 내가 서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건 너무나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많은 다른 도시인처럼 항상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끝이 없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었고 그런 생활 속에서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자괴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면서 난 늘 탈출을 꿈꿨다. 사는 동안 창작인으로 살려고 발버둥 쳤지만 현실적으로는 먹고사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들어갔던 회사였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십 년이 흘러있었다. 분명히 일상의 질은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걸 이루지도 않았는데, 나는 가식적인 관계와 수많은 탐욕 속에서 점점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회사 창 밖의 은행나무가 노란 파도처럼 흔들리던 어느 날, 나는 아무런 예고도 별다른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그날 오후, 나는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회사 건물을 나서면서 이젠 정말로 서울을 떠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려고 할 무렵 나는 서울 부암동에 살고 있었다. 부암동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나는 그 동네에서의 삼 년이 나의 마지막 서울 살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부암동은 서울 시내 중심에 있는데도 마치 숲 속에 있는 것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네이기 때문에 나의 서울에서의 마지막 추억은 꽤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 내 집은 아마도 부암동의 집들 중에서 제일 작은 집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던 집이 삼각형 땅 위에 있어서 삼각김밥집이라고 불렀다. 삼각김밥집에서 아름다운 계절들을 보내던 어느 날 내게 어린 시바견이 찾아왔다. 시바견은 어릴 때는 코 주위가 검어서 귀여운 곰돌이처럼 보인다. 나는 그런 귀여운 강아지가 좋았지만 며칠 동안 녀석의 이름을 짓지 못했다. 그러다 식탁 위에 있던 콜라를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녀석을 콜라라고 부르게 됐다. 내심 괜히 성의 없게 이름을 지어준 것 같아 미안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콜라라는 평범한 이름은 그 귀여운 아이에게는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지 않았을까.


내가 서울을 떠나 처음 살게 된 곳은 제주도였다. 그 후 양평, 인천, 강화도, 춘천, 곤지암, 옥천을 거쳐서 다시 양평으로 왔다. 그 사이 대전과 경주에서 짧게 머물렀던 기간까지 합치면 참 여러 곳을 방랑하며 산 것이다. 그렇게 방랑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다시 십 년이 훌쩍 지나 이제 서울을 떠난 지 십삼 년 정도 된 것 같다. 나의 방랑은 처음 콜라와의 동행으로 시작했지만 제주에서 오슬로라는 삼색 고양이가 합류했고 곤지암에 와서는 고래라는 턱시도 고양이도 식구가 됐다. 

십 년 간의 방랑은 쓸모없는 관계와 쓸모없는 말이 줄어드는 시간이었고 고요한 하루 속에서 나 자신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콜라와 오슬로와 고래는 내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그들의 눈빛으로 치유해주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상실감도 따뜻한 온기로 위로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회사를 다니던 십 년이 내가 가장 빛나던 십 년이었다며 아쉬워한다. 그러나 정작 내게 가장 행복했던 십 년은 그 후 콜라, 오슬로, 고래와 함께 한 십 년의 방랑 기간이었다고 생각 한다. 이 책은 우리 넷의 만남과 방랑 그리고 이별의 순간들을 통해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쓰게 되었다. 

사람이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십여 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이들을 만남과 동시에 이별도 멀지 않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휴대폰 속에 저장된 수많은 사람들과의 피곤하고 허무한 시간보다는 개와 고양이와의 십 년이 더 햇살처럼 빛나는 시간일 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일생에서 겨우 십여 년 동안 개나 고양이와 함께 한 것뿐이겠지만, 그 개나 고양이에게 그 십여 년은 평생 우리와 함께한 시간 아닌가. 그러므로 내게는 우리들의 십 년 간의 방랑이 사람들 틈에서 성공이라는 모호한 단어를 쫓던 십 년 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가을 햇살이 투명하게 빛나던 날, 나는 콜라와 오슬로에게 말해주었다. 우리의 신비한 만남만큼 이별 또한 아름다울 거라고. 나는 오래오래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짧은 시간이지만 우린 사랑으로 충만했으니까. 괜찮아, 십 년이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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