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아도 탈, 없어도 탈]
'핸드크림' 때문에 갑자기 퇴사해 버린 'K'의 이야기다.
2년 차인 'K'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이다.
워낙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라 표현은 잘 못했지만 맡은 일엔 최선을 다 했다.
2년 동안 'K'는 표현을 안 했지만 힘들었다.
말을 잘하고 세련된 동료들과의 대화에 잘 못 껴서 점점 혼자 지내는 시간도 많았다.
또
직속 상사가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으며 업무 지시하는 것도 참고 있었다.
업무배정에서는 힘든 일을 맡는 것 같았고
좋은 연수나 교육에서 배제등
서운한일들이 계속 생겼다.
동료여럿이 함께 휴가를 간다며
대직을 해달라고 했을 때도 혼자 다 해냈다.
회식 때 영업팀 전무가 말도 없고 무뚝뚝해서 성격을 고쳐보라고 했을 때도 참았다.
관계는 잘 못하지만 업무에서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사원 'S'가 'K'와 같은 업무에 배정받았다. 'S'는 표현도 잘했고 싹싹하게 굴어 금세 사람들과 잘 지냈다.
성실한 'K'는 'S'의 멘토를 맡게 되어 업무를 가르쳤고 'S'도 고마움을 표현하며 잘 지냈다.
세 달쯤 되었을 때
차장이 사무실 중앙테이블로 신입'S'를 불렀다.
"벌써 일한 지도 석 달이 되어 가는데 어때? 적응은 잘하고 있어?".
석 달 동안 'S'의 멘토역할을 했던 'K'는 귀를 쫑긋하며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S'가 대답했다. "직원분들 모두 친절하게 도와주셔서 잘 적응 중이에요. 차장님께서 이렇게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애교스럽게 대답한 'S'은 언제 준비했는지 작은 핸드크림을 차장에게 내밀며 "제거 사면서 차장님 생각나서 하나 더 샀어요. 향기가 고급스러운 게 차장님과 잘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늘 너무 감사합니다. 차장님!".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차장은 환하게 웃으며 "어머! 내 생각이 났었어? 뭘 이런 걸~ 고마워.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어!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요." 그 뒤로는 블라블라~......
'K'가 들은 건 여기까지였다. 'K'는 순간 배신감이 들면서 굉장히 불쾌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왜 자신이 기분 나쁜지 생각하며 괴로웠다.
지금껏 더 억울하고 서운한 게 있어도 참았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화가 너무 많이 났다.
'S'를 석 달 동안 가르친 건 'K'였다.
거래처 정보, 효율이 높은 중점사항 등 2년 동안 정리해 둔 파일까지 주면서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S'가 자신에게는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인사했었다.
지금 차장에게 보이는 애교스러운 감사는 없었다.
신입사원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그날 이후로는 'S'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고 동료와도 불편했다.
2년 동안 당연했던 업무배정에 화가 났다. 문제 삼고 이야길 했더니 상사는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늘 맡았던 거잖아!"라며 자신을 탓했다.
2년 동안 참아왔던 서운함이 '핸드크림' 하나로 터져버렸다. 그리고는 사표를 냈다.
묵묵히 일하던 'K'가 갑자기 사표를 내니 동료들은 이유를 물으며 궁금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지친 'K'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버렸다.
'K'가 말했다.
"왜 저한테만 그러는 걸까요? 제가 만만한가요? 신입까지 저를 무시하더라니까요." 속상해하는 'K'에게 말했다. "만만하다는 말보다는 너무 편하게 해 주셔서 그런 거겠죠. 우리는 편하면 소중함을 까먹으니까요." 그리고 이어 말했다. " 그래서 'S'님이 미우세요?"
나의 질문에 'K'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문제죠. 그 친구는 사회생활 잘한 거죠."
'K'를 위로하며 다음 상담 일정을 약속했다.
자책감으로 속상해하며 떠나는 ' K'의 뒷모습에 내 마음도 안타까웠다.
내가 할 말이 있어 보이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 나는 학교에서 겪었던 불편했던 속 마음을 맘껏 떠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히 참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참고 있는 것은 내 감정이고 상대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참다 참다 용기 내어 말하면
상대는 "오늘 갑자기 왜 이래?"라고 생각한다.
지금 'K'처럼 참고 있다면
이제 그만!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꼭! 할 말은 하자!
이제는 나를 지켜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