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
'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최소 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1993년 미국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이 발표한 논문에 나오는 개념으로 그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대부분 훈련 시간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우수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의 연습 시간은 최소 만 시간 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은 얼마큼의 시간을 고기잡이에 투자했을까? 그들의 직업이 어부였으니 만 시간은 족히 투자했을 테다. 하루 여섯 시간만 잡아도 5년이면 만 시간을 채울 수 있다. 그 시대에는 생업에 더 일찍 뛰어들었을 테니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고기 잡는 데 할애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간만 쓴다고 다 전문가가 되지는 않는다. 10년 동안 같은 농사를 지어도 어떤 사람은 농사를 잘 짓는 반면 어떤 사람은 매번 시원찮게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같은 시간을 써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 보면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사람과 늘 하던 데로 대충 일을 하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베드로는 왜 고기를 못 잡았을까? 배움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세상을 살다 보면 아무리 훈련 시간이 많고 배움의 자세가 좋아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한 어부가 물고기의 길을 알 수는 있어도, 이상 기후로 인해 물고기들이 씨가 말랐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든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조건들이 있다. 아무리 시간을 투자하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아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일까?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경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고 싶어 죽을 듯 열심히 노력한 200명의 학생이 있는데 단 100명만 의사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더 많은 시간을 배우고 익힌 사람이 합격할 수 있을까? 정말 날고 기는 사람들끼리의 경쟁에서는 작은 변수(그날의 컨디션과 같은 것들)가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가 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경쟁할 수밖에 없다. 즉 더 나은 인적자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닦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경쟁이 공정하기라도 한가? 재능, 재력, 환경 등 처음부터 공정한 건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있을까? 한 개인이 사회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공정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능력을 키우는 수밖에는 없다. 만 시간이 아니라 삼만 시간이라도 투자하고, 더 효율적인 배움을 위해 돈을 쓴다.
그렇다면 사람을 살리는 일은 어떤가? 사랑하고, 응원하며, 격려하고, 소통하는 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일. 이러한 일들은 일만 시간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오랜 시간 소박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부자가 하루아침에 곱살스러운 사이가 될 수는 없다.
베테랑 어부들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고기가 잡혔다. 그 광경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베드로에게 예수가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라. 이제 이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높은 경쟁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다. 돈, 명예, 권력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기고 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훈련과 사랑을 실천하는 훈련의 결이 다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몸이 아파 수업을 듣지 못한 친구를 위해 노트 필기를 보여주는 행위는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인가?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이라도 이길 수 있어야 그나마 가능성이 생기는 상황에서는 어쭙잖은 도움이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일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기한 내용을 보여줌으로 인해 친구의 불안한 마음을 어느 정도 위로할 수 있을 테다. 반면에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기는 사람인가? 살리는 사람인가? 어느 쪽을 선택해도 쉽지는 않다. 만 시간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은 건 둘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신의 자녀다운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움이 필요한 일이고, 시행착오도 필요하다.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봐야 하고, 눈물로 회개할 일도 많을 것이다. 만 시간이 아니라 평생을 투자해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분량이다. 불공정한 세상이지만 공평히 주어져 있다. 어디에 시간을 쓸 것인가?
그들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예수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