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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드람희 Mar 12. 2024

오석복과의 점심

 오석복 씨의 첫 출근날.

나보다 일찍 도착한 석복은 근무복을 입고 활짝 웃으며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첫날부터 비가 오네요!"

"안녕하세요~ 비 오는 날 빵이 더 잘 나가는데~ 오늘 손님 많을 거 같은데 준비 됐어요?"

"아직 빵 이름이 익숙지 않아서 무섭네요. 얼른 외울게요."

"그래도 둘이니까 차근차근 같이 해봐요. 둘이라 저도 마음이 편하네요. 잘 부탁해요."

"네!"


 면접 때도 보였던 석복의 당당함과 활기참이 신선했다. 첫 근무라 배울 것이 많았지만 곧잘 따라오고 큰 목소리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석복의 모습은 빵집의 아침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다만 수많은 종류의 빵을 달달 외워 손님들이 가져오는 빵들을 보고 그때그때 포스기로 눌러 계산해야 하는 건 아직 힘들어 보였다. 빵이름을 헷갈려 다른 빵이름을 누르거나 손님이 들고 온 빵이름을 생각해 내려고 끙끙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옆에서 도와줘야 했다. 포인트 적립과 통신사 할인도 두세 번 강조해서 알려주었지만 다루기 어려워해서 몇 번이나 다시 알려주었다. 그 덕에 혼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훨씬 정신이 없는 하루였지만 우왕좌왕하는 석복을 보며 킥킥 웃는 순간이 많았다. 나보다 분명 나이가 많은데도 가끔 귀여울 때가 있었다.

5시간의 오전 근무를 끝낸 우리는 출근해서 마시려고 내려놓았지만 반도 마시지 못한 아메리카노와 사장님이 챙겨주신 어제 남은 빵 몇 개를 받아 들고 빵집을 함께 나왔다.


"사장님은 매일 이렇게 빵을 주시나요?"


사장님이 주신 팥도넛을 한입에 넣으며 석복이 말했다.


"어제 남은 빵은 20프로 할인해서 오늘 파는데 오전 아르바이트 끝날 때까지 안 팔리면 사장님께서 종종 이렇게 주시죠! 꽤 쏠쏠하죠?"

"빵집 알바의 장점이네요!"

"맞아요. 저는 집이 바로 요 뒤에 아파트예요. 집은 어디세요?"

"세하 씨 집, 빵집이랑 엄청 가깝네요! 저는 걸어서 15분 정도 가야 해요. 두실역까지요. 오늘 저 때문에 너무 정신없으셨을 것 같아요. 이번주 세하 씨한테 열심히 배워서 다음 주부터는 세하 씨처럼 잘해볼게요. 오늘 일 알려주신 거 고맙기도 하고 제가 옆에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요... 혹시 내일 아르바이트 끝나고 근처에서 점심 같이 먹을래요? 오늘도 괜찮고요. 제가 밥 사드리고 싶어서요."

"아? 밥이요? 밥 안 사주셔도 되는데... 일이야 당연히 같이 일하는데 많이 알려드려야죠! 첨엔 원래 정신없어서 실수하고 그래요.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밥 같이 먹어요. 제가 감사해서 그래요. 간단하게라도 뭐 사드릴게요."

"아? 그럼... 오늘 먹어요. 저도 혼자 먹어야 하는데 같이 먹으면 좋죠 뭐!"


 얼떨결에 석복이 사주는 밥을 얻어먹게 되었다. 본인 말로는 일 알려줘서 고맙다는데 눈빛을 보니 진짜 일을 알려줘서 고마워서 사는 것 같긴 했다만 이성으로써의 호감을 조금 내비친 건가 싶어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어떻게 되려나... 취직준비할 나이대로 보이는데 알바는 왜 하시는 거지... 남자가 밥 사준다고 하면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거 아닌가... 일할 때 나 보면서 생글생글 웃긴 하던데 원래 그렇게 잘 웃는 건가... 호감 있는 거 아니야?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우리는 빵집에서 5분 정도 걸어 동네 샤부샤부집으로 갔다. 비도 오고 살짝 쌀쌀해니 국물 있는 따뜻한 샤부샤부를 먹자는 석복의 말에 다섯 시간 아르바이트해서 하루 아르바이트비를 밥값으로 다 써도 괜찮은가 싶었지만 사준다고 하니 웃으며 따라갔다.

 샤부샤부집은 평일 점심인데도 사람이 꽤 붐볐다. 입구 바로 앞 2인 테이블과 안쪽 6인 이상 테이블만 비어있어 우리는 입구 쪽 테이블에 앉았다. 아주머니 손님들의 여러 목소리들이 어색함을 좀 덜어주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밥을 먹으면 이런저런 신경을 쓰느라 밥이 잘 체하는 나는 샤부샤부가 나오기도 전부터 체한 것 같았다. 반면 석복은 무덤덤해 보였고 나를 크게 어색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능숙하게 물을 따라주고 티슈 한 장과 수저를 꺼내 내게 건네주는 모습이 꽤나 자연스러웠다.

석복은 나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9급은 이미 합격을 해놓은 상태였지만 7급 시험도 같이 준비했던 터라 9급 발령은 미뤄두고 계속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는 28살로 나보다 3살이 많았다. 공부하던 와중에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어서 호기심에 한번 아르바이트 지원을 해보았고 그렇게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면서 사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는 공부를 하면서는 다른 어떤 것에도 주의를 돌리기 힘든 사람이라 그런지 석복이 신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으니 생각보다 어색함이 크지 않았고 서로의 대학생활과 공부할 때의 얘기를 하다 보니 별의별 얘기도 다 하게 되었다.

 석복은 운동을 좋아한다고 했다. 지리교육과를 나온 석복은 과 산악부에서 활동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유명한 산은 다 가봤다며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북한산 등을 등산했던 경험과 겨울 빙벽을 탔던 추억을 신이 나서는 조잘조잘 말했다. 산악부 회장을 하면서 산악부 후배와 연애도 했었다고 했다. 석복의 입에서 나오는 연애경험을 듣다 보니 아마도 나에게 밥을 사주는 건 정말 일을 알려줘서 고마워서 그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호감은 아니겠다 싶어 지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동시에 '그럼 그렇지' 하는 어떤 미세한 실망감이 느껴졌다. 내가 석복에게 호감이 있는 건가 싶었지만 고개를 가로로 휘저으며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얼떨결에 처음 보는 남자와 점심을 먹게 되어 무료했던 일상에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확실히 기분이 좋긴 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와 샤부샤부집 앞에서 석복과 내일 보자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집으로 올라가며 속이 더부룩한지 생각했지만 낯가리지 않고 말을 잘하는 석복 덕에 편히 점심을 먹었는지 속이 꽤나 편했다. 폰에 떠있는 남사친 은택의 부재중 전화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은택은 공무원 시험 합격 동기 중 한 명으로 면접대기장에서 옆자리에 앉았다가 친해졌었다. 발을 동동거리며 앉아있길래 내가 먹고 있던 초콜릿 몇 개를 건네주었었는데 초콜릿을 보며 순박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던 은택과는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험합격 소식을 함께 들은 후 몇 번 만나 술을 마시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여사친과 놀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석복과의 아르바이트와 석복이 사준 점심식사에 대해 후다닥 내뱉었다.


"남자가 밥을 사줬다고?"

"어! 샤부샤부 사줌! 근데 그냥 일 처음 하는데 옆에서 도와줘서 고맙다고 사주는 거라고 하긴 했어."

"그렇다고 밥을 사주진 않지!"

"관심 있는 거 같나? 아니야, 왜냐면 밥 먹으면서 본인 연애얘기하던데? 관심 있으면 자기 연애얘기를 왜 하겠어?"

"계속 아르바이트하다 보면 뭐 보이겠지! 쨋든 재밌겠다?"

"재밌네 좀?"   


은택과의 전화통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밥 먹으며 석복과 교환했던 폰번호로 석복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뒤져보았다. 석복의 프사는 뿔테안경을 쓰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찍은 증명사진 한 장을 찍은 사진이었다. 배경은 부모님 사진. 사진에 관심이 전혀 없는 남자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인스타와 페이스북에도 '오석복'을 검색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뭐야... 왜 이렇게 재미없어...'


석복에게 호기심이 더 생겨버린 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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