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꿈의 글 '스무이틀'
어느덧 ‘브런치’라는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남기기 시작한 지 6주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글이 22번째 글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떤 것들이 변했을까? 글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글과 조금씩 가까워지며 나에게 찾아온 변화들이 궁금해 한번 생각해보았다.
1. 글로 아침을 열게 되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책상 앞에 앉는다. 내일 아이들에게 보여줄 나의 시를 써야지. 오늘 아이들이 쓴 시를 읽어보고 글을 써야지. 그렇게 쓰다 보면 술술 잘 써질까? 사실 잘 써지는 날은 거의 없다. 매일 피곤함에 찌든 채 집에 돌아오면 머리가 지끈거려 시작도 못 하거나 어째 쓸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시작하기가 두려워 조금씩 미룬다. 그러다 밖은 온통 새까만 밤이 된다. 그럼 그때부터 급히 쓰기 시작한다. 피곤해서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날은 다음 날 아침에 이어서 쓸 것을 기약하며 잠이 든다. 내일 아침의 내가 할 것이라 생각하고 내일의 나에게 미룬다. 그래서 요즘 매일 일찍 일어나 글을 쓰게 되었다. 어찌하다 보니 덕분에 아침에 부지런해졌다. 게으름을 조금은 덜어냈다. 아침잠이 많았는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있다. 밤잠도 많았는데 글을 쓰다 늦게 자게 된다. 그럼 피곤하게 아침을 시작하지 않을까? 다음날 어떡해? 걱정되었지만 역시 나는 기분이 몸을 지배한다. 글을 완성하다 늦게 잔 날에도 끝마치지 못한 글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난 날에도 뿌듯함에 찌뿌둥한 몸도 나름 기분 좋다. 이상하리만큼 괜찮다. 기분이 몸을 캐리해 완성했을 때의 보람과 벅참이 더 크다. 좋은 기분이 좋은 몸 상태를 만들고 있다.
2. 다른 사람의 글을 찾아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글이 궁금해 찾아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한 마음에 찾아 읽게 되었다. 요즘은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매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서점에서 사서 들고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일까? 수많은 책을 휴대폰, 태블릿 하나에 넣어 언제든 클릭 몇 번으로 간편하게 찾아 읽는다. 브런치의 글들도 마찬가지다. 책보다 접근성이 좋고 길이도 짧은데 그 안에 전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해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읽고 나서 얻는 것도 확실하다. 갖가지 주제 중 원하는 주제의 글을 내 마음대로 선택해 읽을 수 있으니 이보다 간편하고 좋은 독서가 없다. 나도 어쩜 이런 글을 썼을까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작가들의 글을 읽고 있다. 한 문장 한 문단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울림이 있는 멋진 문장에 감동하고 새로운 시선을 배우고 깨달으며 이렇게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3. SNS를 찾지 않게 되었다.
완전히 끊지는 않았지만, SNS보다 글 쓰는 시간이 더 재밌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참 자주 들락날락 꼭 찾았던 SNS였는데 이제는 그렇게 손길이 가지 않는다. 오랜만에 들어가는 날에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쌓여있는 피드를 보며 놀란다. SNS는 ‘나 여기 있어요! 이렇게 살고 있어요!! 잘 살고 있어요!!!’ 보여주는 내 존재에 대한 표시였다. 하지만 이젠 브런치의 내 공간이 이 역할을 훨씬 그 이상으로 해주고 있기 때문인지 SNS를 찾지 않는다. 대신 브런치에 더 자주 들어가 본다. 스마트폰보다 책을 손에 더 자주 쥐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의 삶을 구경하는 시간보다 내 삶과 내 생각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좋다.
4. 주변 사람들에게 글을 권하게 되었다.
내 글을 계속 권하고 싶어진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브런치라는 공간을 알려주는 게 쑥스러웠다. 사실 아직도 지인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내 글을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내 가족과 정말 막역한 친구에게만 내 공간을 알렸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계속 내 글을 권하고 있다. “나 이번에 또 글 썼는데 읽어볼래?” 계속 권한다. 읽어주면서도 “또?”라는 반응을 보니 힘든가 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계속 권하게 된다. 아직은 부끄러워 동료나 지인들에게는 절대 비밀이다. 내 글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깊이가 깊어지면 그때는 지인들에게도 또 모르는 더 많은 사람에게도 권해야지. 많은 사람에게 닿는 글을 써야지.
5. 보이지 않았던 모습까지 보이는 시
사람을 또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 반 아이의 몰랐던 면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모습들도 시를 통해 보게 된다. 평소에 친구들에게나 혼잣말로 거친 표현을 쓰는 아이가 있다. 아이의 정서에 어떤 결핍이 있을까? 채워져야 할 마음이 있을까? 언제부터 다른 사람에게 거친 아이였을까?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해 거칠게 보이고 싶은 걸까?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해 일부러 거칠게 말하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시를 쓸 때는 정말이지 예쁜 표현들로 순수함이 돋보이는 시를 쓰는 거다. 자신의 유함을 다소 거친 표현으로 감추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본래의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달랐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 괜찮은 척해도 속이 여린 아이였다. 글에는 글을 쓴 사람의 냄새가 묻어난다고 한다. 어쩌면 감춰졌던 본심이 자신의 글에 불쑥 나오기도 한다.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과 시를 쓰며 느끼는 바가 많다. 쉽게 보이지 않아 몰랐던 아이들의 다른 모습까지 볼 수 있게 되어 시 쓰는 아침이 또 기다려진다.
6. 사람을 궁금하게 만든다.
글을 읽고 있다 보면 어떻게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상상하다 못해 물어보고 싶다. 누군가가 쓴 글을 읽으면 그 글은 내게 다가와 무언가를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럼 나도 말을 걸고 싶어진다.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는지 얼굴 바싹 갖다 대 두 눈 반짝이며 직접 물어볼 수는 없어도 책 속의 글로 그 사람의 생각을 읽어볼 수는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의 시를 읽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알 수 있다. 요즘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집에서는 어떤 일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어떨 땐 아무렇지 않게 슬쩍, 어떨 땐 조심스럽게 살짝 물어본다. 그럼 아이의 속마음도 들어볼 수 있다. 오늘도 멋진 글에 감탄하며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궁금하다. 이런 시를 쓴 우리 반 꼬마 작가의 생각도 궁금하다. 누군가의 글은 나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나의 호기심에 불을 지핀다.
7. 좋은 자극을 받는다.
세상엔 멋진 사람이 너무 많다. 열심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참 많다. 많은 줄은 알았지만 다양한 사람의 글을 읽으며 더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도 나와 같은 분야의 훌륭한 사람을 보며 “역시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성찰한다. 내가 해볼 수 있는 건 없을까? 어떻게 해보면 좋을까? 고민하고 하나씩 실천해보며 가슴이 설렌다. 좋은 롤 모델이 나를 한층 더 성장시킨다. 나와 다른 분야의 훌륭한 사람을 보면 그 분야도 배워보고 싶다. 멋진 사람들을 보며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자극받고 다짐하게 된다. 이런 긍정적인 자극이 나를 더 성장시킬 것이라 기대되어 기분 좋다. 가슴이 마구 날뛴다.
8. 목표가 생겼다.
볼 것도 없으면서 딱히 찾는 것도 없으면서 괜스레 유튜브 영상을 자동 재생하고 있다. 긴 영상은 싫고 다음 영상 하나씩 누르는 것도 귀찮아서 쇼츠를 쓱쓱 넘기며 본다. 이 영상 저 영상 계속 넘어가고 어떨 땐 웃으면서 봤다가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가 화내며 봤다가 울면서 본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어서, 잠시 고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도피처로 유튜브를 찾았다. 그래도 알고는 있었다. 금 같은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모하고 있다는 걸. 유튜브를 하염없이 보고 있는 내 모습이 나도 싫다는 걸.
누군가 열심히 만들어 올린 생산적인 영상을 나는 비생산적으로 보고 있구나. 나도 저런 기발한 콘텐츠 만들 수 없을까? 우와 구독자 좀 봐. 되게 인기 많네. 되게 돈 많이 버네. 부럽다. 월급 대신 콘텐츠로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의 노력을 헤아리지는 못하고 나도 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방구석에 드러누워 배 두들기며 봤었다. 이 영상 재밌네. 되게 유익하네. 근데 나도 저런 창작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창작물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내가 전달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이제는 나도 생산자가 되고 싶어졌다. 나도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휴대폰 대신 책을, 영상보다는 내 글을 보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 같다. 나의 글을 쓰다 나의 책을 만들고 싶어졌다. 함축적이며 운율감이 있는 언어로 시집을 내고 싶다. 일반적인 시집도 아이들을 위한 동시집도 좋겠다. 지금처럼 자기 고백적인 수필뿐 아니라 소설로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 나만의 인물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복잡한 갈등과 사건들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야기도 써보고 싶다. 그 안에 깊이 있는 사색과 통찰이 담겨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아직 길게 봐야 할 나의 목표다. 하나씩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보고 이 글들이 모여 나의 책이 되면 좋겠다. 그런 나의 책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한 문장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순간 떠올리면 힘이 되는 한 문장을 쓰고 싶다. 그런 힘이 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나의 미래를 생생하게 그려보자. 공감 에세이, 소설, 동시집, 동화책 다양한 책을 쓰고 책으로 많은 사람에게 힘이 되고 있다. 글로써 공감하고 공감 받고 있다. 응원하고 응원 받고 있다. 정말 그렇다면 바랄 게 없겠다. 이런 나의 꿈을 생생하게 꿈꾸고 하나씩 이루어가며 내 몸과 마음을 성공 에너지로 가득 채워야겠다.
9. 다양한 글의 재미를 맛보고 있다.
판타지, 추리 소설과 자전적 에세이를 좋아하던 내가 시집을 손에 쥐고 시를 읽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뭔가 낯설다. 왠지 시는 나와 거리가 먼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했는데 바쁜 와중에도 시 한 편씩 읽고 마음에 닿은 시 구절 곱씹어 보는 게 좋다. 시집을 끼고 다니며 시가 읽고 싶을 때마다 시집을 펼쳐본다. 그러다 문뜩 시가 떠오를 때마다 적어둔다. 아이들과 이 주제로 한번 시를 써볼까? 짧은 시에 담긴 언어유희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시에는 음악도 있다. 따라 읽다 보면 하나의 노래가 따로 없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글은 각자의 매력이 있구나. 시를 읽다 에세이를 읽고 그러다 소설을 읽는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할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꼭 적어두고 다음에 또 읽어야지. 자꾸자꾸 봐야지. 그리고 나도 내 공간에 내 글을 써야지. 내 글자국을 남겨야지. 그래서 오늘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다. 또 글을 읽고 있다.
10. 선물 같은 시
요즘 학교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책상 앞에 앉아 아이들이 쓴 시를 읽어보는 것이 삶의 낙이 되었다. 글을 쓰는 게 어쩌면 부담이 되기도 하고 미루고 싶은 과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시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노트북 검은색 화면에 비친 내가, 창문에 희미하게 비친 내가 웃고 있다. 퇴근 후 선물을 뜯어보는 기분으로 아이들의 시를 하나씩 읽곤 이렇게 소중한 시들을 글로 남긴다. 한 명씩 시를 읽으며 이 아이의 시는 어떤지 어떤 마음인지 조목조목 살펴보면 글로 남기고 싶어진다. 참 예쁜 시들이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만의 시 짓기’가 나에게는 확실한 행복인가 보다.
아직은 글쓰기가 낯설고 어렵지만,
이런 글 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