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꿈의 글 '스무닷새'
그림책을 읽고 싶어
그림책을 읽고 싶다. 어린이가 읽는 그림책을 이 나이에 찾는 이유는 단순한 듯 보여도 복잡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공감하고 싶어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은 긴 줄글 대신 그림과 짧은 몇 마디로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나이 불문하고 긴 글은 읽다 지쳐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림책은 일단 얇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들은 그림책을 좋아하나 보다. 자기 전 폭신한 이불 덮고 부모님 품속에서 같이 읽던 그림책이 생각난다. 가장 좋아하는 책 속 주인공을 따라 이야기에 푹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잠에 빠진다. 그림책은 얇지만, 그 안에서 자연스레 교훈을 전달하고,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그림책 어디 없을까?
그림책의 거장, 앤서니 브라운
앤서니 브라운의 <돼치책>을 읽었다. 그림책의 거장,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작이라니 그럼 한번 봐야지 하며 읽었다. 국내 출간 20주년이라는데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는 책이다. 아는 그림책 작가가 몇 없는 나도 앤서니 브라운은 안다. 대학생 때 아동문학 수업에서 이 작가를 처음 알았다. 전달하는 메시지도 확실히 있으면서 재밌는 그림과 표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서관에 자리 잡고 앉아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을 쭉 읽어보았다. 역시 앤서니 브라운이 쓰고 그린 책이 참 많았다. 읽고 다루고 싶은 그림책이 많았지만, 고민 끝에 <돼지책>으로 결정했다. 책 제목도 궁금증을 자아내고 아이들과 가족에 대해 시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족에 관한 책을 읽고 써보고 싶었다.
표지를 보니
엄마가 아빠와 두 아들을 업고 있다. 무겁지 않을까? 등에 업힌 아빠와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활짝 웃고 있다. 엄마의 표정은 그렇지 않다. 굳게 다문 입에 덤덤한 표정이다. 표지에서 엄마가 견디는 무게가 느껴진다. 무슨 내용일까? 아무래도 엄마가 힘든 이야기일 것 같다. 아이들은 이 표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들의 눈은 또 다르다. 물어보고 싶다.
“이 그림을 볼까? 무슨 그림이야?”
“어떤 생각이 들어?”
아이들은 그림 속에 숨겨진 의미를 곧잘 찾아낸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생각까지 해낸다. 그림을 보며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여기 이 장면
피곳 씨네 가족은 멋진 집에 살고 있다. 그림으로 보아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모습이다. 그런데 집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상하다. “여보, 빨리 밥 줘.”, “엄마, 빨리 밥 줘요.” 모두 휑하니 가 버린 뒤 엄마만 남아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마무리한다. 그러곤 쉬는 걸까? 곧장 일하러 간다. 저녁에 돌아와 “어이, 아줌마, 빨리 밥 줘.”까지 피곳 씨는 선을 넘어도 세게 넘었다. 아내를 아줌마라고 부르질 않나 집에 돌아와서도 밥. 밥. 밥. 밥부터 찾는다. 아내가 밥해주는 사람인가 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빠를 보고 배운 건가? 엄마가 밥으로 보이나 보다. 볼 때마다 밥 타령이다. 식사 후에도 아무 생각도 없다. 소파에 누워 TV 보기 바쁘다.
아이들의 표정도 일관된다. 엄마의 음식만을 기다리는 듯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있다. 스스로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입 안으로 떠먹여 주길 기다리는 것 같다. 또 보니 엄마를 부르는 입 모양이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르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부터 찾는다. 언제든 엄마가 다 해주길 바라며 엄마를 찾는다.
어느 날 저녁, 돌아온 집은 휑하다. 엄마가 없다. 더 이상 못 버티겠는지 엄마는 집을 나갔다.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쪽지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이때 피곳 씨 옆을 보면 배경 곳곳에 돼지가 숨어있다. 이전 장면에서 피곳 씨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볼 때 벽에 비친 그림자가 돼지 모양이었는데 이번에도 돼지가 보인다. 가슴에 달린 브로치도, 열고 들어오는 문의 손잡이도 돼지 모양이다. 기분 탓인지 벽 콘센트 구멍도 돼지 콧구멍 같다. 집 안의 물건들도 다 돼지로 변했다. 벽지의 튤립이 어느새 돼지 얼굴로 바뀌었다. 돼지 화병, 돼지 벽 무늬, 돼지 그림, 벽난로의 문양까지 돼지다. 엄마가 남기고 간 “너희들은 돼지야.” 쪽지를 열어보는 아빠의 손도 돼지 손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부터 아빠와 아이들은 모두 돼지 얼굴이다. <돼지책>이란 책 제목에 걸맞게 아빠와 아이들이 돼지임을 표현하고 있다.
집 안의 모습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벽난로 위 그림 속에 누군가 없어졌다. 있었던 것 같은데, 없다. 하얗게 빈 곳에 아내이자 엄마가 있지 않았을까? 엄마가 홀연히 사라졌음을 표현한 것 같다. 글자 대신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으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인다. 책 속에 숨은 이런 장치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집은 돼지우리가 된다. 돼지가 사는 집이니 돼지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꽥꽥, 아빠는 꿀꿀댄다. 지저분해진 집과 엉망이 된 행색을 보니 엄마가 꼭 필요하다. 어떡하지? 그러다 결국 엄마는 돌아왔다. 그럼 다시 전의 삶으로 돌아갔을까? 엄마는 독박 살림에 일까지 그 짐을 혼자서 도맡았을까? 다행히 아빠와 아이들이 변했다. 설거지, 다림질, 침대 정리를 한다. 요리하는 것을 돕는다. 엄마가 돌아온 뒤 아빠 돼지와 아기 돼지는 아빠와 아이로 돌아왔다. 엄마는 차를 수리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가족 모두 행복해 보인다. 집은 정상화되었다.
왜 <돼지책>일까 궁금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알겠다. 밥 달라고 찾는 아빠와 아이가 돼지였다. 꿀꿀 돼지처럼 밥만 찾고 가정의 일을 함께할 생각은 없는 게으른 모습이었다. 엄마는 모든 짐을 짊어지고 혼자 부담해야 했다. 피곳 씨와 아이들은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 엄마의 힘듦과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다. 항상 이럴 때마다 비유의 대상이 되는 돼지에게 미안하지만 <돼지책>이라는 제목이 딱 맞다.
수업을 이렇게
엄마가 떠난 뒤 가족의 모습은 처참했다. 엉망이 된 집 모습만 봐도 알겠다. 엄마가 돌아온 뒤 아빠와 두 아들은 변했다. 집안일은 더 이상 엄마만의 일이 아니다. 집안일은 도와야 하는 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우리의 일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럼 아이들이 보는 자기 가족의 모습은 어떨까?
“이 가족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 집은 어떤가요?”
“각자 무슨 중요한 일을 하나요?”
“엄마는 왜 집을 나가 버렸나요?”
“어떻게 하면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에 아이들은 어떻게 답할까?
“내 침대 정리는 내가 해야죠!”, “집안일은 같이 해야죠.”라 답하는 아이도 있겠지만 “엄마가 다 하는 거예요. 원래 엄마가 해요.”하는 아이도 있겠지?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아이가 스스로 찾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찾기 어려워한다면? 어디 한 번 그림을 자세히 봐볼까? 넌지시 힌트만 던져줘도 아이들은 곧잘 찾곤 그 의미까지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처음부터 “집안일은 어떻게 분담해야 하나요?” 일은 나눠야 한다는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싶지 않다. 이게 정답이라는 뉘앙스를 잔뜩 풍기는 질문 같다. 직접 입에 떠먹여 주는 것처럼 이게 답이라는 듯 알려주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저절로 깨달을 수 있도록 나는 에둘러 질문을 던질 뿐이다. 깨달음은 아이들이 스스로 얻을 수 있다. 그럼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선생님이 알려준 답보다 스스로 알아낸 답이 정답일 테니.
어렸을 때부터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화목한 가정을 꾸리지 않을까?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도우며 뭐든 함께 하는 모습을 본 자녀는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보고 배운다. 훗날 어른이 되어 자기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이건 네 일, 이건 내 일’ 딱딱 구분하기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함께하는 건 어떨까? 집안일은 가족의 일이다. 가족의 일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가족의 의미도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아이들도 재밌게 읽고 쉽게 이해하며 중요한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책이었다.
책을 읽자
좋고 싫음이 명확한 아이들이니 그림 스타일이나 이야기에 따라 좋아하는 아이도 있지만 아닌 아이도 분명 있다. 어쩌면 책을 읽은 경험이 별로 없어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아직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을 위한 독서 공간을 마련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책을 가까이하며 책에 관심이 생기도록 말이다. 독서 취향에는 정답이 없으니 다양한 장르의 책을 학급 문고에 비치해두어야겠다. 눈에 아른거리다 자주 보이면 조금씩 관심이 가지 않을까? “책 꼭 읽어야 해!”보다는 자연스레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은 글쓰기가 낯설고 어렵지만,
이런 글 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