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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립토노트 Sep 28. 2022

예술 NFT 시대의 종말이 온다-(1)

PFP NFT의 종말, NFT로 돈 버는 시대는 짧고 굵게 끝났다

안녕하세요, 크립토노트입니다.


 오늘은, 예술 NFT 시대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총 2번에 걸쳐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첫 1부는 NFT 시장의 현황과 '왜 예술 NFT가 그 첫 시작이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예술 NFT의 몰락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NFT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아시는 분들이라면, Opensea(오픈씨)를 모를 수는 없겠죠. 오픈씨는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Token)을 거래하는 2차 마켓 중 가장 큰 마켓으로서, 2022년 2월 기준 전체 NFT 거래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NFT 거래소인 오픈씨


 한창 NFT 거래가 한창이던 22년 5월에 일일 거래량 4억 달러에 달하던 오픈씨는, 이제 끝없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22년 8월 28일 기준으로, 하루 거래량은 500만 달러에 불과하죠. 오픈씨 뿐만이 아닙니다. NFT 리서치 업체 <NFT NOW>는 현재 NFT의 평균 판매가가 2500달러 선으로, 21년 11월의 고점 대비 48%가량 하락했다고 밝혔고, 주간 NFT 거래 계정 수 역시 11월의 38만 건에서 19만 4000건 가량으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물론 이더리움의 가격 하락이 주된 이유인 것을 감안해도, NFT 거래량의 급격한 하락은 시장에 강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차세대 비트코인'으로 인기 몰이를 했던 NFT가 이처럼 처참하게 추락했을까요?


많은 전문가들은 NFT 가격의 하락 원인으로 <루나-테라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수많은 지정학적인 이슈로부터 발생한 가상자산 업계의 '크립토 윈터'를 지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이유가 아닌 'NFT 자체의 인기가 떨어졌다'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NFT, 그리고 블록체인은 그 자체로 엄청난 기술입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진품과 가품'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는 논쟁거리였는데요, 그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죠. 크리에이터, 소유자, 판매 가격, 관련된 모든 정보가 블록체인 상에 기록이 되어있으니깐요.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NFT 중 하나인 Bored Ape Yacht Club(BAYC)

 

NFT(블록체인)은 계약과 진품 논쟁에 있어서 마침표를 찍은 기술

 

 그런데도 NFT의 인기가 떨어졌다고요? 가장 미래지향적이고 트렌디한 기술 아니던가요?

제가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건, '예술형 NFT'의 가치가 이전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NFT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PFP NFT와 같은 종류 말이죠. 


  왜 예술형 NFT(이하 '아트 NFT') 아트 NFT의 인기가 떨어졌느냐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왜 예술이 NFT로서 처음 시도됐는지를 알야 합니다. 산업과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NFT는 활용될 수 있는데, 왜 그중에서도 예술에서 NFT가 처음 태동했는지 말이죠. 


  신기술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예술은 언제나 선구자적인 식견을 가진 부유층에 의해 먼저 접해지고, 시도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인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유럽에서 수많은 위대한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나타났듯이 말이죠. 그 당시 최고의 로열 패밀리였던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같은 위대한 예술의 후원가들은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끝없는 후원을 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도 불후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예술들이 탄생해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예술의 위대한 후원자 로렌초 데 메디치

 

 NFT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크립토 업계에는 어마어마한 부를 벌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21세기의 메디치 가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넘쳐나는 크립토 자산으로 '미술품을 Blockchain에서 재현한다'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끼리 뜻을 모았습니다. 불과 3 ~ 4년 전 처음 시도된 일입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 생겨난 NFT 중 하나가, NFT의 시조라고 불리는 <Cryptopunks>입니다. 


<CryptoPunks>, 무료 민팅이었지만....

 


 이런 소수의 선구자들에 의해, 아트는 블록체인 위의 사슬 안으로 처음 들어왔습니다. 이후 web 3.0 안에서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NFT가 등장했죠. 현실 세계의 자신이 아닌, 가상 세계의 자신의 자아를 표현하는 새로운 수단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PFP(Profile picture) NFT입니다. 


PFP NFT의 태동은 현실이 아닌, web 3.0의 자신을 보여주는 방법의 현실화

            

PFP NFT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FP(Floor Price)가 높은 NFT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BAYC와 같은 블루칩 NFT는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선수와 같은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향유되며,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브라질의 슈퍼스타인 네이마르나 세계적인 농구선수 스테판 커리 등의 인플루언서 역시 BAYC를 SNS 프로필 사진으로 쓰기 시작했죠.


스테판 커리의 트위터 사진


 이처럼,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NFT는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이 시기에 Cool Cat, Azuki, Doodles와 같은 초대형 블루칩 NFT 역시 탄생했죠. 이들은 단순히 자기들만의 커뮤니티 확장에 그치지 않고, <NFT NYC>와 같은 세계적인 행사에도 참여하여 세계적인 VC(벤처캐피털), 투자자들과 교류하고, 5400만 달러(750억 원) 이상의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죠. 웬만한 규모의 스타트업 그 이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뉴욕에서 열린 NFT NYC


75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Doodles'

 이처럼, 소수의 암호화폐 부자들의 문화에서 시작된 PFP NFT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세계관을 확장해나갔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커뮤니티 확장에 앞장섰던 NFT 프로젝트들은 성공했고, 그것에 이르지 못한 다른 NFT, 그리고 운영진들이 돈에 눈이 멀어 커뮤니티를 내팽개치는 추태를 보여주던 다른 프로젝트들은 잊히고 말았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프로젝트'의 기준이 높은 수준의 트위터 팔로워와 파트너십 수준이 되고, 어떤 크립토 유명 인사가 언급해주었냐가 점점 '좋은 NFT 프로젝트'의 기준이 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돈이 되는 NFT, 빠르게 판매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NFT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소수의 커뮤니티 문화였던 PFP NFT는 자본주의와 그 투자성이 결합되어 완전한 투자 상품으로 변모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왜 'PFP NFT'가 이전만 못하냐에 대한 정답이 여기 있습니다. 이전의 커뮤니티를 위한다는 그 이상은 온 데 간데없고, 대부분의 NFT는 이제 FP에 집착하고, 거래량에 집착하는 커뮤니티가 되었습니다. PFP NFT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확장성과 홀더들에 관심이 없는 운영진들 역시 무더기로 생겨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었죠.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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