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정서 회복 여행, 그 네 번째
중환자실에서는 3교대로 일이 돌아가고, 환자가 겪는 간호 문제들에 대한 간호 사정은 간호사들이 3교대 근무로 24시간 돌아가면서 그 문제가 해소가 되었는지 아니면 지속 중인지, 어떠한 간호 제공으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를 의논하고 고민한다. 이렇게 나만을 위한 셀프 간호 노트는 나는 24시간 동안 케어할 수 있는 작은 일기장과 펜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문제가 무엇인지, 이를 위해 어떤 방법을 적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 계획적으로 써내려 보았지만, 하면 할수록 5단계나 되는 과정이 꽤 번거로웠고, 내 현실에 맞는 조금 더 간결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어릴 적 일기장을 검사 맡던 습관 때문인지 뭔지 남한테 보여줄 것도 아닌데 마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트를 쓰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이 간호 노트가 나의 부정적인 것을 다 걷어가는 쓰레기통, 그러나 그 속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떠오르는 대로 무작정 써보기 시작했다. 특히 부정적 감정이나 상황에 한 번 꽂히면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 나중에 정말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때 이미 지쳐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극복하는데 먼저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초기의 내 간호 노트는 대부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의 울적한 마음과 화로 가득 차 있다. 초반에는 그 노트를 쓰고 다시 읽어보면서 느끼던 감정 그대로 다시 느끼기도 했지만 점점 더 이 작업을 하면 할수록 말 그대로 내 감정은 내 마음이 아닌, 일기장에 고스란히 문자로 남겨졌다. 그 부정적 오물을 더 이상 내 가슴이 아니라 일기장에 쏟아버리면 버릴수록 나의 마음은 평온해졌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으니 눈치 볼 것 없이 아무렇게나 막 적었다. 많이 화가 난 날은 욕을 적기도 하고 행복했던 날 또한 행복으로 남겨졌다.
간호 노트에 기록된 나 자신과의 내적 대화는 빠르게 내 부정적 감정을 잠재우고 나의 지난날을 추적하게 했다. 사실은 좋지 않은 일보다는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는 것, 그리고 그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주 짧은 순간들을 내가 너무 과장해서 보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걸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것. 내가 빼곡하게 채워간 간호 노트가 이를 다 보여주고 있었다. 이외에도 내가 어느 부분에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나 같은 경우는 아이가 아플 때), 이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어떤 액션을 취할지 대비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 내가 더 즐거운지, 난 뭘 더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간호 노트를 통해 찾고, 외부의 환경에 상관없이 나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기록이 때론 문제에서 종종 기회를 찾아내는 영감이 되기도 하는데 나 또한 그런 순간이 왔다. 바로 아이 아픈 상황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로 신뢰할만한 빠른 간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내가 간호사인걸 알고, 주변에서 아이가 아플 때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 짧게 상황별로 정리해둔 메모들이 많았는데, 아이가 아플 때 속상함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아이에게 하고 있는 간호들을 정리해서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른 엄마들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들었던 속상함은 다른 엄마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통해 1/100로 확 줄었다. 그리고 아이가 아플 때면 여전히 아주 잠깐 속상하긴 했지만 아이 케어에 보다 더 집중하게 되고, 이번엔 이 내용들을 다른 이들을 위해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돌이키자 오히려 이 상황과 활동들은 내 삶의 활력이 되었다.
나는 이 간호 노트의 도움으로 깊은 무의식부터 치유받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간호 노트 작성은 아이와 함께 하는 긍정 확언 명상과 몸놀이를 같이 병행하고 있었고, 많은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과 감사함이 더해졌고, 중요한 건 더 이상 상담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어 놓지 못하고 있던 상담 또한 종료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간호사로서 아이가 아플 때 간호 정보를 공유해야 하니 스스로 배우고 더 발전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고, 나눔과 공유하는 활동이 다른 사람들과 더욱 의미 있게 상호작용은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러한 긍정적 상호작용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브런치 작가가 되기도 하고, 이렇게 작게 쌓아나간 행동들이 스스로를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모든 치유의 과정이 무작정 쓰기 시작한 간호 노트로부터 시작했다니 정말 놀라웠다. 일기장과 펜 하나만 있으면 일단 시작할 수 있으니 다른 심리상담처럼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었고, 공간의 제약 또한 없으니 집에서도 얼마든지 셀프케어가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