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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키 Oct 18. 2022

조건부 행복에서 잠시 길을 잃다

싱글맘의 정서 회복 여행 중, 잠시 길을 잃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은 정말 꾸준하게 2주에 한 번 프리스쿨에서 감기를 달고 왔다. 큰 병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었고, 또 아이가 프리스쿨에 간 이후로는 아플 때마다 오는 베이비시터를 구해서 일주일 내내 회사에 출근을 못하는 일까지는 없었지만, 여전히 아이가 아플 때는 밤에 열 보초를 서느라 잠도 부족했고 설상가상 나도 감기에 옮아 한 달에 한 번씩은 아팠다. 거친 파도같이 넘실대던 불안정하던 나의 심리 상태는 명상과 몸놀이를 하면서 나아지고 있는 듯했지만 아이가 아픈 일 외에 별일 없는 2주는 마음이 평화롭고, 아이가 아픈 2주는 여전히 날카로운 조건부 평화로움이었다.


그래. 조금만 참아보자. 하고 와줄 수 있는 베이비시터가 있음에 감사했지만, 2주마다 통장에서 술술 빠져나가는 베이비시터 비용을 보니 속이 쓰린 것도 사실이었고, 아이 아플 때마다 같이 아프면서 내 몸도 아픈데 아픈 아이까지 돌보아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오죽하면 why is my preschooler sick frequently? (왜 프리스쿨 다니는 내 아이는 자주 아플까?)라는 질문을 구글에 검색해봤을까.


그래도 긍정 확언 명상과 몸놀이로 부정적 감정에 빠져있던 시간은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는데, 이렇게 긍정 에너지를 밀물처럼 찰박하게 채워 놓고 나면 유독 아이가 아플 때마다, 마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썰물이 발생하듯, 인생이란 놈이 찰박하던 긍정 에너지를 몽땅 다 쓸어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너에게 있는 긍정이란 긍정 에너지는 내가 모조리다 끌어당겨 없애버리겠다는 듯, 인생 너한테 안 뺏길 거야 하고 발버둥 친 후 남은 건 꾸덕꾸덕한 뻘만이 남았있었다. 왜 괜찮아지려고만 하면 아이를 아프게 해서 세상은 나를 시험하는 걸까? 어떤 때에는 세상을 탓하기도 했다. 이제 나 자신조차도 반복되는 이 패턴에 지겨울 지경이었다.




그날도 아이가 걸려온 감기에 옮아서 둘 다 아프느라 내 에너지가 방전된 밤이었다. 자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이겨내고 영화를 틀었다.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나 스스로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거의 2년 가까이 영화 자체를 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조니 뎁과 그의 연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날은 그저 건조해진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줄 그의 살짝 맛이 간 유머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The problem is not the problem. The problem is your attitude about the problem. Do you understand?" - Jack Sparrow


"문제는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그 문제에 대한 너의 태도지. 이해하겠어?"-잭 스패로우


화면 속 그는 마치 나에게 이해했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분명 예전에 봤던 영화인데 지금의 내 상황과 오버랩되며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대사를 듣고 나자 내 인생에서 썰물이란 묘기를 부려 꾸덕한 뻘 바닥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내가 탓하던 인생이란 놈이 아니었다. 괜찮다 하다가도 힘들다고 순간적으로 징징대는 내 태도가 부리는 망상이었으며, 긍정 에너지의 밀물은 내가 채워놓기로 스스로 결정만 한다면, 달이든 태양이든 어떤 고된 상황이 오든 지간에 바닥을 드러내는 썰물은 오지 않을 일이었다. 단순한 사실이지만 어렵다. 깨달음의 순간은 여러 번 날 찾아왔으니 이제는 정말 변화할 때였다.


이제부터 긍정적으로 살겠다고 해서 쨔쨘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의식 중에 나는 내 인생에 어떤 극적인 변화가 생겨 상황이 좋게 역전될 거라는 큰 착각도 하고 있었다. 싱글맘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나 당시 하고 있던 긍정 확언 명상, 아이와 하는 몸놀이가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들일 뿐, 그보다 더 먼저 삶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태도를 본질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아이와 내가 건강하고, 별일이 없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는 조건부 행복을 살아가는 것이 계속 반복될 터였다. 어렸을 적부터 어려움을 겪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현명하게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극복하기가 어려울까? 왜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제자리일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당연히 소싯적 내가 겪은 어려움과 싱글맘으로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어려움은 비교가 어려울 만큼 그 강도나 문제의 지속 면에서 스케일이 달랐다.  


긍정의 에너지가 지속되려면 긍정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서서히 지속적으로 타오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라도 땔감과 함께 산소를 계속 불어넣어 줘야만 한다. 아이가 아프든 아프지 않든 어떤 상황에서도 후~ 후~ 숨을 고르게 쉬면서 긍정 에너지가 내 몸의 원천이 되도록 불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게 말이다.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살려면 계속해서 의도적인 훈련이 먼저 필요했다. 미친 듯이 독서를 하며 그 훈련도 하고 있었지만 계획적이기보단 내가 내킬 때마다 하고 있었고,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때 떠오른 것이 간호사들이 환자를 케어할 때 쓰는 간호 과정이었다. 이는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문제를 파악하고 치료하는 전문적인 도구인데 대략적인 단계는 아래와 같았다.


1. 간호 사정 - 환자들이 겪고 있는 질병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자료를 얻어 분석

2. 간호 진단 - 사정을 통해 환자가 가진 문제가 뭔지 정확하게 이해해서 문제를 정의

3. 간호 계획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중재를 해줄 것인지 계획을 세움

4. 간호 수행 - 목표와 기대에 맞는 간호 행위 적용

5. 간호 평가 -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평가


이러한 전문적인 환자 간호를 위한 툴인 간호 과정을, 나 자신이 나의 간호사가 되어 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활용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늘 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써왔던 간호 과정을 나 자신을 치유하는데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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