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적이 있었다. 객관식 시험을 봤는데 우연하게도 내가 찍은 번호가 다 맞는다는 그런 상상 말이다. 시험공부를 제대로 안 하고 간 학창 시절, 나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하느님께 내게 행운을 달라며 기도를 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런 행운운 내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인도 영화가 무척 인상 깊었다.
인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문제아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삶을 살던 자말이 TV에서 방영되는 퀴즈쇼에 나가서 문제를 하나씩 맞혀가는데 모든 문제들이 신기하게도 자신의 삶과 연결되어 있어 맞출 수밖에 없는 그런 내용이다.
이런 게 바로 운이 좋은 것일까?
내가 경험한 내용이 우연하게도 퀴크쇼에 나오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는 유튜브에서 김작가 TV를 종종 본다.
구독자수 2024년 6월 기준으로 216만 명이다. 그를 보면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채널은 유명한 사람들을 패널로 초대해서 인터뷰를 하는 형식인데 내가 봤을 때 그는 인물이 뛰어나지도, 유명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말이 유창한 거 같지도 않았다. 순전히 패널 덕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구독자 수는 어쩜 이렇게 쑥쑥 잘 늘어나는지 한편으로는 무척 신기하기도 했다.
"뭐야. 유명한 사람 초대해서 인터뷰하는 거라면 나도 하겠다"라는 생각도 솔직히 고백하면 했었다.
그냥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적절한 시기에 남보다 빨리 유튜브를 시작한 거? 시대를 잘 만난 것? 딱 그 정도?
하지만 김작가가 출간한 <럭키>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를 보는 관점도 바뀌게 되었다.
그는 현재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 스물세 명의 탑 크리에이터를 만났다.
2019년 당시 그들의 구독자 수를 다 합치면 1100만 명이 넘었고, 누적 조회수를 더하면 30억 회 이상이었다. 그는 그들을 만나 기획, 촬영, 편집에 관해 궁금한 모든 것을 물었고, 그 대답은 피와 살이 되어 돌아왔다.
또한 사람들에게 삶의 변화를 돕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기 위해 자기 계발, 경제경영, 소설 등 각 분야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작가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취업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 대기업, 중견기업, 외국계 기업 등 총 100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인터뷰에 <인사담당자 100명의 비밀녹취>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몰입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금메달리스트 중 서른세 명을 심층 인터뷰해 <최후의 몰입>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공부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 1993년부터 2018년까지 역대 수능 만점자 중 서른 명을 인터뷰해 <1등은 당신처럼 공부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유튜브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 대한민국 탑 크리에이터 스물세 명을 인터뷰해 <유투브 젊은 부자들>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렇게 그는 엄청나게 많은 성공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인터뷰를 통해 책을 출간했고, 그 후에는 영상을 만드는 인터뷰에 있어 가장 전문적인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나의 운이 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지금의 나 역시 여러 선택들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다.
아쉬웠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바로 내가 놓친 '운'이다.
나는 왜 그 '운'을 놓쳐버렸을까?
아마도 내가 부족했을 것이다. 준비가 덜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바뀌어야 한다.
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던가?
최근 내 목표는 내 두 아이가 되어버렸고, 자꾸 아이들을 다그친다.
너희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엄마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이 엄마를 잘 따라오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만 잘 따라온다면 아이들은 자신이 꿈꾸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까?
나는 엄청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도, 엄청난 성공의 경험을 갖고 있지도 않은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일 뿐이다. 아이들은 이제 몇 년만 더 지나면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의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나도 이 책의 김도윤 작가처럼 스스로 공부머리는 아니라고 판단했고, 공부가 아닌 다른 걸로 승부를 봐야 할 거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 잘하는 것도 하나의 실력이다.
시험 때만 바짝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 꼭 있었다.
왜 사람들은 운동체질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서 공부는 누구나 다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시장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면서 이 책의 저차처럼 성공을 꿈꿨고, 성공 경험이 들어있는 자기 계발서도 참 많이 읽었던 거 같다.
<럭기>의 김도윤 작가와 나와의 같은 점은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빨리 했으며, 일반적인 취업이 아닌 차별화된 진로를 정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대학졸업 후 <오디션 스타>라는 잡지를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잡지를 발행하다 보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당시에는 SM, JYP, YG 3강 구도로 연예 매니지먼트 기획사가 있었고 이들의 오디션 정보라던지 가수들 인터뷰 및 화보 등이 실리면 좋을 거 같았다. 그리고 일본에는 오디션 잡지가 이미 창간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무조건 될 거라는 생각만 들었는지, 주변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었다. 분명 내게 오디션 잡지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약 내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잡지를 발행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이 잡지는 내가 편집장으로 시장에 내놓았던 그 <오디션 스타>라는 잡지다.
2007년 발행된 <오디션스타>
이때가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아마 내가 최연소 편집장이 아니었을까?
나는 왜 그렇게 빨리 포기해 버렸을까?
아마 확실하지 않은 일에 노력하는 게 불안했고, 초조하지 않았을까?
내 자신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어진 게 아닐까?
어쨌든 난 이후에 두세 군데 정도 다른 분야로 취업을 했었지만 마지막 직업은 출판 편집자였던 걸 보면 내 스물여덟 도전기를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을 거 같다. 당시 편집자 경쟁률이 치열했었다. 논술시험과 면접에서 큰 점수를 얻었는데 신기하게도 전날 논술을 준비한 부분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결국 나는 합격했으며, 운도 준비된 자에게 오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결국 운이 좋냐, 안 좋냐는 마지막 결과에 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오디션스타> 발행은 내게 '행운'이다.
결국 운을 만나기 위해서는 운이 나를 찾아오게 해야 하며, 사과나무, 포도나무를 원한다면 우선 밭에 씨를 뿌리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씨를 뿌려야 하늘에서 비도 내려주고, 바람도 불게 해주어 맛있는 사과와 포도 열매를 맺히게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