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ll Trust(신뢰쌓기)

로버트의 이야기 (Robert's Story)

by 자주

“로버트는 내가 25년 동안 만났던 아이들 중 힘들게 했던 탑 3명 안에 들어가요."


한국의 교육청과 같은 관할 사무실(District office)에서 나를 지원하기 위해 나온 내 상사(Supervisor)의 한마디에 위로를 얻었다.


처음 부임한 초등학교에서 8년을 일하고 학년 말을 마무리하던 어느 날이었다. 운전을 하고 퇴근을 하던 중에 문득 '초심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 감사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자꾸만 나태해지는 내 모습에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은 점점 깊어져 갔고 급기야 다른 학교에 자리가 있는지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미국 공립학교 교사는 한국처럼 교사들이 3~5년을 주기로 근무지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원하면 한 학교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 근무할 수 있다. 그 무렵 사람들의 평판이 좋았던 학교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신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발적 전근(Voluntary transfer)을 신청했고 교장선생님과의 면담을 거쳐 감사하게도 내가 여러 명의 지원자들 가운데 발탁되는 영광을 얻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몰랐다. 교사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지.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학교로 부푼 가슴을 안고 출근하던 날. 금세 내 결정을 후회했다.


로버트라는 만 7살 남자아이는 첫날부터 범상치 않았다. 학교 버스에서 내려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휙 던졌다. 가방을 집어서 사물함에 정리하라고 하니 막 소리를 지르며 침을 뱉었다. 첫날부터 침 세례라니... 처음 본 아이의 행동에 몹시 당황했다.

'내가 지금 본 것은 꿈일 거야!'


알고 보니 로버트도 위탁보호 가정(Foster care)이 바뀌면서 이 학교로 전학 온 학생이었다. 개별화교육계획(IEP)이 있는 두꺼운 서류를 살펴보니 정서장애(Emotional disturbance)를 가지고 있었다. 이사 오기 전 학교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관심대상자 1호'였다는 소문을 나중에 들었다. 전근하기 전 인터뷰 시간에 교장선생님한테 아이들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대부분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말 잘 듣는 얌전한 아이들이라고 한 말들이 생각났다.

'교장선생님도 이 아이에 대해 몰랐으니 말을 안 하셨겠지.'

납득하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왠지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억울한 마음에 눈물까지 날 정도였다.



‘오늘이 겨우 첫날인데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출근 첫날부터 옛 학교, 옛 동료들이 그리웠다.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무슨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이런 생고생을 사서 하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더니... 하루도 못 버티겠다.'

이런 선택을 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먼저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을 노트에 적었다.

'먼저 교실의 규칙을 잘 정하자!'


학기 시작하고 한 두 달은 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교실의 규칙과 일과가 잘 정해져야 아이들과 큰 문제없이 일 년을 잘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교사의 권위를 잘 세우지 못하면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기 때문에 일 년이 고달프게 된다.


규칙을 정하고 교실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포스터로 만들어 아이들 눈높이에 전시했다. 행동차트(Behavior chart)를 만들어서 아이들이 긍정적인 행동을 보일 때마다 즉각적인 보상을 줬다. 잘한 행동에 대해서는 칭찬해주고 다른 학생들을 때리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보일 때는 이에 상응하는 벌(Consequences)도 주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도 가르쳤다. 이 교육은 글자나 수를 배우는 만큼이나 중요한 레슨이다. 먼저 기본적인 감정인 행복, 슬픔, 두려움과 분노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쁜 감정에 대한 상황 이야기(Social story)도 들려주어서 아이들이 감정에 대해 인식하고 어떻게 다스리는지 방법을 제시했다.


편히 쉬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안전한 공간(Safe place)도 교실 구석에 만들었다. 마음이 상했을 때 언제든지 가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있을 수 있도록 했다. '상한 감정 괴물(Hurt Feeling Monster)'은 상한 마음 카드를 먹고사는 인형인데, '상한 마음 저리 가(Hurt feeling go away)'의 카드를 삼키는 동시에 이것을 먹이는 아이는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를 낸다.


IMG_9798.JPG 상한 감정 없애주는 괴물(Hurt Feeling Monster)


학급 전체의 긍정적 행동 시스템이 자리 잡혀 가는 것 같았다. 로버트의 상태를 잘 이해하기 위해 그 전 학교에서 실행 했던 개별화교육계획(IEP)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학교 첫날부터의 모든 행동을 관찰노트에 적어 나가며 자료수집에 집중했다. 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힘든 아이였지만, 더디게나마 새 환경에 적응해 가는 것처럼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교실의 규칙과 일과에 적응해갔다. 그러나 방심해서였을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 터졌다.



낱개의 글자를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만드는 수업을 했다. 먼저 가위로 글자를 오리고 풀로 한 글자씩 붙여 이름을 완성하는 활동이었다. 안전을 위해 끝이 뭉툭한 가위를 썼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조교사의 소리였다. 로버트가 보조교사를 일부러 맞추려고 겨냥해서 가위를 던진 것이다. 다행히도 보조교사는 재빨리 몸을 피해서 큰 사고는 면했지만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즉시 위탁보호를 맡고 있었던 양부모와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특수교육 팀은 즉시 임시회의를 열어 상황을 파악했고 곧 정식 미팅을 열기로 했다. 회의 참석자 모두에게 연락을 해서 공식 회의 (IEP meeting) 날짜도 잡았다. 미팅의 안건은 로버트의 문제행동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회의를 통해 이번 가정이 로버트의 6번째 위탁보호 가정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로버트의 문제 행동은 이미 전 학교에서도 골칫거리였으며, 양부모도 이런 행동 때문에 힘들어했다. 7살의 인생에서 6번의 가정 변화. 보호받아야 할 울타리가 없었으니 문제 행동을 보인 것은 생존하기 위한 그의 울부짖음이었으리라.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문제행동의 원인은 '관심 끌기'였다. 로버트의 부족한 사랑과 관심을 채워주기 위해 학교가극적으로 나섰다. 먼저 전폭적인 관심을 주기 위해 그 아이와 모든 일과를 함께 하는 전임교사를 고용했다. 로버트가 작은 성취감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작은 일거리를 주었다. 아침과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밥을 먹고 나면, 로버트는 전담교사와 식당에 가서 테이블을 닦는 일이었다. 물론 학교 식당이 크기 때문에 전체를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작은 구역을 맡겼다. 식당 테이블을 닦고 나면 로버트에게 폭풍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교장선생님도 매일 식당에 가서 로버트를 격려하셨다. 임무를 마치고 교실에 돌아오면 로버트에게 보상이 주어졌다.


칭찬은 로버트를 춤추게 했다. 아이는 조금씩 변해갔다. 중간에 위기의 시간이 간혹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을 쏟아부었다. 사람을 믿지 못했던 로버트는 나를 잘 따르기 시작했고, 내가 하는 말에 잘 귀 기울였다. 교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집어던지거나 하는 문제행동도 점차 줄어들었다. 화가 나면 "나 화났어요(I am mad)."하고 안전한 공간에 가서 감정을 가라앉히고 안정이 되면 다시 활동에 참여할 정도로 좋아졌다. 스스로 감정조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년이 지난 후에 보니 결과는 대성공적이었다. 팀 전체의 노력으로 한 생명이 사람들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한 편의 감동 드라마가 써진 것이다.


나와 일 년을 보내고 로버트는 상급반으로 진급했다. 바로 옆반에 있었기 때문에 그 후로도 그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날로 갈수록 로버트는 전혀 다른 아이의 모습으로 성장해갔다. 1년 전에 봤던 아이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로버트와의 만남은 지금 생각해보니 필연이었다. 내가 꼭 만났어야 했던 아이, 나를 꼭 만났어야 했던 아이이다. 암담했던 마음이 나중에 '감사'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했다. 후회가 아니라 감사하다.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큰 배움을 준 고마운 아이이다. 지금 로버트는 의젓한 성인으로 자랐을까? 로버트의 매력 포인트인 눈웃음이 그리운 날이다.


특수교육 개론 101

sticker sticker

기능적 행동 분석(FBA: Functional Behavioral Assessment): 문제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평가이다. 대부분 관심끌기(Attention), 회피(Escape), 구체적인 것 얻기(Tangible), 감각적 욕구(Sensory)인 4가지의 범주 안에서 문제행동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행동중재계획(BIP: Behavior Intervention Plan)이 작성된다.


keyword
이전 08화Note Interests(관심갖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