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 2023년 8월 30일 part 2
2023년 8월 30일 수요일
오늘의 일기 part 2 - Day 2 그림기록 (2)
National Gallary of Victoria(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마켓레인 커피를 나와 코벤트리 서점을 갈 때만 해도 빗방울이 날렸는데, 서점에서 나오니 어느덧 파란 하늘이 나를 반겼다. 다음 행선지로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을 잠시 들르기로 한다. 이번 트램 정류장은 마치 우리나라의 중앙 버스정류장을 연상케 했다. 도로 중간에서 내려 짧게 길을 건너니 거대한 규모의 미술관이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입구의 유리벽면에는 끊임없이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고 in과 out 출입구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out 쪽으로 들어가려다가 이를 깨닫고 아! 하며 발을 돌리니 문 앞의 경비원 분이 제지하려다 나의 모습을 보고 살짝 웃었다. 제가 일부러 그러려던 게 아닙니다!
내부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짐 맡기는 곳에 줄을 서 있었다. 마켓레인 커피에서 매우 큰 에코백을 샀지만 사실 안에 내용물은 별거 없었기 때문에 그곳을 지나쳐서 우선 2층으로 올라갔는데, 2층 입구를 지키던 직원 분이 내 가방을 보고 다시 짐을 맡기라고 안내해 주셨다. 안내에 따라 다시 1층에 짐을 맡기고 빈손으로 올라오니 통과.(가방이 있다면 무조건 짐부터 맡깁시다!) 마침 미술관에서는 인터내셔널 컬렉션뿐만 아니라 아시아 컬렉션도 전시하고 있었다.
혹시나 우리나라 전시품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시아 컬렉션을 살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의복과 그림도 존재감을 뽐내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왠지 뿌듯한 느낌. 우리나라 전시품을 지나 다른 나라의 전시품들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중에 내 눈에 띄었던 것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걸크러시 포스를 강력하게 풍기는 중국의 전시품이었다. 한 손은 구부린 무릎 위에 올리고 눈을 살짝 내리깐 모습에 나도 모르게 '형님' 하고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중국 전시품 중에 기억에 남는 다른 하나는 바로 사진작품이었다. 중국 예술가이자 교수라고 하는 치우즈지에(Qiu Zhijie)의 Post Revolution 사진 두 점이었다. 문화혁명 시대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두 포즈의 사진은 혁명시대의 아픔이나 영웅적인 이미지 대신 조금은 과장되고 즐기는 듯한 느낌을 보여주며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앤디워홀의 전시를 지나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장면은 유럽의 그림들이 모여있는 전시장에서였다. 사방이 멋진 그림으로 가득 차 있던 전시관 중앙에 학교에서 온 듯한 학생 무리가 앉아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집중을 하는 학생도, 관심 없어 보이던 학생도 있었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이런 교외학습이 거의, 아니 완전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없었기 때문에 이런 수업모습이 너무나 긍정적으로 보였다.
학생들을 지나 멋지고 클래식한 목조 화장대를 보며 농담으로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예비신랑에게 '나 이런 화장대면 좋겠어!'라고 메시지나 보낼까 생각도 해보며(결국 까먹고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 전시관을 빠져나왔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1층에는 아주 넓은 휴게공간이 보였는데 휴게 공간 중간중간에는 편해 보이는 소파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 중간에 두 명의 귀여운 아이들이 소파 밑에 본인들 집처럼 드러누워 있었고 그 모습을 엄마로 보이는 분이 사랑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중간에 내가 전시관들 사이에서 살짝 헤맬 때 먼저 어디를 찾냐고 물어봐 주었던 친절한 미술관 직원 분을 비롯하여 이렇게 사랑스러운 멜버른의 모습을 통해 오늘도 나는 멜버른이라는 도시의 여유와 친절함을 듬뿍 느꼈다.
Kambodia's Kitchien(캄보디아스 키친)
미술관에서 생각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시내로 돌아오니 어느새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8월 말~9월 초의 멜버른의 날씨로 인해 내 뇌는 매일매일 뜨끈한 음식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 전날 검색한 몇 군데의 식당들 중 시내 중심가에 있는 캄보디아스 키친이라는 곳을 점심 식사 장소로 정했다. 오후 2시가 살짝 넘은 시간. 점심시간이라고 하기엔 약간 늦은 날씨라 식당은 크게 붐비지 않았다. 무엇을 먹을까 살짝 고민하다가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Wonton Soup으로 결정! 우리나라로 치면 만둣국 정도이려나. 처음 접하는 캄보디아 음식이었지만 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더구나 식당 내에서는 K-POP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열심히 식사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어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뭐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하고 귀를 기울여보니 아이브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K-POP의 행렬. 인테리어는 캄보디아 그 자체인데 BGM은 한국어라니. 조금은 오묘한 콜라보에 살짝 웃음이 났다. 그 이후에 갔던 다른 식당에서도 한국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요새 K-POP이 정말 인기이구나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야라 강가 &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주변
멜버른은 트램이 잘 되어 있지만 그와 동시에 관광지들이 멀지 않게 붙어있어서 도보여행을 하기 딱 좋은 여행지이다. 더군다나 길이 잘 되어 있어 길치인 나도 한두 번만 왔다 갔다 해보면 어렵지 않게 행선지를 찾을 수 있는 도시였다. 야라 강가에는 플린더스 스트리트역과 세인트폴 대성당, 그리고 드라마에 나와 유명해진 호시어레인까지 유명한 관광지 여러 곳이 함께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미술관에서 시내로 올 때 탔던 트램이 야라 강가를 지나와서 '아, 트램을 타고 다시 가면 되겠구나'하고 처음에 생각했지만,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소화도 시킬 겸 야라 강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플린더스 스트리트역은 약 170년 전에 건설된 역으로 멜버른 하면 떠오르는 굉장히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사실 호주 멜버른을 간다고 했을 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는 바로 호주의 유럽이라는 비유였다. 이러한 비유가 만들어진 데에는 플린더스 스트리트역과 세인트폴 성당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플린더스 스트리트역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보이는 세인트폴 성당은 고딕양식의 대성당으로 완공 당시에는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관광객인 나는 플린더스 스트리트역에서 길을 건너 세인트폴 성당과 건널목 사이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곳이 역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서 한 여자 관광객 분이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는지 여쭤보셨다. '사진은 한국인이지!'라는 말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나는 가로 세로 줌 인, 줌 아웃 등 매우 다양한 각도로 최선을 다해 많은 사진을 찍어드렸고, 그분 역시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시며 훈훈한 '글로벌 품앗이'의 장면을 연출했다.
사진을 찍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중국에서 오신 분이었고 갤럭시인 내 폰을 보시더니 한국인이냐고 여쭤보셨다. 그렇다고 하니 본인 친구들 중에도 한국인이 있다고 하시며 친근함을 표시하셨다. '이렇게 한국인임이 드러났는데 내가 찍어드린 사진이 마음에 드셔야 할 텐데...' 여행지에서 사진 부탁을 받았을 때 잘 찍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드는 것은 나뿐인 것인가?! 다행히 사진에 만족감을 표한 그분은 오히려 그분이 찍어준 내 사진이 마음에 안 들까 봐 마음에 안 들면 더 찍어주시겠다고 친절히 말해 주었다. 아닙니다, 덕분에 저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