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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24. 2024

마라톤의 과학, <1947 보스톤>(2023)

영화 속 과학 이야기

10월은 마라톤의 계절이다. 전국마라톤협회에 따르면 10월에 열리는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는 60여 개가 넘는다. 11월에도 지역 대회 등 수십 개의 마라톤 대회가 예정돼 있다. 우리나라의 3대 마라톤 대회는 서울마라톤(동아마라톤, 3월), 춘천마라톤(10월) 그리고 JTBC서울마라톤 대회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마라톤 대회는 9월 말 10월 초에 열린다.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 대회인 월드 마라톤 메이저스(World Marathon Majors) 중에서 베를린(2024.9.29), 시카고(2024.10.13), 뉴욕(2024.11.3) 마라톤은 가을에 열린다. 반면 도쿄, 보스톤, 런던마라톤은 봄에 열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콘텐츠지오


<1947 보스톤, Road to Boston>(2023)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우승한 서윤복 선수(임시완 분)와 손기정 감독(하정우 분), 남승룡 코치(배성우 분)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다.


“나라가 독립을 했으면 당연히 우리 기록도 독립이 되어야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은 비록 우승은 하였지만 가슴에 달린 일장기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일본가요가 울리던 시상대에서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 우승 기사를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게 '일장기 말소사건'이다. 일본선수를 제치고 남승룡과 함께 올림픽에 참가하여 각각 1등, 3등을 던 그들은 하루아침에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민족의식 강화를 우려한 일제의 탄압으로 더 이상 떳떳하게 달릴 수 없게 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콘텐츠지오


광복 이후 1947년 서울, 제2의 손기정으로 촉망받는 ‘서윤복(임시완 분)’에게 ‘손기정(하정우 분)’이 나타나고 밑도 끝도 없이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나가자는 제안을 한다. 기록상 일본에 귀속된 베를린 올림픽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고 달려 보자는 것이고 아직 미군정 상황이던 우리나라의 올림픽 참가에 계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영화 초반부는 서윤복을 중심으로 한 한국 마라톤 선수들의 훈련과정을 담는 한편, 당시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참가비가 없어 고심하던 선수단이 우여곡절 끝에 참가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이 과정들에서 실재 상황과는 많이 다른 내용들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영화적인 재미를 위한 장치를 뛰어넘어 사실을 왜곡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어 영화의 의미를 많이 손상시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콘텐츠지오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한 것이기 때문에 결론이 뻔하고, 마라톤 영화의 특성상 뛰는 장면이 많을 수밖에 없어 영화를 만드는데 애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영화 뒤에 나오는 배우들의 몸만들기나 국뽕이라는 이미지 등을 극복하여 오래 기억되는 영화가 될 수 있을지는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양정고-고려대를 거친 서윤복은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숭문고 육상감독, 올림픽 및 아시안 게임의 남자 육상부 감독등 맡기도 한 그는 2017년 6월 27일 별세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육상선수로는 손기정에 이어 두 번째 사례이다. 마침 2024년 10월 12일 마포구는 이대역과 대흥역을 잇는 1.2km 거리의 길을 서윤복길로 명명하고 명판제막식을 갖었다.


1947년 4월 19일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 순간, 출처: 대한육상연맹 한국육상경기 100년사


영화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담아 사시외곡의 끝판왕이었다는 비평을 듣고 있다. 영화와는 다르게 당시 미군정은 적극적으로 참가를 도와서 하지 중장, 미군정청 직원,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이사장 등이 보증금을 구해 줬다. 그리고 유니폼에도 미군정표시와 함께 태극기가 달려 있었다(위 사진 참조). 영화 상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보스턴에서 교포에 의해 만찬사기를 당해 귀국경비를 날렸고 화물선을 타고 18일 만에 귀국했다.


마라톤의 승패를 좌우하는 3대 체력 특성


마라톤 기록은 42.195km라는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 자신과 다양한 외부 여건의 한계를 넘어서 이룬 결과가 집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마라톤의 경기력은 최대산소섭취량(VO2 max)과 무산소성 역치 수준(Anaerobic Threshold), 러닝 효율성(Running Economy) 3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불굴의 정신력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겠지만, 과학적으로 측정하거나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는 제외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콘텐츠지오


최대산소섭취량은 운동 중 섭취할 수 있는 산소의 최댓값이다. 운동 지구력을 좌우하며 마라톤 기록과 높은 상관계수를 보인다. 우수한 마라토너는 70~80ml/kg/min 수준인데, 2001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이봉주는 78.6ml/kg/min였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에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선사한 황영조는 84.5ml/kg/min에 달했다.


무산소성 역치는 근육의 피로물질인 젖산이 혈액에 축적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최대 운동수행 과정 중 어느 수준에서 피로가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일정한 운동강도의 지속능력, 즉 페이스 조절이 결정되기 때문에 최대산소섭취량에 비해 더 중요한 지표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의 무산소성 역치 수준은 78~82% 정도인데, 황영조는 79.6%, 이봉주는 82.8%를 나타낸 바 있다.


러닝 효율성은 마라톤 선수의 근육 구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장시간 운동해야 하는 마라톤 선수의 근육은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속근보다 장시간 지구력에 강한 지근이 더 적합하다. 속근과 지근의 구성비율은 유전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라톤 선수는 지근의 구성 비율이 8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다. 반면 단거리 선수는 속근이 더 중요해서 100m 육상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는 속근 구성 비율이 75%에 달한다.


뉴욕마라톤,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artineric from Lille, France


오래 달리는 인간의 특성


육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는 1초에 무려 30m의 속도로 달린다. 세계 최고의 단거리 인간 선수인 우사인 볼트의 100m 기록이 9초 58(2009년)이니 초당 10m를 뛰는 정도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먼 거리를 오래 달리는 것은 인간이 최고 수준이다. 인간이 오래 달리는 이유는 땀을 흘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원인 중 하나이다. 땀샘이 없는 동물들은 오래 뛰다가 죽을 수도 있다.


그 밖에 인간의 놀라운 장거리 주행능력은 인체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2004년 ‘네이처’ 지에 실린 바 있다.


미국 유타대 생역학 전문가인 데니스 브램블 교수와 하버드대 다니엘 리버만 교수는 인간과 동물을 대상으로 발로 돌리는 바퀴를 밀게 하고 이때 다양한 근육과 인대의 활동을 측정했다. 그 결과 인체에서 장시간의 운동에 적합한 특징을 추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장류 가운데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목덜미인대는 두개골 아래 부분과 목을 연결하고 있는데, 이는 새처럼 달릴 때 머리가 앞뒤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아킬레스건을 포함해 다리의 힘줄 배치를 연구해 보면 스프링 역할을 해 매번 발을 뻗을 때마다 에너지의 절반을 비축해 다음번에 방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인간의 통통한 엉덩이 모양을 만들어주는 큰볼기근은 걸을 때는 가만히 있지만 달릴 때는 수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장거리 주행 능력은 현생 인류가 속하는 호모(Homo) 속(屬)이 등장한 약 200만 년 전에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이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구분되는 면”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왜 장거리 주자가 됐을까. 리버만 교수는 “우리 조상은 청소동물로 맹수가 먹다 남긴 고기를 먹기 위해 하이에나와 경쟁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평선 멀리 독수리 무리가 보이면 그리로 달려가 찌꺼기를 챙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완력이나 폭발적인 주행능력이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셈이다.



마라톤의 장점과 주의점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인 마라톤은 심폐지구력과 전신 근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 에너지 소모량이 많아, 체중 감량에도 도움이 된다. 보통 1시간 동안 달리면 최소 500 ~ 1000kcal가 소모된다.  달리기를 하면 일반 진통제의 40~200배 효과가 나는 베타엔도르핀(beta endorphin)이라는 물질의 농도가 올라가는데 이를 통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물론 운동에 중독되는 이유도 베타엔도르핀 때문이다). 물론 산책만 해도 늘어난다. 따라서 우울증 치료에도 좋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변비도 없어지고, 체력이 향상되고 당연히 폐활량도 늘어난다. 무엇보다도 돈이 안 든다.


반원상연골판, 출처: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그러나 무리하게 도전할 경우 부작용도 있다. 장시간 뛰며 무릎에 강한 충격을 줄 수 있고 심한 경우 '반월상연골판파열'을 유발할 수 있다. 반월상연골판은 무릎 관절 사이에 존재하는 반달 모양의 구조물로, 심한 충격이 가해질 경우 해당 부위가 파열될 수 있다. 그리고 심장이나 혈관 계통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장시간 달리는 것을 좋지 않다. 너무 더운 날씨에 뛰는 것도 금물이다. 마라톤을 뛰기 전 병원에서 개인별 검진을 받아, 본인에게 알맞은 마라톤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초보자가 섣불리 마라톤 하프코스나 풀코스에 도전하면 큰코다친다. 마라톤 초보자가 하프나 풀코스 완주를 하려면 최소한 6개월 이상 체력을 키워야 한다. 마라톤 대회에는 5km, 10km, 하프(21.0975km), 풀(42.195km) 코스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초보자의 경우 단계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이 하는 운동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운동이 마라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42.195km를 완주했을 때 느끼는 희열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중독성이 높은 운동이 달리기이고 마라톤이다.  전문가들은 운동은 중독성이 높아서 가벼운 운동이라도 규칙적으로 2~3개월 계속하면 100% 운동중독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운동을 거른 후 불안감이 나타나고 신경과민, 불쾌감이 생긴다면 운동중독 상태라고 보면 된다. 매일 등산하는 장년층, 부상을 입고도 축구에 나서는 조기축구회원,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면서 뛰는 아마추어 마라토너 등이 중독자인데 결국 큰 병을 불러오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국내의 마라톤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나라 이런 비공식 통계들을 다 합치면 전체 인구수의 몇 배를 훌쩍 넘지만, 그래도 주변 강가나 천변에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헛말을 아닌듯하다.  마라톤은 간단한 복장과 운동화만 있으면 잘 꾸며진 강변길을 달리며 건강과 만족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분에 넘치는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고 자랑삼아 뛰는 사람은 마라톤의 묘미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자기 자신에게 적당한 정도로 슬슬 달려보거나 산책이라도 나서면 어떨까. 사실 적당히 하는 것이 제일 어렵기는 하지만 말이다.


참고문헌


1. Dennis M. Bramble, Daniel E. Lieberman. Endurance running and the evolution of Homo. Nature, 2004; 432 (7015): 345 DOI: 10.1038/nature03052

2. 김기진, 마라톤의 스포츠 과학적 특성, 대한스포츠의학회지, 제34권 제1호, 2016

3. 김홍재, 인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달리는 ‘마라톤의 과학’, 사이언스온, 2021.10.12

4.  이수찬 등, 내 발 사용 설명서, 한국경제신문, 2009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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