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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Jun 22. 2024

경북 상주에 고령가야가 있었다?

3번 국도 지질 여행

지금 문경시청이 있는 곳은 원래 이름은 점촌이었다. 점촌은 1986~1995년까지 시로 존재하다가 문경으로 합쳐졌다. 본래의 문경읍은 문경새재 IC까지 북쪽으로 20여분을 차로 달려가야 한다. 현재는 동일한 행정구역이지만 문경과 점촌은 중간에 높은 산과 조령천이 있어 예전에는 쉽게 다니기가 편치 않았던 곳이다. 그나마 석탄이 나오지 않았다면 산간벽지로 남을뻔한 곳이 당시의 문경, 점촌이었다. 이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옥천계이다.

경북 상주시 함창 인근 지도(별표는 오봉산 고분군), 출처: 네이버 지도


하지만 문경시 남쪽인 상주시는 상주의 상(尙) 자와 경주의 경(慶) 자를 따서 경상(慶尙) 도라고 명칭을 지을 만큼 대단한 지역이었다(1314년, 고려 충숙왕 원년). 예전에 상주는 삼백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흰쌀, 곶감 그리고 누애의 새하얀 3가지 특산품으로 남부럽지 않은 고장이었다. 불행하게도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상주의 아래쪽인 김천을 통과하면서 근대화의 길목에서 비껴갔다. 하지만 중부내륙과 서산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의 중심지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상주 벌판, ⓒ 전영식

상주의 특징을 말해주는 것 중의 하나는 자전거로 한때 전국 자전거 이용률이 최고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화강암 분지여서 그만큼 언덕이 없어 편하게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전거를 애용한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경천대 국민관광지 인근에 자전거박물관도 있다. 지금도 출퇴근 시간에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주민들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상주에 있는 고령가야 왕릉


상주시의 북쪽 경계에는 문경시청이 바짝 붙어 있다. 문경시청에서 걸어서 5분, 400m 정도 남쪽으로 가면 상주시 함창읍으로 들어간다. 함창은 넓은 평야와 낙동강으로 들어가는 이안천과 영강이 있어 삼국시대 이전부터 여러 나라가 생겼을 정도로 인구가 많이 모이던 지역이다.


함창고등학교 건너편 골목길로 들어가면 지형이 편안한 언덕에 왕릉급 무덤이 2개가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26호인 전 고령가야(古寧伽耶) 왕릉과 왕비릉이다. 안내판에는 고령가야국의 태조가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고 쓰여있다. 이어서 함창은 본래 '고령가야국'이었는데 신라가 빼앗아 '고동람군(古冬攬郡)'으로 하였다가 신라 경덕왕 때 '고녕'으로, 고려 때 함녕, 함창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조선 선조 25년(1592년) 묘 앞에 묻혀 있던 묘비가 우연히 발견된 후, 1712년에 숙종의 명으로 비석과 석물을 설치했다고 설명한다.


전 고령가야왕릉, 숙종 때 설치된 석양(石羊)이 보인다. ⓒ 전영식
전 고령가야왕비릉, ⓒ 전영식


오봉산 고분군


한편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산 33 일대 오봉산(238m) 자락에는 고분군이 3군데 있다. 3개의 능선을 따라 분포된 고분은 발굴조사결과 총 423기가 확인되었다(한국학중앙연구소). 이 고분들은 4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고령가야가 함창을 중심으로 존재했다면 고분에서 그 진위를 밝혀줄 유적이 출토될 것을 기대해 볼만하다.

오봉산 고분군 전경, 출처: 국가유산포털


2022년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이 실시한 오봉산 고분군 발굴 조사 결과, 토기와 철기류가 출토됐으나, 고령가야를 입증할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발굴 주최측은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무덤의 조성시기는 6세기 전반대에 해당하며 무덤의 주인은 당시 이 지역의 최고 수장급에 속함을 확인하였다"라고 밝히면서 결론은 유보한 상태이다.




우리가 아는 가야는 크게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초기)와 고령(高靈)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후기, 서기 400년 이후)이고 그 외에 작은 몇 개의 소국이 연맹한 느슨한 조직체이다. 마치 초기 로마와 비슷하다고 할까. 가야는 앞선 철기제조기술, 토기의 조형미, 순장문화로 구분된다. 이를 바탕으로 낙동강 주변에서 세력을 키워 갔으나, 지리적으로 백제와 신라 사이에 끼어서 고초를 겪었다. 결국 금관가야는 532년 법흥왕에 의해, 대가야는 562년 진흥왕에 의해 정복됐다.


가야연맹의 지도,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aximilian Dörrbecker


위 가야의 세력권 지도에는 최근 발굴 성과가 나오고 있는 남원, 장수 쪽은 구분되어 있지 않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는 가장 북쪽에 있는 상주 고령가야는 들어가 있다.  우리가 배웠던 가야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편에 존재하던 나라(그림에서 빠진 비화가야 제외)였는데 그럼 상주에도 가야 세력이 자리를 잡았을까?


상주 고령가야에 대한 기록


일단 고령가야(古寧伽耶)라고 하면 경상남도 고령군(高靈郡)의 대가야를 일컫는 말로 오해를 하기 쉽다. 한글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대가야는 고령에 있는 가야를 지칭하는 말이지 고령가야라고 쓰지는 않는다.  


고령가야(古寧加耶)라는 이름은 <삼국유사(三國遺事)> 5가야조(五加耶條)와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 상주(尙州) 고령군조(古寧郡條)에 보이고 있다.


<삼국유사> 5가야조에는 고려시대의 함녕(咸寧)이라고 하였다. 함녕은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대체로 지금의 함창(咸昌)을 중심으로 한 가야이다.

<삼국사기> 권34 잡지 3편 지리지에서는 고령군(古寧郡)은 본래 고령가야국(古寧加耶國)으로 경덕왕 때 신라가 취하여 고동람군(古冬攬郡)으로 삼았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서 지금은 함녕군(咸寧郡)이다. 속해있는 현은 셋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각 현은 가은현, 문경현, 호계현이다.


김영창이라는 분이 지은 <6가야국사실록(六伽倻國事實錄)>에 이름이 전한다고 한다.  6가야국사실록에 고령가야는 김해 가락국(駕洛國)이 건국하던 해인 서기 42년 수로왕(首露王, 42~199년, 재위157년)의 셋째 동생 고로왕(古露王, 재위 115년)이 나라를 세운 후 2대 마종왕 (摩宗王, 재위 65년)을 거쳐 3대 이현왕(利賢王, 재위 35년)까지 215년간 이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고령가야의 마지막 왕 이현왕은 신라 12대 첨해왕(첨해이사금, 沾解泥師今, ? ~ 261년, 재위 247년 ~ 261년))이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 오자 다른 가야국들과 연합해 대치하다 힘이 부쳐 김해로 도읍지를 옮겼다고 한다. 이 책의 진위는 알 수 없다.


수로왕의 재위처럼 고로왕의 재위기간도 어마어마하여, 이 명칭들을 정치체계의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6가야 가운데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고령가야는 실체를 입증할 문헌이나 유적이 별로 없다. 위 이야기를 다 믿는다고 해도 서기 42년~257년까지 존재했을 것이니 전기 가야 초기의 유적 정도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벌왕릉


하지만 고령가야의 수도로 이야기되는 함창은 일찍부터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역이었고, 기타 가야계 소국들과는 달리 지나치게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당장 함창 바로 남쪽에 진한계 국가인 사벌국이 존재했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사벌국은 백제와 신라 사이에 줄타기를 하다가 신라 첨해왕때 신라에 다시 복속당했다고 나온다.


상주시 사벌국면  전 사벌왕릉, ⓒ 전영식


현재로서는 실증적인 유적, 유물은 없지만, 일단 삼국사기, 삼국유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문헌적 기록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고령가야왕릉과 왕비릉 그리고 오봉산 고분군을 비롯한 미발굴 유적들이 여럿 산재해 있기 때문에, 후대에 고령가야라고 불린 어떤 독립소국이 상주시 함창읍, 이안면, 공검면 일대와 문경시에 걸쳐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일부 학계의 의견이다. 향후 발굴 조사의 성패가 가야연관성을 밝혀내는데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2023년 9월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이 일제히 올라왔다.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가야를 대표하는 7개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7개 고분군은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인정된다”라고 평가했다. 재된 문화유산에도 고령가야, 남원가야 등은 빠져있다.




가야의 정의는 무엇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서기전 1세기 ~ 서기 6세기,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일부에서 형성된 작은 나라들의 연합이라고 하며, 위키백과에 의하면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존재하던 한국의 고대국가 연맹체라고 한다. 시기와 위치가 결합한 정의이다. 여전히 고대국가의 정의나 연맹의 가입여부 등은 넓은 정의로 열려있다. 상주뿐만 아니라 비슷한 지역에 어떤 세력도 가야라는 큰 범위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지질학적으로 대부분의 가야는 중생대 퇴적층인 경상계층에 속해 있다. 물론 이 가운데를 흐르는 낙동강이 가장 큰 모티브가 됐겠지만 경상계지역이 중심임은 부인할 수 없다(불행히도 상주 고령가야는 영남지괴에 속한다). 토기를 만들기 위한 제반 환경은 훌륭했다. 철기류 제작에 필요한 철광산 형성은 중생대의 화성활동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유사한 지형적 특징과 지질학적 특성이 가야의 성립과 발전에 중요한 요인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인간이 이루는 일이다.


가야에 대한 지식은 연령층대에 따라 다르다. 가야에 대한 조명이 현대로 올수록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 장수 등 전라북도 지역의 가야유적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 같은 유물 발굴 성과도 착착 누적되면서 가야권의 세력판도와 문화가 구체적으로 복원되고 있다. 가야는 정치적으로 패자이기 때문에 기록에서 소외됐고 거의 1500년 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억에서 사라졌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가야무덤의 도굴에 가까운 발굴도 자료로 남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상주는 지질학적으로 옥천계와 영남지괴가 만나고 경상분지에서 퇴적된 경상계도 존재하는 지역이다. 지질학적 경계는 언제나 사람을 불러들이고 문명을 일으켜 세웠다. 상주도 그런 곳일 것이다.  앞으로 여러 시대의 훌륭한 문화 유물의 발굴성과를 기대해도 좋은 지역이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참고문헌


1. Cultural Heritage wiki, 한국학중앙연구원

2. 상주 오봉산 고분군, 6세기 전반대의 최고수장급 무덤으로 확인, 영남일보, 2022.9.2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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