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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키 석불입상의 고장, 충남 아산

우리 주변 지구과학

by 전영식 Mar 13. 2025

[표지사진,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보물 제536호, 설명은 하단에]


아산은  언제나 조금 애매한 곳이다. 먼 곳도 아니지만 가깝지도 않아서 당일치기는 부담스럽다. 자고로 아산은 온양온천으로 대표되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온천 도시다. 지금은 낡아 쇄락했지만 60년대만 해도 신혼여행지로 온양은 독보적이었다. 조선 초에는 태조 이성계가 황해도 평산을 마다하고 온양을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 세조 현종이 자주 찾았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후에야 왕들이 못 갔다. 그 후 숙종, 영조, 정조가 다녀갔다. 사도세자가 끌려와서 고생한 자리에 영괴대(靈槐臺, 충남 문화재자료 228호)를 세워서 아직 남아있다. 


또 다른 지역 온천인 도고온천이 알려진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1년 일본 사금업자가 개발하면서부터이다. 1975년 호텔이 들어서면서 개발이 이루어졌다. 국내 유일의 유황 온천이라고 알려졌으나 지금은 성분도 약해져 폐가가 많다. 한편 일본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에 나오는 온천이라고 주장하는 곳은 여러 군데인데, 일본 에히메현 마쓰야마(松山)의 도고(道後) 온천이 가장 유력한다. 두 온천의 이름이 같아 흥미롭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일본 온천은 정신없는 휴양지였지만 조선의 온천은 좀 더 점잖았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공: 씨네그루㈜다우기술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공: 씨네그루㈜다우기술


아산으로 넘어가면


익산-평택 고속도로를 타고 남행하며 아산호를 지나면 공세리에 들어서게 된다. 1890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공세리 성당이 자리 잡고 있고 계속 진행하면서 오른편으로 높지 않은 산들이 나타난다. 이 산이 영인산인데 1970~1980년대 아산만과 삽교호 방조제에 투입될 석산으로 개발돼 훼손된 후 수십여 년이 지나면서 아직도 일부만 자연복구된 상태이다. 좌측으로 보이는 고용산도 역시 채석장이었다. 공세리 성당에서 동남쪽으로 1.5km 떨어진 피나클랜드도 채석장을 개발한 수목원이다.


영인산으로 가는 길에는 SG 아름다운 골프&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골프장은 채석장을 그대로 살여 코스로 만든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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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아름다운 골프&리조트의 제4홀(좌)와 제5홀(우), 출처: 리조트 홈페이지


아산의 지질


온양 시청에서 남서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설화산(448m)이 있는 배방읍 중리에도 채석장이 있었다. 설화산을 이루는 기반암은 중생대 쥐라기 흑운모 화강암으로, 광덕산 일대의 선캄브리아기 호상 흑운모 편마암을 관입하고 있다. 설화산은 과거 많은 금광이 산재하였으나 지금은 폐광이 되었고, 그 대신 양질의 화강암이 산출되어 채석장이 있다. 설화산 남쪽에는 외암민속마을이 있어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아산지역 지질도(붉은△ 영인산, 파랑△ 고용산) , 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아산지역 지질도(붉은△ 영인산, 파랑△ 고용산) , 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아산지역의 지질은 경기도 인근지역이 그렇듯, 선캐브리아기의 편마암복합체와 이를 관입한 중생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기 지괴에서 거의 예외 없는 지질 기반이다. 여기서 편마암 지역은 볼 게 없고 화강암지역은 볼 게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비슷하다. 


아산지역에는 온양석이라는 화강암질 편마암이 석재로 개발되었다.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가 들어있는 암석으로 주로 정원석, 조경석, 경계석으로 많이 사용되는 돌이다. 최근 온양석산의 수더분한 김명성 대리가 '반려돌'이라는 아이디어를 내서 유명세를 치렀다. 물론 반려돌은 온양의 돌은 아니다. 


아산의 석불입상의 종류와 분포


아산에는 특이하게 크기가 큰 암석 한 장으로 만든 석불이 많이 있다. 아산의 석불은 주로 화강암 암체 주변에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나중에 설명할 지질학적 특성 때문에 이렇게 분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산은 산이 높지 않고 산 아래 비옥한 평야지대에는 마을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은 아산지역에 있는 석불상 3종이다. 


아산 신현리 미륵불


아산 신현리 미륵불, ⓒ 전영식아산 신현리 미륵불, ⓒ 전영식


아산 신현리 미륵불(牙山 新峴里 彌勒佛, 충남 문화재자료 제234호)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현리의 628번 지방도로 북쪽의 인적 드문 산기슭에 있는 미륵불이다. 접근로가 관리되지 않아 수풀을 헤치고 꾸역꾸역 올라가야 한다. 


넓고 판판한 화강암 한판에 불상을 만들었다. 높이 215㎝, 어깨너비 106㎝로 다가가서 보면 엄청 크다. 머리에는 고려시대 석상에서 많이 보이는 둥글고 큰 관(冠)을 쓰고 있다. 석질이 달라서 후대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갓인지 보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평면적인 얼굴에 눈과 눈썹은 귀가 있는 부분까지 길게 선상으로 조각되어 있고, 입은 작게 표현하여 엄숙한 인상을 풍긴다. 목에는 3줄의 삼도(三道)가 분명하고, 옷은 통견 양식이다. 목걸이를 오른손이 가볍게 잡고 있다.


모양이 평범하여 불상이기보다는 스님으로 보기도 한다. 민간 신앙의 측면에서 미륵정토를 기원하며 만든 것으로 보이는 미륵불이다. 하반신의 무늬가 색다르다. 우측의 마무리가 부실하다.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측면의 풍화가 심한 편이다. 조선시대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관음사 석조여래불상


아산 관음사 석조여래불상, ⓒ 전영식아산 관음사 석조여래불상, ⓒ 전영식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관음사 뒤뜰에 있는 불상이다. 아산에는 여인면에는 관음사가 여럿인데 여민루길 122로 찾아가야 한다. 영인석불에서 동남쪽으로 350m 떨어져 있어 가깝다. 하나의 돌에 불신, 광배(光背), 대좌(臺座)를 조각하였다. 높이 320㎝, 폭 110㎝, 두께 18㎝이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여 자비심이 느껴지는데, 이마에는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다. 당당한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는 우견편단의 옷에는 아무런 무늬도 표현하지 않았다. 마모가 심해서 무늬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 오른손을 쭉 뻗어 허벅지 부근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고 있고, 왼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오른쪽 가슴에 대고 있다. 하지만 디테일이 분명하지는 않다.


한 암석에 새겨진 연꽃잎이 새겨진 대좌 위에 조각되어 있는 두 발은 발뒤꿈치를 서로 붙인 상태에서 발가락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팔자 모양의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희미하다. 전체적인 양식과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산 영인석불


아산 영인석불, ⓒ 전영식아산 영인석불, ⓒ 전영식


아산시 영인면 안산향교에서 서남쪽으로 들어가면 영인 오층 석탑과 함께 넓은 공터에 있는 석불입상이다. 충남 문화재자료 240호다. 한판의 화강암 판석으로 만들어져 높이 265㎝, 너비 87㎝로 조각하였다. 목은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청일전쟁 때 석불의 목 부위가 잘린 채 방치되다가 1945년에 보수한 것이라 한다. 


머리에는 관(冠)을 쓰고 있으며 모자는 없다. 계란형의 얼굴은 양 볼이 통통하게 표현되었다. 당당한 체구에 옷은 우견 편단인데 옷 주름은 마모로 인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배 아래에는 옷 주름을 표현한 흔적이 보인다. 왼손의 손바닥에는 동그란 구슬이 올려져 있으며,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쪽 가슴 앞에 올려놓고 있다. 얼굴 표현이 대단히 편안하여 초등학생이 만든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동심이 어려 있다. 불상의 조각 솜씨나 머리에 쓴 관의 형태, 얼굴 모습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인석불은 전체적인 조형미가 아름답고 비교적 마모되지 않아 아산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으로 유명하다. 


이밖에 아산 지역의 석조입상으로는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송암사 석조여래입상 등이 있다. 


왜 큰 키 석불입상이 밀집해 있는가?


위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아산지역에는 유독 키가 큰 석불들이 많이 존재한다. 큰 사찰은 없고 석불만 덩그러니 산기슭에 서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마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갖고 주변 산을 살펴보았다. 


고용산


고용산(高聳山, 295.8m)은 38번 국도를 타고 남행하면 왼쪽에 나타나는 나지막한 산으로 아산시 북부에서는 영인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기슭에 용화사가 있는데 여기도 석조 미륵불이 있다. 조각양식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다른 석조불과 그 유형을 같이 한다. 전형적인 화강암산으로 정상부엔 박리된 바위 옆에 쓴 밀양박씨 묘가 있다. 정상에서는 성내 저수지가 보이는데 전망이 쾌적하다. 토정 이지함의 전설이 전해지는 산으로, 최근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산이다.


고용산을 이루는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 경기 편마암 복합체를 이루는 온양 편마암과 이를 관입한 중생대 쥐라기 편마암질 각섬석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용산의 정상부와 북부에는 편마암질 각섬석 화강암이 분포하고 있으며, 남측의 높이 90m 부근을 경계로 온양 편마암이 분포하고 있다. 고용산은 암석돔이 나타나고 수직의 단애, 토어(tor), 나마, 그루브, 판상절리, 핵석 등의 다양한 풍화 지형이 나타난다.


산의 능선부가 바위로 되어 있는데, 잘 보면 판상절리가 고스란히 보인다.  홀로 고립되어 남은 바위는 시루떡처럼 수평의 절리가 발달되어 있다. 이 상태에서 잘 떠내면 사용하기 좋은 귀한 판석을 얻을 수 있다. 정상에서도 지표면에 수평한 절리 된 암편을 쉽게 볼 수 있다. 


고용산 노두의 판상절리가 잘 보인다.고용산 노두의 판상절리가 잘 보인다.
고용산 정상의 판상절리, 멀리 성내 저수지가 보인다.고용산 정상의 판상절리, 멀리 성내 저수지가 보인다.


영인산, 영인산성


영인산(靈仁山, 363.5m)은 고용산 보다 훨씬 높은 산이다. 아산호, 삽교호가 잘 내려다 보이는 전략적인 위치이다. 예부터 영험하다고 알려져 비가 안 오면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인근에 동쪽으로는 영인산자연휴양림과 수목원이 있고 서쪽으로는 보기 드문 청석탑이 있는 세심사가 있다. 아산향교, 김옥균유허지, 여민루가 자락에 있다. 


산 정상 일대에는 백제 초기의 석성이 있는데, 그들 눈에도 위치가 군사적으로 중요했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쓸모없는 곳에도 비행장 같은 거대한 토목시설을 짓지만, 백제시 절는 꼭 필요한 곳에만 시설물을 지었을 것이다. 석성의 돌을 보면 유난히 길이가 긴 장방형의 화강암을 가지런히 쌓아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석성의 축대는 정사각형을 쓰는데 여기는 좀 특이하다. 필자의 생각에는 판상절리에서 떨어져 나온 돌을 잘 다듬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산 영인산 정상. 남아 있는 판상의 돌이 보인다. 아산 영인산 정상. 남아 있는 판상의 돌이 보인다. 
아산 영인산 영인산성, 장방형의 두께가 비슷한 돌을 쌓아 올렸다. 아산 영인산 영인산성, 장방형의 두께가 비슷한 돌을 쌓아 올렸다. 


판상절리


암석의 표면이 침식되어 누르는 힘이 없어지는 하중제거(unloading)로 지표에 평행하게 발달되는 절리를 판상절리(Sheet joint, Sheeting joint) 또는 층상절리라고 한다. 판상절리의 간격은 팽창률의 차이로 인하여 지표에 가까울수록 좁고 깊을수록 넓어지는데, 지하 100m까지 나타나는 경우는 있으나 암석이 누르는 힘 때문에 흔하지는 않다. 판상절리가 잘 발달되어 있으면 기반암에서 양파 껍질처럼 떨어져 나오는 박리(exfoliation) 현상이 흔하게 관찰된다. 판상절리는 지표나 급하게 경사진 지형에 평행하게 발달하여 나타나고 그 연장성이 수백 m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보통 지표의 구배와 평행하게 발달하고, 두께는 1m 내외인 경우가 많다.


판상절리는 일반적으로 화성암 그리고 사암과 역암을 포함한 다른 암종에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특히 화강암 같은 심성암류 지형에서 잘 나타난다. 북한산이나 울산바위 등 급경사를 가진 지형에서는 풍화와 침식 등에 의해 판상절리가 더 발달하고 그 일부가 떨어져(박리) 나오면서 암반블록의 추락(falling)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산 지방의 석불입상을 살펴보면 이러한 절리로 떨어져 나온 암편을 적절히 사용하여 입상을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절리의 간격이 불상을 만들기에 충분히 넓고 곡률이 그리 크지 않다면,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분리하기 쉬운 절리암반(jointed rock mass)으로 석물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경주의 분황사탑도 사실 수평절리를 이용한 작품이다. 


이렇게 특정 형태의 석불입상이 나타나는 것은 그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 상당히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아직 학술적으로 정리된 내용은 아니다. 그러면 어떤가. 우리는 질문하고 답은 후손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감상하고 상상하면 그만이다.




[표지사진 설명]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아산에 있는 대형 고려 석조불 중 가장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받은 작품이다. 모습이 압도적이고 주변 환경이 잘 정비되어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보물 제536호 높이 5.4m의 화강암을 다듬어 조각한 불상이다. 불상의 머리에는 육계와 나발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고 눈을 감고 입술을 굳게 다문듯한 표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두 손은 공손한 자세로 가슴에 모으고 있다.  법의는 하단부로 내려갈수록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고 부자연스럽게 서있다. 도식화된 조각수법 등이 고려 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1. Steve Hencher, S.G. Lee, Trevor G. Carter, L. R. Richards, Sheeting Joints: Characterisation, Shear Strength and Engineering, Rock Mechanics and Rock Engineering, May 201044(1):1-22

DOI:10.1007/s00603-010-0100-y


2. 디지털아산문화대전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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