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배추는 소울 푸드 중의 하나이다. 어린 시절 김장 때가 되면 달콤하면서 찝찌름한 배추에 김치 속을 싸서 입에 넣어 주시던 어머님의 그 손길을 잊지 못한다. 곧이어 저녁상에 나오는 돼지수육에 배춧국은 이제 겨울이 시작 됐으니 빈틈없이 준비하란 신호였다. 배추는 김치뿐만 아니라 샤부샤부, 마라탕에도 들어간다.
배추는 채소 중 한국인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품목이다. 2020년 농림축산품 주요 통계에 따르면 1인당 연간 47.5kg 을 소비해서 전체 채소류 소비량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동법의 시행으로 쌀의 공급이 늘어 반찬인 배추와 양배추를 포함한 한국의 배추 생산량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세계 4위 수준이다. 한국의 밥상물가에 중요한 고춧가루와 함께 배추값을 잡지 못하면 정부 지지율 폭락은 불 보듯 훤하다.
배추, SOurce: wikimedia commons by Sous Chef
보도에 따르면 일부 전통시장에서 1 포기에 2만 원이 넘는 판매가격을 붙였다고 난리다. 배추가 아니라 금추라고도 한다. 솔직히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제대로 큰 야채류를 찾기는 힘들다. 가뭄도 심해 물이 많이 필요한 배추에게도 최악의 계절이었다. 다행히 배추는 종류를 바꿔가며 연중 내내 재배가 가능하다. 하지만 제철이 가을~겨울이고 김장이라는 큰 수요기간이 있어 문제다. 보통 김장배추는 고랭지배추가 담당하는데, 올해는 고랭지의 기온이 높아 작황이 좋지 않은 게 문제다. 사실 농업이 흉년과 풍년을 오가는 도박성이 짙어지면서 자극적인 보도가 자주 등장하는것도 큰 문제다.
채소류 생산량 및 배추소매가격
정부는 긴급하게 중국의 배추를 수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중국배추는 우리 배추와 똑같을지 맛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2021년 중국의 알몸절임배추가 논란이 된 때가 있어서, 이번 배추는 위생적이고 안전한 지도 관심이다. 이왕 수입한다면 철저히 관리하여 제값 하는 배추를 들여와야겠다.
배추
배추(Napa cabbage, Chinese cabbage)는 쌍떡잎식물 십자화목 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이다. 꽃잎이 4장 인대 십자가 모양이다. 무에 비해 뿌리는 볼품없다. 그 위로 거대한 꽃의 모양의 잎이 뭉쳐진 형태를 하고 있다. 몸통은 흰색의 줄기부터 잎 위쪽으로 갈수록 녹색이 된다. 영어로는 배추를 일반적으로 napa cabbage라고 부르는데, napa의 어원은 일본어에서 푸른 이파리를 뜻하는 菜っ葉에서 따온 것이다.
배추, source: wikimedia commons by Judgefloro
생육기간은 품종에 따라 차이가 큰데, 50일에서 90일 정도* 다. 아삭한 식감에,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을 갖고 있다. 손질 전 바깥에 둘러싸고 있던 잎들은 질기고 맛이 없다. 이걸 삶아서 말린 게 우거지(웃자란 것이나 위에 있는 것을 거둔 것이란 뜻)이다. 배추 뿌리는 작지만 달짝지근하며, 무 향과 맛이 난다. 결구(結球, 채소 잎이 여러 겹으로 겹쳐서 둥글게 속이 생기는 모양) 형태에 따라서 불결구, 반결구, 결구배추로 나눈다.
화석상의 기록으로는 배추의 기원이 되는 십자화과 식물은 4,300만 년 전인 팔레오세 중기 시절에, 유전자 조사로 배추과의 조상으로는 1,600만 년 전인 중신세 시절에 출현하였다고 한다. 배추의 원산지는 양쯔강 유역으로 알려졌다.
중국배추, Source: wikimedia commons by Fumikas Sagisavas
과거에는 배추 재배 시에 비교적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생육조건 때문에 가을철에 주로 생산했었다. 지금은 봄이나 고랭지의 경우 여름에도 재배하지만 가을배추의 재배면적이 가장 좁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은 가장 많다.
배추 모종 심은 뒤 10일 경과 모습, ⓒ 양경희
생육 초기에는 높은 온도에 잘 견디나 생육에 가장 알맞은 온도는 20°C 전후이고 결구의 최적온도는 15~16°C이다. 온도가 천천히 내려갈 때에는 영하 8°C까지 견디나 갑자기 추워지면 영하 3~4°C에서 동해를 입는다. 종자는 젖은 상태에서 10°C 이하로 일주일이 경과되면 꽃눈 분화를 하는 종자춘화형(種子春化形)이다. 배추는 자라는 데 충분한 수분이 필수적이며 물 빠짐이 좋은 사질양토(모래진흙)가 좋다.
들어봤을 때 묵직한 느낌이 들고, 겉잎은 거의 푸르며, 속잎을 먹어봤을 때 달고 고소한 배추가 제일 품질이 좋다. 중간의 노랗고 작은 어린잎이 특히 고소하고 맛있는데 이걸 '고갱이'라고 부른다. 순무, 청경채와 같은 식물이고 품종만 다르다.
우리나라 배추 품종의 변화
우리의 전통적인 배추는 크게 서울(경성) 배추와 개성 배추로 나뉘었다. 지금 배추에 비해 잎이 없고 뾰족하게 자라는 것이 씹는 맛과 감칠맛이 있었다고 한다. 토종배추는 반결구배추이다. 하지만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중국인의 진출이 많아지면서 산동지역 배추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의 중국식 배추가 들어왔는데 상대적으로 배춧잎이 크고 풍성했고 따라서 추위에도 강했다. 이를 중국배추, 청배추 또는 호배추라고 한다. 그런데 이 배추는 결구배추였다. 사람들은 감칠맛도 적고 우거지도 적어 호배추를 좋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총독부는 맛을 떠나 크기가 큰 호배추를 장려하였다. 호배추는 화학비료와 농약만 있으면 재배가 수월했고 무게도 많이 나가 돈을 더 받을 수 있었다. 특히 가을뿐만 아니라 봄에도 출하가 가능해서 점차 환영을 받게 됐다. 결국 1970년 중반 이후 전국 가정은 결구배추로 김장을 담그게 됐고 토종배추는 밀려났다. 하지만 이 결구배추는 호배추가 아니었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배추는 김치 배추(Kimchi cabbage)라는 결구배추이다.
광복과 중국의 공산화 이후에, 국민 반찬인 배추 품종의 자립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은 종자를 일본에 의존하다가 해방 이후 일본과의 관계 단절로 국내에는 심한 종자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우장춘 박사가 일본산 배추와 양배추를 교잡해 새로운 배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게 우리의 김치 배추가 된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먹는 배추는 우장춘 박사의 품종개량으로 만들어진 배추로, 그 이전의 배추를 보면 절반도 안 되는 둘레를 가진 빈약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김장 담그기,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nattadairy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
우장춘(禹長春, 1898~1959) 박사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명성황후 시해, 즉 을미사변에 참여한 우범선이었다. 우범선의 사변 개입 정도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나 참여한 사실은 분명하다. 우범선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해 기타노 이치헤이라는 일본 이름으로 사카이 나카와 결혼해 우장춘을 낳았다. 우범선은 우장춘을 한국호적에 올려 나중에 한국귀환에 도움이 되게 한다. 우범선은 우장춘이 5세 때 고영근에게 암살당한다.
이후 집안이 어려워져 우장춘은 보육원과 도쿄 회운사라는 사찰에서 잠시 자라기도 했다. 1916년 동경제국대학 농업실과에 입학한다. 1926년, 스물여섯에 와타나베 고하루와 결혼한 우장춘은 사이타마현의 고노스 농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이후 어려운 환경 하에서 연구와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우장춘이 이룬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은 1935년 "배추 속(Brassica)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박사 학위 청구 논문을 통해 '종의 합성'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먼저 배추 속 식물의 염색체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얻은 가설을 세우고 배추와 양배추의 교잡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유채를 실험적으로 만들고, 그 과정을 유전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그동안은 불명확했던 종간 잡종의 메커니즘과 종의 합성이 실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밝혔다.
우장춘, Source: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주요 배춧과 작물의 게놈 관계도가 삼각형의 관계를 이룬다고 하여 우장춘의 삼각형(Triangle of U)이라고 부른다. 이는 생물체에서 다른 종 사이의 교잡은 교잡일 뿐이고 새로운 종이 될 수 없다는 기존 과학계의 정설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식물은 돌연변이가 아닌 종간 교잡을 통해서도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결국 육종학이나 식물학에서는 물론, 생물학 자체에서도 '종의 분화는 자연선택만의 결과이다.' 였던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해야만 하는 큰 파장을 몰고왔다.
우의 삼각형(Triangle of U),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denosine
우장춘의 삼각형에 꼭짓점에 있는 식물들을 교잡하면 삼각형 변에 있는 다른 식물이 탄생한다는 이론으로, Brassica napus(유채)를 B. rapa(배추류)와 B. oleracea(양배추류)의 교잡을 통해 만들어냄으로 새로운 종의 탄생은 기존의 종의 교잡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우장춘의 연구논문은 1935년 <일본 식물학 잡지>에 게재되었으며, 그는 다음해 이 연구성과를 주논문으로 하고 그간 발표한 여러 편의 논문을 부논문으로 하여 마침내 1936년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이를 통해 ‘농림 1호’라는 새로운 배추 품종을 개발했다. 해당 논문은 아직까지도 십자화과 식물(배추, 유채, 양배추)의 연구 논문에서 필수적으로 인용되는 논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박봉과 차별에 시달리던 우장춘은 결국 농림성에 몸담은 지 19년, 고노스 농장에서 일한 지 13년 만에 퇴사 했다. 그리고 이후 교토의 개인 회사인 다키이 종묘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고위직으로 일하다가 광복을 맞이하고 한 달 만인 9월 사직했다. 이때 사장이 한국에 있는 자신의 농장을 챙겨달라고 한 주제넘은 부탁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한국에 뼈를 묻겠다.
우장춘과 타키이 종묘회사에서 함께 일했었던 김종(金鍾, 당시 경상남도 농무국장)은 먹고살 것이 없던 한국에 육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장춘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우장춘 박사 환국추진위원회를 조직해 성금을 모으는 한편 부산 동래에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설립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1950년 3월 8일 부관 연락선 신고마루호를 타고 우장춘이 귀국해 연구소 소장을 맡았고, 김종은 부소장으로 부임했다.
그 후 우장춘은 일본산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한 결과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한국 토양과 실정에 맞는 배추를 개발하였다.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무, 고추, 양파 등과 같은 작물의 일대 잡종 품종이 1960년대 들어 개발에 성공했다. 한여름철에도 평지에서 재배가 가능하게 된 평지여름무, 최초의 중간 잡종에 의한 다다기성 품종인 애호박, 당도가 높은 참외 신품종 금싸라기, 고랭지 여름배추 등이 성공작으로 손에 꼽힌다. 그 외에도 제주도에 감귤 농업을 제안하였고 강원도에 적합한 감자를 개발했다. 유작으로 수도이기작(水稻二期作)벼가 있다. 우장춘 박사는 개인을 희생하면서 피폐해진 한국 국토에 원예와 농업을 발전시켰고, 그 당시 열악했던 한국 농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 우리의 식탁이 풍성해지도록 만들었다.
배추가 금값이라고는 해도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배추에 숨은 역사와 과학을 알고 나면 결코 비싸다고만 느낄 수가 없다. 기존 학설을 뒤흔든 이론과 조국을 위한 열정은 돈으로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일이었다. 만약 우장춘 박사와 후학들 그리고 우리 과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올해의 더위를 겪으면서 아직도 맛없는 배추를 2만 원을 훨씬 넘는 가격으로 사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배추 2만 원은 그래도 싸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