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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n 27. 2023

지나온 길 고개를 돌아봐도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는 이유



한 달하고 일주일. 한 달 살기(5주 살기) 여행 기차가 종점을 향해 달려간다. 저속으로 운행하며 빼곡히도 다닌 것 같은데 문을 닫아서 다음을 기약했던 곳, 마음에 들어 또 들르고 싶은 곳, 밤길이 겁나 시도하지 않았던 곳의 리스트가 머릿속에 줄지어진다.


 

시간이란 친구는 그런 건가 보다. 인심 좋게 뒷짐 지고 나를 바라봐줄 땐 한없이 늦장 부리고 딴짓이 하고 싶다. 언제고 나를 기다려줄 것 같던 친구는 매무새를 고치고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덩달아 급해진 고개는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번갈아 본다. 흘리고 온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뒹굴거리던 마음과 몸을 수렴해 작전을 짜기 시작한다.



지나온 대부분의 궤적이 그랬다. 코앞에 시험이 닥쳤을 때, 마감이 내일일 때, 발표해야 할 회의가 몇 시간 후일 때, 장기여행을 떠나기 열 시간 전 짐을 꾸릴 때 가쁜 마음 같은 것들. 한쪽 벽면에 몰아두고 잊을만할 때쯤 들여다보다가 아차 싶어 서두른다. 진작 좀 해놓을 걸.. 다시 돌아가면 미리 준비해서 더 잘 해낼 수 있을 텐데.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한 번만 더 기회가 있다면. 줄지은 '있다면'이 나를 틈서리로 밀어 넣는다.



사실 알고 있다.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한들 별반 다름이 없을 나라는 것을. 그때는 그때의 리듬과 빛깔이 존재했고 그 장면 안에서 나는 나름의 소임을 다 한 것이었다.



걸어온 길 돌아보지 말자고, 눈앞이 훤한 길 앞에서 발 동동 구르지 말자고 주머니 속 꼬깃꼬깃해진 메모를 들춰본다. 손을 떠난 화살에 그만 눈길을 거두고 당기고 있는 활시위의 화살에 주문을 거는 게 지금의 할 일이다. 다 제쳐두고 나가서 새로운 식사 메뉴를 탐험하고 고소한 오트밀크 라테에 감응하고 복닥복닥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마켓을 다닌다. 그것만이 시간과 내가 진도를 맞춰 서로를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길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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