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Aug 09. 2023

지금 행복해요?

욕망을 내포한 물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게 되는 한 가지 질문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상대에 대한 궁금이 담긴 의도이고 나의 욕망을 내포한 질문이기도 하다. 단순하지만 한 번 목구멍에서 턱 하고 걸려서 어..., 하고 막히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이기도 하다.

 

지금 행복해요?
뭐 할 때 행복해요?
좋아하는 거 뭐예요?



일면식이 없어 오늘 처음 보는 사람도 질문 대상자로 예외는 아니다. 다짜고짜 이 물음을 던지면 열에 아홉은 적잖이 당황한다. 나중엔 반응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게 재밌어 질문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반대로 상대가 나에게 물어오면 나 역시 말문이 막히거나 대충 상대가 대답한 대로 나도 그래요, 하고 얼버무린 경우도 있었다.



숫자만 밀려나가는 그날이 그날인 일상의 연장에서 내가 언제 행복한지 아니 꼭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최근에 진심으로 웃어본 기억은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잘 안다. 알면서도 통과 의례처럼 왜 허구한 날 만나는 사람에게 이 질문을 할까 돌아보니 그 처음은 행복을 '하고' 싶은데 하는 법을 잘 몰라서였다. 나름 한다고 할수록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의구가 일어 남의 행복을 들어보고 비교해 보고 배우고 알고 싶었던 입장이었다.



죽고 싶진 않지만 딱히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대한 물음표 앞에서 강한 '살고 싶음'의 진통이고 뒤척임이었을 거다. 왜 니체가 말하지 않았나. 고뇌하는 모든 것은 살기를 원한다고. 어슴푸레하던 창문 밖이 불그스름해지고 하루 시작을 재촉하는 걸음과 비질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뒤척거리던 무르고 여린 존재의 '살고 싶음'으로 귀결된 물음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희미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답이 최근에는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만져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평온하고 행복하는 법을 찾아 헤맨 진통의 보람이 조금은 있는 걸까.



요즘도 늘 만나는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쥐어지는 답변은 다양하다.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만들 때 행복해요, 여행하는 거 좋아해요! 최근에 태국 여행 다녀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자기 전 누워서 핸드폰 볼 때요, 행복? 글쎄.. 요즘은 정말 잘 모르겠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거 사 먹을 때, 이렇게 더운 날 운동해서 땀 흠뻑 흘리고 집에 가서 샤워하고 나왔을 때 너무 행복해요, 행복은 덕질에서 나오죠, 등등 많은 답을 수집한다.



이제 이 물음의 원천은 전과 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전에는 행복을 '하다'라는 동사로 구성하고 싶어서였다면, 지금은 세상에 실재하는 행복이라는 보통 명사를 수집하고 싶어서이다.



지리멸렬하게 허무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는 생을 마주하는 날 밤이면 물음의 답을 머리맡에 흩뿌려 세팅한다. 별거 없지만 별거 있는 무구한 생들의 시놉시스가 반짝이며 펼쳐진다. 이상적인 삶은 고통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 안으로 들어가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삶이라고 나를 어루만진다.



누가 나에게 언제 행복하냐고 물어온다면, 상황에 따라 때에 따라 1번부터 일목요연하게 적은 리스트를 가지고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는 법을 정리해 나가며 살고 싶다. 생을 지나는 시기에 따라 느끼는 형질은 다 다르겠지만 더 깊이 있고 정교하게 다듬는 건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겠지.




지금 이 시기의 내 행복은, 보드라운 구름의 움직임을 살피는 일과


숨어있는 비건 디저트를 섭렵하는 일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D






이전 07화 지나온 길 고개를 돌아봐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