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렌딩이 먼저인가, 로스팅이 먼저인가.
커피를 볶는 사람에게 블렌딩은 때때로 피난처가 됩니다.
향이 빠졌거나 맛이 심심할 때, 잔향이 허전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른 원두를 섞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향미가 부족할수록, 섞기보다 볶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많은 브랜드가 ‘시그니처 블렌드’를 위해 생두 상태에서 미리 섞는 이른바 ‘선블렌딩’을 택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편리함 뒤에 치명적 한계를 숨깁니다.
선블렌딩된 생두들은 크기·밀도·수분 함량이 모두 다릅니다.
한 번에 볶으면 어떤 원두는 과하게 익고, 다른 원두는 덜 익습니다.
이건 ‘균형’이 아니라 타협일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블렌딩이 뭐가 나쁘냐”라고 묻습니다.
블렌딩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충분히 볶은 다음에 블렌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 원두가 최적 상태로 로스팅된 후에야 비로소 서로 시너지를 내고, 개별 향미를 해치지 않습니다.
저는 싱글 오리진만 볶습니다.
단지 ‘원산지를 고집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 종류의 원두를 끝까지 설계해야 시간에 따라 드러나는 미묘한 향미의 층(레이어)을 꺼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제 커피를 맛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엔 초콜릿 같았고, 끝은 비스킷 같았어요.”
이 경험은 미리 섞인 블렌드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한 배치의 원두가 가진 시간차 향미를 로스팅으로 꺼내는 것이 진짜 설계이기 때문입니다.
향미는, 섞기 전에 완성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Coding Coffee Roaster’라는 이름 아래
싱글 오리진만 고집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