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이 아닌 수동, 매출보다 철학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볶기를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추출과 센서리에 매료되어 레시피 설계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커피를 만들어 왔습니다.
손님들의 호응이 그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습니다.
커피의 시작점인 ‘로스팅’을 직접 다루지 않으면
향미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불을 다룬다는 건 커피의 언어를 듣는 일”
로스팅은 말 그대로 ‘불의 언어’입니다.
그 불은 제 손으로 직접 다뤄야만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요즘 많은 로스터리에서 자동화 장비를 사용하지만,
인-더-모먼트의 섬세한 개입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한 배치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으므로,
수분 함량·밀도·생두 특성의 미묘한 차이를
기계가 완벽히 감지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창기부터 수동 로스팅 머신을 선택했습니다.
단순한 자금 문제가 아니라,
“로스팅은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 한다”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동 로스팅은 감각의 기술입니다.
제 기본 목표는 수율 85%, 허용 오차 0.5%,
2차 크랙(Second Crack) 이전에 원하는 프로파일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닙니다.
온도계보다 제 귀를, 시간보다 향을 믿습니다.
로스터기 앞에 서면
‘1차 크랙’의 울림과 곧 다가올 ‘2차 크랙’의 변화를 듣고 개입합니다.
기계는 무난할지 몰라도, 그 안에 감동을 담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프로파일러나 AI 도구를 도입하기도 하겠지만, 제게 가장 정밀한 도구는 제 손·귀·코입니다.
매번 온 마음을 쏟아 직관적으로 조정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로스팅의 매력입니다.
셰프가 직접 불고기를 볶듯,
제가 직접 로스팅한 커피만이
미묘한 풍미와 기억에 남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라이트 로스트’가 아니라,
원두의 본질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일입니다.
좋은 커피는 하루를 가볍게 하지만,
진짜 좋은 커피는 그 하루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 기억을 만드는 일은 제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불 앞에 섭니다.
제 손으로, 제 감각으로
한 잔의 설계를 완성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