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바로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처마 밑에서 잠을 자던 라온은 들이치는 비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어제 그 식당의 처마 밑에서 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에구 구구. 비가 오잖아!"
어제 자신에게 옷을 주었던 식당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려왔다. 모두 비가 오는 것에 감사하며 한동안 비를 맞고 있었다.
"넌 어제 그 아이잖아?"
라온은 나쁜 짓이라도 하다 들킨 양 몸을 움츠렸다. 여기서 잤다고 혼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 슬금슬금 뒷걸음질로 도망가려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제 비가 오니 농사일이 바빠지겠구나. 그럼 일손이 필요할 테고. 어때? 우리 집에서 일하지 않을래?"
"네? 정말요? 네!"
어제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아주머니는 비를 핑계 삼아 라온을 거둬주기로 결심했다.
"대신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할 거야. 다시 가뭄이 들면 그 때는 너를 내쫓을 수도 있어."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그럼 뭐부터 할까요?"
라온은 왠지 하슬라가 비를 내리게 해 준 것만 같았다. 다시 하슬라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생명의 신이 내려주는 비는 단순히 빗물이 아니었다. 비를 맞은 땅에 씨앗을 심으면 빠르게 성장했다. 이미 자라고 있는 나무와 풀들은 더욱 굵어지고 튼튼해졌다. 나뭇가지가 휠 정도로 열매도 많이 열렸다.
비가 멈추면 밭에 바로 씨앗을 뿌려야 했다. 식당 앞에 있는 밭에는 일할 거리가 넘쳐났다. 라온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제 한동안은 먹고 잘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긋지긋한 떠돌이 생활도 끝이 났다. 자신이 혼자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아주머니가 자신을 받아줬으면 했다.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
"난 매디라고 해. 넌 이름이 있니?"
밭에 씨앗을 다 뿌리고 저녁을 먹으며 아주머니가 물었다. 식탁이 비좁을 정도로 음식이 가득 차 있었다.
"라온이에요."
"예전에도 농사일을 해본 적이 있어? 일을 꽤 잘하더구나."
"네. 여기저기 떠돌면서 많이 해봤어요."
라온은 음식을 입에 한가득 넣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매디는 자신도 모르게 라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왠지 이 녀석과 계속 지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식당 뒤쪽 농작물을 보관해 놓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 그 옆에 딸린 작은 방에는 한 사람만 겨우 잘 수 있는 침대와 의자가 놓여있었다. 먼지가 두껍게 가라앉아 있고 거미줄이 여기저기 보이는 걸 보니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된 모양이었다.
"난 마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 새벽에 다시 올 거야. 넌 앞으로 이 방에서 지내면 된다. 들짐승이나 거렁뱅이들이 올 수도 있으니, 날이 어두워지면 문을 단단히 잠그고 자는 게 좋을 거야."
매디는 빗자루로 대충 먼지를 떨궈내고는 라온에게 걸레를 쥐여주었다. 라온은 처음으로 생긴 자신의 방을 깨끗이 닦고 또 닦았다. 낡고 볼품없는 가구조차 라온의 눈에는 보석같이 빛나 보였다. 매디는 그런 라온을 보며 흐뭇하게 웃다 라온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매디가 돌아가고 라온은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웠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창문 너머로 깜깜한 밤하늘에 별빛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하슬라는 오늘도 나와 있을까.'
라온은 하슬라를 보러 가고 싶다고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