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충만한 우리학교 선생님들’에 이어
교사 소식지 아고뤠 창간호에서 열심히 일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각 부서별로 살펴보았습니다. 앞 글에서 보았듯이 우리학교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학교 3배쯤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측면에서 일들이 순탄하게 처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크고 작은 부딪침이 있고,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지지부진한 사업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오늘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한 번쯤은 들어주셨으면 하는 저의 작은 생각이자 문제제기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오니 참고만 부탁드립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선생님들일지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관점에서 자신이 가진 정보를 활용하여 상황을 이해하고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타인에 대한 이해를 우선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기반 아래에는 '나'라는 판단 기준이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거란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서희와 담판을 지을 때 우리는 소손녕의 논리를 격파하고 강동 6주를 얻어낸 서희의 영민함을 칭찬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오히려 소손녕의 입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80만 대군을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려라는 작은 나라에 강동 6주를 내준 소손녕은 바보일까요? 오히려 거란 입장에서는 본래 자신의 땅도 아닌 강동 6주를 고려에 양보함으로써 군사는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고려를 송나라와의 전쟁에 끼어들 수 없게 한 똑똑한 장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후 2차, 3차 정벌의 여지를 남겨두어 결국 거란의 약화를 가지고 왔다는 측면에서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그 당시에 소손녕으로서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한 최고의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이 사건을 당시 거란 황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이 고려의 원정 이후 소손녕은 어떠한 문책도 없이 오히려 승진을 하게 됩니다. 즉, 거란의 조정에서도 소손녕의 판단을 지지했다는 것이지요.
반면 고려 2차 정벌에 동원된 거란 병사 아무개는 어떨까요? 서희와의 첫 대결에서 고려인들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은 소손녕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각자의 입장에 따라 소손녕의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각 개인의 입장 차이 때문에 개인 간 혹은 조직 간에는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균등하지 않고 처한 상황과 가치관마저 다르다면 입장 차이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래서 간혹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는 일들을 만나면 '비합리적인 일'로 매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집단에 많아지면 '불신'의 감정이 집단 내에 돌게 됩니다. 조직이 클 경우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확률은 더 커집니다. 그럼 조직의 사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공적인 업무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직이 커감에 따라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는 바로 ‘설득’의 부재입니다. 아니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학교의 결정에 어떠한 요소들이 고려되었고, 어떤 정당한 과정을 거쳐서 결정되었는지에 대해 각 개인을 설득시킬 수 있는 정보'의 부재입니다. 앞서 진술했듯 모든 사람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만 각자의 위치와 업무가 다르기에 그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조직에 속해있는 공동체이며, 학교에 대해서도 일종의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에 학교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제시 등 중요한 일들에 대해 대부분의 교사들은 관심이 있으며 그 일에 대해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질수록 모든 부분에서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는 없고 이들을 하나하나 납득시키기도 힘듭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모든 구성원들의 일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최악이겠지요. 그렇기에 각자에게 업무를 나누어 책임과 권한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학교를 보면 대기업처럼 구성원의 전부를 알 수 없는 그런 정도의 대규모 조직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친분관계를 맺을 규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서 단위로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규모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합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화를 통해 학교 일에 대한 구성원들의 다양한 입장과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는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조직의 일에 개인이 생각을 표현하고 참여하는 행동 자체가 각 개인이 그 조직에 대한 애정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즉, 학교의 중요 구성원 중 한 집단인 교사에게 학교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선에서 일하는 실무자에게 이러한 주인의식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내가 속한 조직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일을 하느냐의 여부입니다.
우리학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교를 이끌어 나가고 운영하는 실무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학교에서 의미를 찾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조직 운영에서 구성원들이 배제될수록 구성원들도 조직을 점점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개개인의 합리적인 판단이 집단 속에서 더욱 빛나게 하는 방법은 구성원들이 다양한 정보와 입장을 공유하고 학교 일을 의논하며 일궈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