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한국학교에서 근무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을 꼽는다면 매년 많은 선생님들이 2년이라는 계약만 채우신 뒤 귀임하시고 또 그분들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능력 면에서 정말 필요하신 분들이 많았고, 학교에 애정을 가지고 더 근무하고 싶으신 분들도 많았지만 선생님 개인이 가지고 계시는 상황과 조건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떠밀리 듯 귀국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선생님들을 매년 보내는 것은 학교 입장에서 볼 때 무척 큰 손해입니다.(여기서의 이득과 손해란 철저하게 교육적 요소에 한정된 것입니다. 경제적인 요소 등은 오히려 빠른 귀임이 더 이득인 측면이 많습니다.) 오늘은 왜 이런 빠른 순환 구조가 학교에 악영향을 끼치는 지를 살펴볼까 합니다.
첫 번째로 해외 생활에서의 특수한 조건입니다. 매년 부임하는 선생님들이 해외 생활에 적응하는 시간은 대략 6개월쯤 걸립니다. 현지 문화에 적응하고 또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재외한국학교가 갖고 있는 교민사회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 역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현지어도 역시 큰 걸림돌입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이곳의 특성상 대다수의 일들을 처리할 때 보조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지어가 능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일을 추진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지만 해외에서의 특수한 조건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닙니다. 한국에 많은 수의 경쟁을 뚫고 부임한 교사들입니다. 제각기 가지고 있는 특기가 있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학교에서만큼은 그 능력을 펼치기에는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많고 또 그럴 여유가 생길 쯤에는 귀국해야 할 시기가 다가와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로 업무의 연속성입니다. 시스템을 통해 학교가 운영되지만 그 시스템은 사람이 만듭니다. 어떠한 시스템이 있다면 그 시스템이 만들어진 이유가 있고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학교 시스템이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그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교사들의 부담만을 증가시키는 불필요한 사족으로 남게 됩니다. 또한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후임자가 이를 갑자기 바꾸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불어 우리학교처럼 변수가 많고 갑작스러운 업무가 많은 학교에서는 시스템보다는 각 사안들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의 장기적인 전망을 설계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와 학교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면 학교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 힘들뿐더러 일을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업무 연속성을 위해 업무파악이 되어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많이 남기는 것이 원활하게 학교를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줄 수 있는 안정성입니다. 교사들이 매년 1/4~1/3이 한꺼번에 바뀌는 것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교사에게 쉽게 정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생들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많은 수의 교사가 귀임할 것이며 그렇기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교사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학생부에 근무하며 학무보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그런 종류의 소리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이곳에서 오래 살지 않아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아요.", "교민 사회에서 학폭 한번 일어나면 인식이 어떻게 될지 아세요?", "선생님은 금방 가실 거지만 저희는 여기서 살아야 해요."라는 소리를 들으면 교육과 학생들의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저희도 쉽게 이분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혹은 가족들을 위해,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작은 호기심을 위해 이곳에 부임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교사도 순수하게 놀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오지 않습니다. 아니 설령 그런 마음을 한켠에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중 아무도 학생의 일을 설렁설렁 대충 처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 교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희의 마음은 최소한 해외에서만큼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우리들을 자신들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저는 정확히 3년 차 교사가 되어서야 이제는 학부모님들이 저를 알고 제 말에 신뢰를 가져주신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교민사회에 한국학교의 교사가 받아들여질 만큼 충분한 근무년수는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사들이 가져야 하는 주인의식의 부재입니다. 모든 교사는 현재 우리학교에서 계약직의 신분으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를 인지하고 들어온 만큼 신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우리가 학교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할 때 방해가 되는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교사들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어도 학생들을 맡고 책임져야 하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학생들과의 관계도 1년짜리입니다. 1년 후면 다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교사들이 학생들을 남처럼 대하거나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즉,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직의 특성상 어떠한 신분일지라도 자신이 맡은 반과 자신이 소속된 단체에 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것입니다. 회사를 내 집처럼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과의 차이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교사들이 우리학교를 임시적으로 머물다 가는 곳으로 생각할수록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은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와 일하는 동료 교사들을 보며 너무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저 사람들이 가진 바 능력만 펼치게 도와준다면 학교가 5배쯤은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학교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가 있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포기한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최악의 조건에서 최적을 만들어내는 우리 교사들의 힘을 모은다면 한계를 뛰어넘는 건 일도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내가 있는 현재 위치에서 볼 수 없는 요소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물론 경험이라는 능력이 쌓이면 그 시야가 넓어지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리더가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 사람을 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 사람의 능력과 인성뿐만 아니라 상황까지 고려해서 리더와 직접적인 소통이 없더라도 그들의 현재 문제와 생각까지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걸 해야 하기에 리더라고 불린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