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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1. 2022

어떤 일 하시나요?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일 하세요?


누군가를  파악하기에 가장 적절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분류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  상대방의 직업을 알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 같다. 아, 그쪽 분야의 전문가이시구나. 아!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시는구나. 아, 패션에 관심이 많으시구나. 직업을 물어보는 건 어디 사세요,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결혼은 했나요 등 보다 깔끔하고 정직하다. 하는 일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나는 그렇게  직업이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업으로 나의, 타인의 모든 걸 대변할 수는 없다는 걸 천천히 느끼고 있다.

서로 아무 연관이 없었던 소방관, 교사, 플로리스트였던 것은 나 하나다.

나는 변하지 않는 성격과 가치관을 가지고 그때그때 옳다고 여기는 것들에 매진했고 그것이 그때그때의 직업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가졌던 직업은 필요에 의해 또는 이끌림에 의해 몸담았던 내가 하는 '일'이었지, 온전한 '나'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 이 모습의 나도 여전히 나다.

그런데 처음엔 그런 모습의 나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20살이 되자마자 돈을 벌기 시작했다. 찹쌀떡 판매와 전단지 돌리기는 그보다 더 이른 나이에 시작했다. 주유소, 호프집 서빙, 식당 서빙, 냉동창고에서 갈비 포장도 해봤고, 명절 시즌에 하나로마트 행사 매대에서 한복 입고 비누세트도 팔았다. 운 좋게 쌍용건설 모델하우스에서 전화받는 아르바이트나 신용카드 텔레마케터 일에 고용되었을 때는 장기간 돈 걱정 안 하고 수 있었다. 그러다 학원강사 아르바이트에 정착했고 대학 다니는 내내 일을 해보지 않은 적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소방관이 되었기 때문에 소방관은 돈을 버는 일의 연장선일 뿐, 인생 직업도, 벼르고 별러 이러 낸 성취도 아니었다. 그저 언제나 나는 일을 했던 것뿐.


그랬기에

비어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소방서에 사직서를 제출한 날 학원 강사 면접을 봤고 그다음 날부터 출근했다. 셋째를 출산하고 100일이 채 안되어서 학교에 출근했고 학교를 마지막으로 떠나온 날  꽃집 자리를 계약했다. 하루라도 비어있다면 패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비어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꽃집마저 그만두고 출근할 곳이 없어져버린 처음 한 달 동안 무지 혼란스러웠다. 갈 데가 없다고? 할 일이 이제 없다고?


너 뭘 극복하고 싶었니. 


한동안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매우 컸다. 넌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진득하니 꾸준하게 이뤄놓은 것 없이 결국 또 꽃집도 그만두었잖아. 사회 부적응자야? 아님 너 직업을 취미로 여길 만큼 부자야? 남편 보기도 민망하고 자식들한테도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화려한 전적. 이거 어쩔 거야!

'직업'이 없어진 시간이 너무나 어색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떤 이유로든지 찾아오는 불안이 왔다.


이번엔 뭘 해볼까 가 나의 머릿속 대부분을 차지했다. 언제나 그랬듯 당장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무엇을 하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교만으로 생전 모르는 분야까지 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내가 찾는 직업의 시작을 생각하면 그 일의 끝도 함께 떠오른다. 그 일을 오래 못 할 이유, 지칠 이유, 이 일이 나랑 맞지 않는 이유들. 오늘 하루 반짝 어떤 일에 매력을 느끼고 열심히 찾아보고 알아보다가 이내 근데 이 일이 나랑 맞을까? 지금 내 상황에 일을 벌이면 지치지 않을까? 애들 케어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이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없거나 이 일은 그렇게 나랑 안 맞네. 라며 떠오르는 것들에 시큰둥하다.

무조건 시작하고 봤던 나의 지금까지의 모습이 아니다.

 왜 이러지? 오히려 신중해지는 시간들이 또 불안해지며 어디가 고장 난 것 같은 느낌.


그러다가 나를 움직이게 한 열등감과 불안감을 가만히 바라본다.

너 뭘 극복하고 싶었니.

가난, 학업, 외모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아예 다시 태어나고 싶을 만큼. 다 싫었어.

그래서 그렇게 애쓴 거구나. 아직도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못난이라고 생각해?

아니. 먹고 싶은 거 먹을 수 있을 만큼 살고 있고 죽도록 공부해서 대학도  나왔지. 남편은 내가 예뻐서 좋았다고 하던걸.

그래, 정말 애썼어. 하며 나에게 너그러워지기 시작한다.

 또 너 뭐가 그리 불안하니. 너의 뿌리인 네 엄마는 결국 널 떠나지 않았고 너무나 안정적으로 너를 사랑해주고 지켜주는 남편이 네 옆에 있잖아.

음... 내가 망쳐버릴까 봐. 남편이 죽을까 봐. 불안한 나 때문에 애들이 불안해질까 봐.

 내 아이들은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울 만큼 잘 컸어. 남편이 얼마나 조심성 많은 사람이니. 이제 안심하고 살아도 돼. 나의 그 많은 방황들이 불안과 열등감의 결과라고 해도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어. 넌 그저 재주가 많은 것뿐이라고, 그 재주 다 쓰느라 그런 거라고 이제 인정해줘.

못난이 인형 같았던 나를,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나를.

내가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이겨내려고 애쓰며  살아온  지난날의 시간들이 기특하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나의 뿌리부터 그 공간, 그 사람들. 또 그 안에서 어떻게든 나를 증명해 내고 싶었던 몸부림들, 그러다가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보려는 지금의 텅 빈 시간까지.

헛되이 시작한 일도, 무모하게 끝낸 일도 없이 모두가 오늘의 나를 빚어준, 너무나 귀중한 시간들이었구나. 어쩜 그렇게도 기막힌 시간들이었는지 이제야 미소가 번진다.


내가 움직여야 할 이유


마지막으로 출근하고 난 뒤 3달이 지났다. 3이라니. 갑자기 3년도 아닌 세 달이 흘렀는데 대단한 걸 견뎌낸 것같이 말하는 내가 참 안됐다. 세 달이나 놀다니! 3일도 못 참고 일을 찾아대던 나는 처음보단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도 비어있는 시간들이 편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젠 내가 움직여야 할 이유를 먼저 찾고 움직이기로 한다.

열등감과 불안함이 지금까지의 이유였다면 이젠 그것들과 조금은 멀어져 있는 내가 보인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인가. 영원히는 아니어도 오랜 기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가. 내 가정, 아이들에게 소홀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인가.

만약.

그런 일을 당장 찾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살기 위해 돈은 벌어야 하고 또 돈은 많을수록 좋지만

쉬면서 줄어든 내 씀씀이는 돈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있고 고맙게도 나에겐 아직 더 고민해 보라며 응원해주는 남편도 있기에.


무슨 일을 하게 되든지

내가 선택할 그 일을 자랑스럽게 여길 나를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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